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장폴 뒤부아, 프랑스적인 삶. 본문

피도 눈물도 없이

장폴 뒤부아, 프랑스적인 삶.

dancingufo 2008. 4. 10. 00:10


적어도 요즘은, 삶이라든가 인생이라든가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은 읽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책을, 하필이면 이런 때에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분명히 실수다.

물론, 사는 일이 그렇게 즐거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진작 알아챘다. 생각해보면 사는 동안 ‘행복하구나.’라고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햇볕이 따뜻해서, 바람이 시원해서, 때로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때로는 가슴이 설렜지만. 그렇지만 어디쯤엔가 숨겨져 있을 법도 한 행운을 만나 ‘행복하다.’고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언제나 삶은 내게 불친절하다는 생각을 해야 했다.

그러니까, 삶에 대해서도 인생에 대해서도 환상이란 건 가질 수가 없었다. 사는 동안 내 인생이 지금과 크게 달라질 거라 생각지 않았고, 행복해지고 싶다는 바람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는 일이 앞에 놓인 길을, 끝이 잘 보이지 않는 그 길을 습관처럼 걷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다. 나는 좀 더 치열하고 좀 더 열정적인 시간들이 삶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삶을 살고자 했고, 그런 삶을 살지 못한다면 나를 미워하게 되리라 생각했다. 적어도 멈추지 못해서 춤을 추는 빨간 구두 아가씨처럼, 숨을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삶은 바로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계속해서 걸어나갈 뿐이다. 가끔 주변의 풍경이 달라지고, 평지를 걷다가 오르막길이나 내리막길을 만나는 정도의 변화는 있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멈춰.’라는 말이 들려오기 전까지 계속해서 걸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길이 보이기 때문에 걷는 것뿐이다. 보이지 않을 때까지는 무조건 걸어야 한다.

그런 사실을 깨달으면, 어쩔 수 없이 맥이 빠진다. 그렇다고 해도 결국은 또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 말고는 아무런 방법이 없겠지만.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맥이 빠지고 그리하여 또다시 내 방식대로만 사는 삶을 꿈꾸게 된다.

역시, 좋은 소설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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