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5년 6월 20일, 미아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5.05 ~ 2005.12

2005년 6월 20일, 미아

dancingufo 2005. 6. 21. 04:09

01.

내가 무슨 일을 할 때, 재빠르게 그 일을 습득하고 남들보다 뛰어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 나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모든 일에 있어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요리라거나, 자수라거나, 수학적인 지식이 필요한 문제라면 난 아마 어떻게 해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젬뱅이라고 생각하는 그 일들을 제외한다면, 난 내가 무슨 일이든 빨리 배우고 또 잘해나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은 사실이든 또는 그렇지 않든 나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든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는 남들이 다 저지르는 실수라거나, 그로 인해 남들 다 듣는 싫은 소리를 나 자신은 견딜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사소한 부주의와 가벼운 꾸지람에도 쉽게 지쳐버리는 나를 보면서 '왜 남들은 다 견딜 수 있는데 나는 견딜 수 없는 걸까?'에 대해서 생각한다. 예전엔 그것이 나의 특성이므로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치부해버렸지만, 이제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왜 이 모양인걸까, 라거나- 나는 왜 이렇게 약해빠진 걸까, 라거나- 나는 왜 이렇게 사회성이 부족한 걸까, 라고.


02.

답답해서 사람들과 함께 걷는 게 싫어진다. 약속이 있다며, 혼자 반대쪽 역으로 걸음을 돌리면 화가 난 내 표정을 사람들은 쉽게도 읽어낸다. 이런 나를 봤다면 엄마는 못난 것, 이라며 혀를 끌끌 찼을 것이다. 할 수 있는 게 없어진 기분이다. 무엇을 해야 좋은지 1분도- 1초도- 떠오르지 않는다.


03.

잠깐 사무실을 빠져나와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본다. 자전거를 탄 아이들이 와하하- 웃음을 터트리며 내 곁을 스쳐지난다. 호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고 서있다가 아이들에게 시선을 빼앗긴다. 마음에, 바람이 분다. 언젠가 이 바람이 반드시 나를 데려다 주리라 믿었던 시간이 떠오른다. 떠나고 싶다. 머무를 수 없다.


04.

이 나라, 이 도시, 이 자리에서- 나는 잘해나갈 수 있을까.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고 살면, 언제든 떠나는 일이 쉬울 수 있을까. 멍하니 바람을 맞으면서 서있다가 국적도, 고향도 상실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어쩌면 나는 미아인 건지도 모른다. 집도 잃었고 부모도 잃었다. 부모도 날 잊었고 시간도 날 잊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렇게 이 자리에 홀로 남겨진, 미아인 건지도 모른다.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는. 아무도 줏어가주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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