청춘

2005년 6월 12일, 피곤한 일요일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5.05 ~ 2005.12

2005년 6월 12일, 피곤한 일요일

dancingufo 2005. 6. 13. 04:38

01.

오랜만에 극장엘 갔다.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심장이 뛰었다. 바람이 불고, 걸어가는 남녀 배우의 앞으로 운동장을 돌고 있는 아이들이 스쳐 지났다.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변형된 꿈이, 심장을 밟고 지나가, 나는 쓸쓸해졌다.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지만 사실, 그것은 내 꿈이 아니었다.


02.

더위가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후덥지근한 공기는 맨다리를 타고 올라, 꼼짝할 수 없게 휘휘 내 온 몸을 감쌌다. 더위를 피해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에어컨 바람이 너무 추웠고, 추위를 피해 밖으로 나오면 한낮의 더위가 너무 무거웠다. 어떻게 할 수도 없어서 일주일에 한번 쉬는 휴일이 지친 하루가 되고 말았다.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피곤에 절어있다는 생각.


03.

결국,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지인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 버렸고 나는 혼자 상암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무엇이든 혼자 하는 것이 힘들 것은 없지만, 경기장에 혼자 가는 건 처음이었다. 때문에 잠깐 망설야야 했지만, 처음이 힘들지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란 생각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어차피, 동행이 있든 없든 내게 이 대상이 중요하고 소중한 건 마찬가지였다. 나는 김은중을 봐야했다. 그 순간에는, 나에게 그 사실만이 의미가 있었다.


04.

신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좋아하게 되었다. 때문에, 중간에서 지하철을 내려 버스로 갈아탔다. 여의도와 63빌딩과 국회 의사당. 잠깐 내려다보이는 한강의 검은 물도 좋았다. 결국 중간에 동행이 생기긴 했지만, 혼자서 경기장에 앉아있는 일도 썩 나쁘지 않다는 걸 깨달은 하루였다.


05.

좀, 오버한다 싶을 만큼- 나는 김은중에게 예민하고 민감했다. 내가 이렇게 군다고 해서 김은중이 좀 더 많은 골을 넣거나 좀 더 좋은 플레이를 보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답답해져서, 상황을 피해야했다. 나는 안 그런 척 굴지만 사실 지독한 외곬이었고 지금도 변함이 없단 생각이 들었다.


06.

가능성이 제로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괴로운 것도 아니었다. 설사 99%의 확신이 있다해도 1%의 불안함도 존재하는 법이라는 걸- 나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똑같은 실수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처럼 또 잃어야 한다면, 시작도 안 하는 게 나을 거라고 자꾸만 되뇌였다. 그렇지만 이제와서, 돌이켜지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내가 나를 설득하고 내가 나에게 변명한다고 해서, 有가 無로 돌아갈 리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07.

진실, 이나 진심에 대한 내 강박관념. 문득 지겹고 답답하고 짜증이 치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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