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무라카미 류, 69 본문
어떤 경우엔, 글을 읽을 때 그 글을 쓴 이의 존재가 너무 강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여 그 글속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을 그 글을 쓴 사람과 동일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땐 그 글을 읽는다기보다는 그 글을 쓴 사람에 대해서 읽는다고 해야 옳을지도 모르겠다. 신경숙이 내게는 늘 그랬고, 은희경도 다분히 그랬으며, 어느 순간부터 무라카미 류도 그러하게 되었다.
학창시절에 난 그다지 좋은 학생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썩 나쁜 학생도 아니었다. 선생들에게서 사랑을 받을 이유보다 미움을 받을 이유가 더 많긴 했지만, 그래도 그들에게서 상처란 것을 받을 이유 역시 없었다. 적당한 안전지대에 서있었다고 하면 나쁜 설명은 아닐 것이다. 난 나름대로의 자유를 만끽하는 대신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을 정도의 성적을 냈다. 아니, 사실은 순서가 틀렸다. 난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충분히 보호받을 만한 성적을 내는 대신 나름대로의 자유를 만끽하며 살았다, 고 해야 옳다.
'겐'은 그런 나와 270도의 각도로 서있는 존재같다. 극과 극을 운운할 만큼 다른 구석은 없지만, 그렇다고 비슷한 기질 역시 아무리 유심히 봐도 찾아지지 않는 그런 존재 말이다. 난 한심해한다거나, 가소로워한다거나, 부러워한다거나, 이해할 수 없어한다거나, 또는 이해할 것 같다거나 하는 그런 어떤 감정도 없이 겐을 읽어내려갔다. 나는 겐에게는 도저히 감정 이입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류의 인물들은 늘 그랬다. 안타깝거나 슬프거나 호감이 가는 인물은 있었지만 감정을 이입할 만한 인물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중에서도 겐은, 나로부터 가장 무감각한 상태를 이끌어낸 인물이고 그리고 그 겐은, 어쩐지 가장 무라카미 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 인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겐은 열 여섯살의 류였다고 한다. 나는 자신의 기준에서 즐겁게 살지 못한 인물들을 쓰레기처럼 바라보는 겐과 조용한 소도시의 국문학과를 거리낌없이 부정적인 고유명사로 만들어버리는 류가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진실이든 과장된 제스쳐이든 류는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같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겐이 가진 번득이는 재치와 엉뚱함, 그리고 이기적인 면과 제멋대로인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싸움이다. 나는 그 싸움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지겨운 사람들에게 나의 웃음소리를 들려주기 위한 싸움을. 나는 죽을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69> 끝에, 류가 덧붙인 말이다. 나는 물론 류의 말에 그다지 공감하진 않지만 어째서 저런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인지는 조금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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