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마루야마 겐지,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 본문
내가, 당시만 해도 그다지 일본 작가의 소설이라곤 별로 관심없어하던 내가, 하필이면 이 작가의 소설을 찾아내 가면서까지 읽은 것은 나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호감이라든가, 이 작가의 유명세라든가, 내 소설의 취향과는 전혀 무관한 이유였다. 그 이유를 시시콜콜 밝히고 싶지는 않지만 어쨌든 배신감이라기 보다는 호기심. 호기심이라기 보다는 오기. 오기라기 보다는 쓸쓸함. 뭐 그런 감정이었을 것이다. 내가 이 작가의 소설을 손에 쥐면서 느꼈던 것은 말이다.
몰랐던 것이지만, 마루야마 겐지는 처음부터 소설을 쓰고자 했던 사람은 아니다. 22세의 젊은 나이에 '문학계' 신인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당시 소설을 쓴 이유도 현상금에 마음에 끌렸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런 작가의 내력에 대해 읽고 있다보면 설풋 웃음이 나기도 하고 희미한 혐오감이 일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작가를 싫어할 필요가 없는 것은 어쨌든 이 작가가 잘 된 소설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같지 않게 나는 세상에 고귀한 것이 문학, 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그 작가의 문학관이나 (겐지의 경우와 상관없는 얘기지만) 인간됨됨이가 그 작가의 문학의 질까지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겐지가 처음 소설을 쓴 이유가 '돈'이었다 해도, 그 정도가 처음 그가 가진 '문학관'이었다 해도 투철한 문학관을 가진 다른 사람보다 겐지의 문학이 뛰어나다면 그가 전자의 사람보다 더 훌륭한 작가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란 말이다. 개인적으로 씁쓸한 것은, 열정과 재능은 대체로 비례하지 않으며 전자의 것만을 넘치게 가진 사람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화자가 '오토바이'인데 흥미로운 것은 이 화자가 자신의 새로운 주인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읽는 동안 남자 주인공이나 여자 주인공이 아니라 바로 이 화자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된다는 것 역시 재미있다. 남자 주인공에 대한 묘사는 다분히 진부하지만 그래도 오토바이 주제에 그 정도의 묘사를 해낸다면 장하다. 사건이래봤자 별다를 것은 없지만, 소설에서 꼭 서사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사실 오래 마음에 남는 것은 늘 서사가 아니라 서정 아닌가.
그들은 밤길을 달리고, 달리는 내내 자신들의 뒤를 쫓는 달을 본다. 그것은 문득 생각을 해보아도 참이나 낭만적인 풍경이다. 이 소설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그 풍경의 낭만이며, 밤공기의 차가움이며, 오토바이 소리의 불길한 기운이다. 빈약한 서사를 메꾸는 것은 어디를 향해 갈지 모르는 불안의 씨앗과, 불안하기 때문에 더더욱 빛이 나는 아름다움 같은 것이다. 이것은 참 훌륭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소설가는 절대로 단순한 이야기꾼이 아니며, 때문에 겐지의 이런 능력이야말로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정작 구해보고 싶었던 겐지의 소설은 '달에 울다'였으나, 그 책이 절판된 관계로 하여 '물의 가족'과 이 책을 선택한 것이다. 다행히 두 가지 다 마음에 들었고, 하여 구하지 못한 또 다른 소설에 대한 기대감만 커졌으나 오랜만에 인터넷 서점을 다 돌아보아도 여전히 '달에 울다'를 팔고 있다는 서점은 찾을 수가 없다. 어디 친구 녀석들 중에 숨은 겐지의 팬이라도 발견하면 빌려서라도 보고 싶건만 특별히 그럴 만한 녀석이 없을 듯한 게 사실이다. 이럴 때면 가끔 생각나지만, 그나마 불법 다운이라도 받아서 볼 수 있는 영화가 확실히 편하긴 하다. 책 같은 경우는 번역본이 절판되어 버리면 읽는 기회를 원천봉쇄 당하는 것이니 (잘난 인간들이야 아예 원어로 읽고 말겠지만) 나 같은 사람들이야 그저 답답해하고만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요즘으로서는 좀 마음에 감흥을 주는, 소설맛이 나는 소설을 읽고 싶은데 마음에 드는 것을 찾을 수가 없어서 조금 답답. 겐지의 소설이라면 충분히 그 감흥을 채워줄 듯 한데 이것을 구할 수가 없으니 더욱 더 답답하다.
오랜만에 구석에 처박아 둔 이 소설을 다시 꺼내 넘겨보는 것 정도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니, 참이나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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