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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교육

태풍 태양

dancingufo 2005. 8. 27. 22:28



판에 박힌 건 싫다. 겉멋이 든 것도 싫다. 로맨틱 코메디도 아니고, 액션 느와르도 아닌 바에야 판에 박히거나 잔뜩 어깨에 힘준 채로 나타날 필요는 없다. 내가 기대하고 바래왔던 정재은의 두 번째 영화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성장담에는 성장에 대한 진지한 사색이 필요하다. 성장을 현재 진행시키고 있는 젊은이들에 대한 주의깊은 고찰이 필요하다. 그저, 청춘들이 있고 그 청춘들이 꿈을 향해 내달린다는 것만으로는 성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성장'이라는 것은 인간의 인생을 아우르는 가장 중요한 테마다. 그것은 나, 를 결정하고 나의 인생, 을 결정한다. 이 영화가 아쉬운 것은 그런 성장이 너무 쉽게 도식화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달리는 '남자'들의 몸은 충분히 멋지다. 김강우와 천정명은 '나는 달린다'와 '똑바로 살아라' 시절부터 내가 점찍어둔 배우들이다. 그리하여 충분히 눈은 즐겁지만,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게 서운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소요와 모기와 갑바 사이에 흐르는 유대감과 갈등은 '그렇게 설정해 두었다'라는 사실만 느껴질 만큼 약하고 미흡하다. 소요가 모기의 여자친구인 한주에게 느끼는 감정은 '대체 저런 관계를 왜 설정해두었을까' 싶을 만큼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사실 한주라는 인물 자체가 영화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그렇지만 왠지 여자 주인공 한명쯤은 있어야 할 듯 해서 넣어둔 캐릭터이긴 하다.) 인라인 스케이트에 대한 그들의 열정도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으며, '내가 타고 싶을 때만 탄다.',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면 안 된다.'라고 나름대로의 철학을 설파하던 모기가 왜 갑자기 '스케이트를 타면 다칠까봐 겁이 나는', '정작 세계 대회에 나가서는 무서워서 한 걸음도 떼지 못했던' 캐릭터로 변화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모기의 진심은 무엇일까? 자신이 사랑하는 일이 진짜 일이 되지 않기를 바란 걸까? 그냥 대회에 나가는 게 무서우니까 변명을 해왔던 걸까?)

[고양이를 부탁해]를 봤을 때,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먹먹해지던 심장을 기억한다. 그렇게 친구들에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버스에서 다시 또 칫솔 다섯개를 사주던 태희의 표정, 달빛을 받아 반짝- 하고 빛나는 식칼을 들고 서있던 지영의 얼굴, '언니들 나 너무 미워하지 말아요' 라고 술에 취해 이야기하던 혜주의 웃음, 그런 것들은 고스란히 심장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와 나는 그 아이들의 등을 토닥거려주고 싶었다. 아이들은 예쁜 체 하지도 않고, 특별한 체 하지도 않고, 그냥 자기 앞에 놓여있는 현실을 최선을 다해 헤쳐나갔다. 때로는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때로는 피식 웃음이 날 만큼 비현실적이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선택은 모두 다 최선, 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아이들을 100% 이해하진 못했어도 공감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태풍 태양]의 아이들은 [고양이]의 아이들보다 멋있고 신나고 싱그러운 젊음을 가진 듯 해도, [고양이]의 소녀들이 가지고 있던 '진심어린 불안함'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이 아이들의 마음과 아이들 사이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감독의 시선에 '치열함'이 있느냐 없느냐하는 문제에서 비롯된 차이가 아닐까- 싶다. 물론 한번 섬세함을 선보였던 감독이라고 해서 늘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이번에는 마음이 아니라 몸이 보여주는 젊음, 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에 그랬다면 좀 더 철저하게 그 '몸'을 보여주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인 것이다. [태풍 태양]의 아이들은 보는 이들에게 전달되지 않을 만큼만의 고민과 불안함과 갈등을 지닌 채로 살고 있다. 좋게 말하면 나름대로 Cool해 보일 수 있겠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것이다. 아직도 사춘기, 로 살고 있는 나같은 젊은이에게 공감대를 전해주지 못하는 청춘 영화라면 솔직히 흥행이 되지 않는 건 당연한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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