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6년 7월 21일, 울어도 좋은 걸까 본문
겨우 잠이 들었는데, 잠에서 깨버렸다. 가만히 앉아있자니 두통이 밀려온다. 나도 내가 화를 내는 일이 부당하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부당함에 대해 설명하려 들면 어쩐지 답답해진다. 창문을 열어본다. 빗소리가 들린다. 시원한 공기도 들어온다. 이 답답함도 괜찮아질 것이다. 언제나 충격은, 시간이 지나면서 완화되기 마련이니까.
영원한 것은 팀뿐이다. 그렇지만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게 아니다. 때로는 알고 있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있다. 하나하나 설명을 하자면, 납득하지 못할 것이 없다. 그렇지만 납득한다고 해서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음이란 게 그렇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다.
계속 잃었다, 고 생각이 든다. 이 팀의 팬으로 지내는 동안 늘 그렇게 잃어왔다고. 그게 상처가 되었다. 다시 잡을 수 없는 과거를 추억하거나, 다가오지 않을 미래를 꿈꾸게 했다. 그것이 나에겐 상처를 만드는 시간이었다.
대수롭지 않다고 말하면, 그래 대수롭지 않아. 그렇지만 조금 슬프다. 나는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울곤 하니까. 전화기를 붙잡고 얘기를 하는 동안,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이해해. 당연한 거야. 이해할 수 있어. 그렇게 얘길해도, 그럼에도 화가 난다. 잃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 것뿐이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이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만약에 내가, 영원한 것이 팀뿐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진작에 김은중 따위 잊어버렸을 것이다. 만약에 내가, 팀에 대한 정체성 따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면 대전을 등져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둘 다 되지 않는다. 마음이 그게 되지 않는다. 대전의 팬인 동안엔, 끊임없이 잃어버릴 것이다. 잃어버린 후에, 남아있는 쓸쓸한 내 팀을 생각한다. 김은중 하나 보낼 때도 선수들의 사기가 얼마나 떨어졌는데 이관우를 보낸 후엔 선수들이 얼마나 의기소침해질까. 감독님은 얼마나 화가 나실까. 그래,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쳐. 하지만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내 마음이 그래. 그러니까 화가 나. 속이 상해. 조금은 울고 싶어. 나는 울어도 괜찮은 걸까.
가난한 우리는 좋은 선수 키워서 팔고, 그렇게 유지할 수밖에 없다. 오래 붙잡았어. 꽤 오래 붙잡은 거야. 그렇게 생각도 한다. 선수에게 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팀이 무너지기 직전인데 팬을 위해 선수를 잡으라는 것 또한 얼마나 바보같은 말인가. 그렇게 잃어도 또 팀은 팀대로 괜찮을 것이다. 그런 대로 또 흘러가줄 것이다. 나는 또 다른 선수를 좋아하고, 응원하며 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다 미래의 일.
지금 내가 마주치고 있는 것은, 감당하기 힘든 현재의 상실 뿐이다. 나는 그 상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그 자리에 있어주길 바란다. 고마웠고, 좋았다고, 웃으면서 떠나주길 바란다. 우리가 모두 당신을 아주 많이 좋아했다고, 손흔들며, 보낼 수 있길 바란다. 잃는 것에 길들여지면 나도, 더 이상은 이런 일들에 슬퍼하지 않길 바란다.
아니, 사실은 나. 이렇게 너를 잃지 않길 바란다.
울고 싶은 새벽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