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더글러스 애덤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본문
이 책은 나에게 오랫동안 끊어지지 않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집중력이란 것을 거의 가지지 못했고, 그래서 이 책에 몰입하는 일이란 불가능처럼 여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마지막까지 다 읽은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읽던 책을 도중에 포기하지 않겠다, 라는 내 오기와 이 책을 다 읽지도 않고서 '그 책은 재미없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는 내 신념 때문이었다. (읽지도 않은 책을 향해 그 책은 별로야, 라거나 그 책보단 이 책이 낫지,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언제나' 비웃어 온 내가 똑같은 짓을 저지를 순 없지 않는가.)
어쨌건 난 내 오기를 꺾지는 않겠다는 오기와,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내 신념을 지키겠다는 신념 아래 이 책을 결국! 끝까지 다 읽어냈고,
그리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마지막까지 다 읽은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3~4권까지 책을 읽어내려 갈 때만 해도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그 어떤 누구에게도 반하지 않았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부분에 다다랐을 때 나는 어느 새 아서 덴트를 응원하고 있었고, 랜덤을 조금쯤 좋아하고 있었으며, 이 책이 다 끝나기 전에 마빈이 한 번 더 등장하길 바라고 있었다. 아무런 매력도 없는 등장 인물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새 나는, 그들의 행운을 바라고 그들을 좋아하며 그들을 보고 싶어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 책은 혼란스럽고도 혼란스러워, 말장난 이상의 것은 아닌 것도 같고, 또 때로는 정체불명의 무엇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막상 책의 결말부에 이르면 다소간의 슬픈 감정이 드는데,
그 슬픈 감정은 조금 당황스러우면서도 진실된 것이라, 나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응? 나 왜 슬픈 거야? 라고. 지금 너, 뭘 슬퍼하는 건데? 라고.
그러니까 생각하다가 답을 알아냈는데, 내가 슬퍼한 것은 아서가 너무나도 지구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난 일찍 고향을 떠나왔고, 꽤 오래 가족들과 떨어져 살았던 이유로, 종종 코스모폴리탄인 양 굴지만,
실은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고향'이라는 것에 대한 향수가 대단해서, 아서가 가진 그 지구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 뻐근하게 와닿았다.
응, 가슴이 조금 뻐근했다.
그래서 결국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조금 보람에 찼고, 보람에 차서 웃었고, 꽤 지루하게 펼쳐졌던 서막을 잘 참고 버텨낸 나를 칭찬했다.
가끔은 내 성격이 인생에 도움이 될 때도 있다. 그나마 책이라도 제대로 버텨내는 나라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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