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6년 7월 25일, 사소한 결심 본문
나는 흡연자다. 특별히 정해진 양은 없지만, 보통 이틀이나 사흘에 한대쯤 핀다. 계속해서 안 피게 되면 어떤가 하면, 아무렇지도 않다. 가끔은 2~3주씩 안 피기도 한다. 금연해야겠단 생각에서라기보단 그냥 담배를 피고 싶단 생각 자체가 안 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도 왜 끊지 않느냐 하면, 가끔은 또 피고 싶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하루에 2~3대씩 피기도 하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다. 괜찮다가도 마음이 자꾸 침울해진다. 축구는 물론 공놀이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현재 그 공놀이를 많이 좋아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그것에 이런저런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많이 좋아하니까. 원래 좋아하는 것에는 영향을 받기 마련이니까.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한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그 선수에게 화를 내지만 혼자 생각하다보면, 그 선수가 여전히 좋다는 걸 알게 된다. 책을 잃다가 시리우스란 글자를 보고 잠깐 마음이 흔들린다. 김은중이 갈 때와는 많이 다르다. 김은중은, 떠나길 바란 적도 있었다. 이기적인 태도이다. 알고 있지만, 이런 이기심마저 탓할 수는 없다. 그 사람은 그냥 있어주길 바랐다. 늘 그랬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그렇지가 못하다. 그러니까 화가 난다. 마음이 흔들린다. 괜찮아지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것이다. 이런 나에게 현실에 대해서 설명해줄 필요가 없다. 마음은 감정적인 것 아닌가. 감정이 꼭 현실을 직시하면서 생겨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오랜만에 G에게서 전화가 왔다. ... ...이라고 G가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이제 내가 G를 만날 일이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관계가 끝나고, 사람을 잃는 것은 이렇게 순간이다. 나는 G를 별로 잃고 싶지 않다. 하지만 G가 원하는 것과 내가 바라는 것이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면, 어쩔 수 없구나 싶다. 그렇구나. 같은 마음을 갖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왜 너까지 이러는 거야. 라고 말하면서 나는 절대로, 상대가 바라는 것과 다른 마음을 갖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단 생각도 들었다.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내가 늘, 김은중에게 먼저 등을 보이는 건 그러한 이유일 뿐이다.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전혀 귀찮지 않은 관계란 얼마나 부스러지기 쉬운가. 그런 것 같다. 내가 얼마나 관계맺음에 미숙한지 다시 깨닫는다.
흡연자지만, 하루에 두 대만 피어도 속이 매스껍다. 나는 약한 흡연자다. 게다가 담배 냄새도 싫어한다. 그러니까 모순된 흡연자다. 나는 내가 흡연자란 사실을 조금 싫어하는 것도 같다. 그래서 흡연자 생활을 그만해야겠단 생각이 문득 든다.
생각나는 문장이 있어 적고 보니 어울리는 문장 서너개가 더 생각이 났다. 적어놓고 읽어보니 마음에 드는 문단이다. 그렇지만 그 문단을 더 잇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머뭇- 거린다, 라는 말이 나에게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나는 삶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꿈 앞에서도. 기억 앞에서도. 너의 앞에서도. 그저 머뭇거리고 있다.
내가 싫어하는 그 여자. 그 여자가 꿈에 나왔다. 요즘은 꿈에 사람이 참 많이 등장한다. 이틀전인가, 쯤에는 현규가 꿈에 나와 조금 우스웠다. 그 전 날엔가는 그와 그의 여자친구도 꿈에 나왔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나는 그는 평범하게 기억하는데 반해 그의 여자친구는 매우 인상깊게 기억했다. 그래서 꿈 속에서도 그보다는 그의 여자친구가 더 가슴을 저몄다. 저몄다. 가끔 궁금하다. 이런 기분이 가끔 든다.
무엇을 하는 게 좋을까. 누군가 내게 물었다. 내가 좋아하는 언니. 그 언니가 물었다. 뭘 할 생각인데? 음, 그것은 내가 너무나 어려워하는 또는 아주 싫어하는 질문이라서 나는 그냥 머뭇거렸다. 또 머뭇거렸다. 스물 여덟은, 대체로 우울한 나이가 아닐까 싶다. 더이상 학생이 아니고 그렇다고 확실하거나 안정적인 현실을 가지지도 못했고 미래는 그저 불안하기만 한. 스물 여덟은 그런 나이다. 나는 세상에, 아무런 소속감도 가지지 못하고 있고 현실을 직시할 능력도 없으며 미래는 꿈꿀 용기조차도 없다. 불안할 뿐 아니라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있다. 그러니 이런 스물 여덟의 나는 얼마나 구질구질할 것인가. 구질구질한 나. 생각하다 피식 웃는다.
웃는 얼굴에 주근깨가 보인다. 햇볕에 노출되어있다보면 주근깨가 늘어난다. 얼굴에 주근깨가 잔뜩 있다. 내 피부가 꽤 깨끗한 상태인 줄 알았기 때문에 놀란다. 주근깨가 가득한 얼굴을 하고, 피식 웃는 내가 있다. 미워죽겠다. 왜 그렇지? 오늘은 내가 너무 밉다.
이제 안녕. 그렇게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안녕이라고 하지 말자. 라고도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미안한 것 투성이다. 하지만 더 미안하지 않기 위해선 그만 안녕하는 게 가장 나을지도 모른다.
저녁 거리를 혼자 걸어본다. 저녁 냄새가 너무 좋아서 심장이 울린다. 구토를 할 것 같다. 마음이 설레서 그렇다. 착각. 망상. 그런 것들의 위험을 감지한다. 그래서 내가 현실을 직시할 줄 아는 인간이 되면, 나도 그렇게 재미없는 말이나 툭툭 던지게 될까. 지금의 나같은 인간에게 잔뜩 짜증만 안겨주는 그런 어른이 되는 것일까.
내일은 좀 제대로 된 밥을 먹을까한다. 요즘은 생각하면 할수록 관계의 허약함을 깨닫는데, 고작 이런 관계들을 가지고 사람이 외롭지 않을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첸은, 외롭지 않게 곁에 있어주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나를 가장 외롭게 한 건 첸이었다. 그래. 이제는 지극히 담담해졌다. 그렇지만 그 외로움은 기억하고 있다. 그 외로움 때문에 가지게 된, 이 모든 관계에 대한 불신도 말이다.
문득 결심했다. 금연이나 하자. 인생이 지겨울 땐 뭔가를 결심하면 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사소한 결심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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