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5년 6월 29일, 기억상실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5.05 ~ 2005.12

2005년 6월 29일, 기억상실

dancingufo 2005. 6. 30. 03:27

비가 온 다음이라 그런지 정오의 태양도 그리 뜨겁지 않았다. 얼굴에, 목에, 팔에, 다리에 뜨거운 태양빛이 와닿지 않는 것이 좋아서 고여있던 빗물이 튀는 것도 잊은 채 신나게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반대쪽에서 걸어오고 있는, 나처럼 신나 보이는 여자 아이를 마주쳤다. 아이는 초록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나풀나풀 치마깃을 흔들고 있었고, 손에 든 비누방울을 후후 열심히 불어대고 있었다. 아이를 바라보다가 문득, 나는 저런 모습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저렇게 명량한 얼굴을 하고, 나는 저렇게 기분 좋은 장난을 치며, 나는 저렇게 예쁜 모습으로 거리를 걸어간 적이 없었다는 생각.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을 때, 유쾌했던 적은 별로 없다. 아주 가끔- 밖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놓고 엄마와 껴안은 채 낮잠이 들었던 기억이 떠오르면 내가 엄마의 딸이었고, 엄마가 나의 엄마였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 날 이후로 내가 엄마 품에 따뜻하게 안겨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분명히 날 사랑했겠지만, 난 그게 사랑이라는 걸 모른 채로 자랐다. 그리고 나는 늘 누군가를 사랑을 하지만, 아무도 그것이 사랑인 줄 모르고 지나간다.



유난히 신경이 예민해져서, 농담 한 마디 받는 것조차 하고 싶지 않은 날. 이런 나를 붙잡고 승룡이는 웃고, 장난치고, 말을 걸어온다. 오늘 알게 되었는데, 승룡이는 말이 너무 많다. 그리고 아무리 이쁜 녀석이라 해도, 확실히 시끄러운 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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