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5년 8월 11일, 다행스러운 시간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5.05 ~ 2005.12

2005년 8월 11일, 다행스러운 시간

dancingufo 2005. 8. 12. 02:43

내가 원한 것은 쉼. 그곳의 공기가 줄 수 있던 것도 쉼. 장평은, 조용하고 깨끗하며 맑고 차갑다. 이 여름, 딱 한 번 내가 평화로웠던 시간이 있었다면- 그것은 빨간 모자를 눌러쓰고 양갈래로 삐삐머리를 땋고 바람에 사각대는 나뭇가지의 소리를 들으며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던 시간.




옛 집 마당에는 여러개의 돌탑이 층층이 쌓여있고, 나는 그 중 하나의 탑을 골라 제일 위에 두 개의 돌을 올려놓는다. 쓰러지지 않도록 한껏 조심스러워지던 손길을 거두면 잠시 그 앞에 서서 기도. 나에게, 아직도 있는 바람. 나에게, 아직도 있는 소원.




돌아오는 길에서는 이르게 핀 코스모스를 만난다. 흔하디 흔한 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면 이렇게 가까이서 이 꽃을 들여다본 것은 기억도 안 날 만큼 오래 전의 일이다.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던 계곡을 만나고, 유명하다는 횟집에 들러 점심 식사를 하고, 고스란히 짐을 푼 곳으로 돌아오면 나를 기다리는 것은 다시 평화. 즐거워져서 일상을 잊는다. 빨간 모자를 눌러쓰고 양갈래로 삐삐머리를 땋고 크고 즐거운 목소리로 수다를 떨면, 나는 아직 신나는 사람. 나는 아직 유쾌한 사람.




나는 아직도 어린 아이이고픈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잠깐 어른이지 않아도 좋았던 시간. 이 여름에, 나에게 있어서 다행스러웠던 시간. 장평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