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5년 7월 24일, 반짝반짝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5.05 ~ 2005.12

2005년 7월 24일, 반짝반짝

dancingufo 2005. 7. 25. 02:44

01.

B는 약속 시간으로부터 꼭 한 시간 후에 나타났다. 어릴 적부터 나는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이런 나를 기다림에 익숙하게 만든 것은 J였고 나는 J를 만나고 헤어진 이후로는 누군가는, 또는 무언가는 기다려줄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내가 B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한, 계속해서 만날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는 한, 몇번째 계속되고 있는 B의 지각도 (그것이 무척 싫은 것은 사실이지만) 때로는 웃어넘길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게다가 오늘처럼 더위에, 또는 지겨운 일상에, 무기력함에, 지친 얼굴을 하고 B가 나타나는 날은 더욱 더 말이다.


02.

괴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나에겐 웃을 일도 있고 좋아하는 일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오늘은 나를 행운아라고 생각해주고 싶다. 때로는 칭찬도 해주어야 힘을 내고 살아가는 법이니까. 오늘은 내가 나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03.

창가에 앉아서 비가 오나- 그쳤나- 를 살피다가 어제 내가 마시고 창틀에 올려둔 서울 우유 커피곽에서 발견한 것. "항상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글귀. 무표정하게 앉았다가 그 글귀를 보고는 피식- 웃음이 났고, 그 글귀 때문에 내가 웃었다는 사실 때문에 당황스러워졌다. 세상엔 참 많은 게 웃을 일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웃을 일이 없어, 라고 말하면서 산다면 그것은 내 탓인 거다. 내가 나를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지 못한 탓. 내가 내 주위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에 너무 무관심한 탓.

제대로 살아가는 것은 온전하게 내 몫이다.


04.

"사랑하니?"
"자꾸 생각나."
"사랑하냐구?"
"보고 싶어."
"사랑하냐구?"
"같이 있으면 즐거워."
"그래 지금은 반짝반짝거리겠지. 그치만 그 여자가 아무리 반짝거려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된다구. 지금 우리처럼. 그래도 갈래?"
"사람들은 죽을 걸 알면서도 살잖아."

음- 삼순이 작가는 확실히 센스가 있다.


05.

나는 거짓말쟁이지만, 니가 이런 내 말을 다 믿어준다면 나는 점점 니 앞에서 진심과 진실만 말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내 진심을 듣고 싶으면 니가 노력해. 그것만은 니 몫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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