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7년 3월 3일, 밀린 일기 쓰기 본문
이것은 기억의 탓이다.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진실로 그렇다. 사랑은 끝나도 고통은 생생하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했던 것은 사실이다. 꽤나, 진심을 다하여, 좋아했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그쪽에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하는 것과 무관하게, 내쪽에서 먼저 실망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쪽에선 꽤,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이 실망이 타당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납득 가능하든 그렇지 않든, 한 번 무너진 마음이 회복 불가능한 것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니까 나는 이 실망에 대해 재고할 마음은 없다.
마음은 참 우스워서, 좋아하는 마음이 어느 순간 갑자기 생겨나듯이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것 역시 순간이다. 난, 그토록 구질구질하게 굴던 내가 하루가 채 걸릴 것도 없이 단박에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게 된 것에 대해 기뻐한다. 내가 어떠어떠한 이유들로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던 것이 모순이 아니듯, 또 다시 어떠어떠한 이유들로 더 이상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게 된 것 역시 모순은 아니다. 아주 여러번, 내가 매우 지리멸렬한 바보처럼 느껴지던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들이 결국은 다 흘러갔음을 알고, 이제는 조금 기쁘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좋아하는 마음이 다 사라진 후에도 고통은 생생한다. 나는 내 마음이 기억하고 있는 시간에 대해 떠올린다. 고통은 그 시간에서 다시 살아나, 기억과 함께 현재인 양 행동한다. 그래서 깨닫기를, 사람들은 사랑이 이미 다 끝났음에도 기억이 잊히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사랑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착각한다. 내가 가끔 마음이 아픈 것은 좋아하는 마음이 남은 탓이 아니다. 이것은 좋아하던 순간의 기억이, 마음과 함께 사라지지 못하고 이곳 저곳에 남겨져 있는 탓이다.
그러니까 이 고통은 온전히 기억의 탓이다.
봄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기대.
모든, 혼란스러움으로부터 괜찮아지고 싶었던 시간이 지나간다. 봄이 온다. 사실 계절이 바뀌는 것으로 하여 운도 함께 달라질 거라는 건 인간이 가지는 우스꽝스러운 기대에 지나지 않지만,
나쁘지 않은 기대구나- 라고 생각한다. 계절이 바뀌니까, 좋아졌으면 좋겠다. 일도 그러하고, 관계도 그러하고.
즐거운 대화.
친구는 자신을 타인과 같은 하나의 존재로 놓아 두고 그 존재들을 객관적으로 봤을 때 자신을 꽤 괜찮은 존재로 인식하고 사랑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자기애'와 연관시켰고, 나는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자신의 행복과 안위와 편리함과 덜 고통스러움을 위해 행동하게 되어 있음을 '자기애'와 연관시켰다.
친구가 말한 것을 나는 '자기애'와는 조금 다른 '자신에 대한 만족'이라고 보고,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또한 친구의 말대로 '본능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자기애'가 아닌 '존재로서의 자신에 대한 애정'을 운운할 것이라면 그 또한 맞는 말 같긴 하다.
'어째서 나는 좋아하는 사람에게마저 이토록 냉담하고 불친절할까?'라는 나의 의문으로 시작한 친구와의 대화는, 결국 '난 나를 너무나 사랑하고 나보다 더 괜찮은 인간을 별로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타인을 별로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나의 결론으로 끝이 나려고 하였으나-
'다른 사람들이 네 말을 듣는다면 농담인 줄 알겠지만, 난 네가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아.'라고 친구가 덧붙여 역시 이런 것 때문에 이 친구와의 대화는 즐겁다는 것을 오늘 대화의 결론으로 내릴 수 있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