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시오노 나나미,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본문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카이사르에 대한 시오노 나나미의 지나친 찬사가, 오히려 카이사르를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느꼈다. 그런 남자, 별로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내 주관적인 기준 탓도 있겠지만 모든 황제를 이런 이런 것은 인정할 만하지만 카이사르와 비교하면 별 것 아니다- 라고 말하는 듯한 작가의 말투 때문에라도, 나는 카이사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우구스투스나 하드리아누스, 또는 아우렐리우스 쪽에 더 마음이 갔던 것 같다.
내가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자, 듣고 있던 누군가는 하하, 웃으며 시오노 나나미가 카이사르의 빠순이란 소리를 괜히 듣겠냐 했다. 그러고보니 그랬다. 누구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하든 결국 카이사르로 돌아가고야 마는 시오노 나나미의 태도는 ‘결론은 김은중’이라거나 ‘축구판은 김은중을 중심으로 돈다.’고 말하는 내 태도와 흡사한 데가 있었다.
둘러보면 팬, 의 시각에 익숙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누구나 특별히 좋아하거나 정을 주는 대상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 대상에게 유난스레 심취하거나 잦은 찬사를 바치는 태도의 사람들 말이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지만 보고 있자면 시오노 나나미도, 만만찮게 그런 태도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체사레 보르자.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단 한 번도 이 남자가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남자의 특별함에 대해서 저자가 아무리 강조를 해도, 별로 마음에 와닿지 않는 것이다. 카이사르처럼 그와 같은 이름을 가진 체사레 역시, 내게는 별로 멋있지 않았다.
하지만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 강도가 훨씬 약하긴 하지만) 체사레에게 역시 철저한 팬의 자세를 보여준다. 그래도 카이사르에 대해서는 그의 결단성이나 용기, 분명히 역사에 한 선을 긋고 갔던 그의 놀라운 행동들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어쩐 일인지 체사레에 이르러서는 빛이 스며들어오는 창이나, 그 앞에 서있는 화려한 옷을 입은 한 남자, 그 남자의 우아한 몸짓이나 나른한 분위기 같은 것들을 구구절절 늘어놓고 있어 마치 팬픽의 한 구절이라도 읽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다. 결국 내가 피식- 웃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절대 이 책이 재미없다거나 질이 낮다거나 하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주인공을 로맨틱 만화의 주인공인 양 여기는 듯한 이 작가의 태도 때문이었다.
역사를 학문으로서가 아니라 이야기로서 좋아하는 나는 시오노 나나미의 책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므로 주인공에 푹 빠지는 성향 정도야 웃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지만, 그럼에도 얼마간의 거부감이 드는 것은 내가 인물을 바라보는 데 방해가 되는 이유일 것이다. 나는, 이 작가가 진정으로 자신의 주인공을 사랑하고 있다면 그에 대해서 조금만 더 말을 아껴주길 바란다. 찬사를, 감탄을, 다른 이와의 비교를, 멈추는 쪽이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을 좀 더 사랑하게 만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