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템플 그랜딘,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본문
템플 그랜딘은 말하길, 그녀는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야 완전히 언어적으로만 사고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내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은 참 놀라운 발언이다. 왜냐하면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완전히 언어적으로만 사고하는 줄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림으로 사고할 수도 있다는 것은 깨달은 것은 바로 이 책을 읽으면서부터였다. 언어와 사고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니까, 나는 모든 사고가 언어로부터 나온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있노라니 그림으로만 사고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이 책의 놀라운 힘은 바로 그런 것에 있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것과 아주 많이 다른 사실들이, 또는 그 동안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또 많은 사실들이 적혀 있음에도 그 모든 사실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데에 말이다.
나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언어로만 사고한다. 나는 이미지에 굉장히 약해서 두세번 가본 길도 잘 찾지 못하고, 분명히 마주보고 인사한 사람의 얼굴도 잘 기억 못한다. 예전에 사겼던 애인의 눈에 쌍꺼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이다. 그러므로 언제, 어떤 날, 어떤 장소에서의 기억이 그림으로 떠오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잘 모른다. 내가 기억을 떠올리는 방법은 주로 촉각이나 청각에 의한 것이다. 나에겐 그림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거의 없다.
그런데 템플 그렌딘은 이와 반대의 사고 방식을 지녔다고 한다. 아마 나보다도 조금 더 극단적인 경향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자폐인이 아닌데, 그녀는 자폐인이니까. 나는 보통 사람들과 비슷한데, 그녀는 다르니까. 그러니까 아마 한쪽으로 치우진 경향도 조금 더 극단적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마 그 극단성은 그녀가 살아가는 데 있어 얼마쯤은 방해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그 방해를 너무 잘 극복했고, 그 극단성은 오히려 성공의 요소로 이용했다. 그래서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남들과 다르다는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자폐인이 쓴 책이긴 하나, 자폐인이 얼마나 안쓰러운 존재인지에 대해서 말하는 책은 아니다. 자폐증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긴 하나, 그 병을 드라마틱하게 포장한 흔적은 전혀 없다. 어쩌면 템플 그랜딘은 포장한다는 게 무언지 모를지도 모른다. 그녀는 생각하는 대로 썼을 것이다. 책 속에서 저자의 감정을 느끼기란 아주 힘들다. 그러므로 감상은 순전히 우리들의 몫이 된다. 그리고 나는, 살아오며 감상의 몫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나에게만 맡긴 책은 처음 접한 듯하였기에 다소 생소한 느낌을 받긴 했지만 그럼에도 아주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응, 그래. 템플 그랜딘의 책. 아주 좋은 경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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