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녹차의 맛 본문
녹차는 따뜻한 것보단 차게 해서 마시는 쪽이 좋다. 살면서 자연스럽게 변하는 것이 몇가지 있는데, 입맛도 그 중 한 가지인 모양이다. 나는 단지 녹차가 '쓰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하지 않았다. 단 맛, 매운 맛, 짠 맛, 맛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지만 나는 그 중에서 특히 '쓴 맛'을 싫어한다.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삼촌. 아들. 딸. 영화 속에서 가족들은 계속 찻잔을 들고 있다. 그런 가족들을 보다가 어쩐지 갈증이 나 냉장고 문을 여는데, 물병 속에 누가 녹차를 담아놓았다. 시원해서 쓴 맛마저 상쾌해진 녹차. 한 컵 가득 따라와 다시 영화를 본다. 커다래진 사친코가, 작고 이쁜 사친코를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가족들 중에서 사친코가 가장 마음에 든다. 조용한 아이의 눈에는, 소리없이 바람에 몸을 맡기는 나뭇잎의 초록이 담겨져 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방식이 있다. 내게 익숙하거나, 내가 좋아하거나, 내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하는- 사람들마다의 방식. 이 영화는 내게 낯설지만 나를 유쾌하게 하는 '방식'으로 말을 건다. 영화는 푸르다. 푸른 색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준다.
금지 구역에서 혼자 몰래 철봉 돌기를 연습하던 사친코가, 제일 먼저 성공을 한 것은 할아버지의 그림 속에서이다. 멋지게 철봉에서 내려와 기분좋게 웃어 보이는 사친코를 봤을 때, 코끝이 시큰해진다. 그리고 사친코는 다시 금지 구역으로 향하고, 팔짝 뛰어 철봉 위로 오르고, 그리고 보기 좋게 철봉을 휘익 돌아, 기적처럼 탁- 땅을 밟는다. 성공이다. 바람이 분다. 사친코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린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하게 서있는 사친코의 눈은, 초록빛이다.
일견 괴이해보이는 가족이긴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누구나 남들의 눈에는 신기하게 느껴지는 특성 한 두가지쯤을 가지고 있다. 이 가족에게서 느껴지는 '소박함'은 그들이 사실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무술을 선보이거나 손녀에게 짓궂은 장난을 걸어대던 할아버지는 죽고, 전업주부의 삶을 견뎌가던 어머니는 다시 자신의 일을 찾고, 옛사랑을 잊지 못하는 삼촌은 그녀와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기 시작하고, 첫사랑에 빠진 아들은 소녀와 가까워지고, 거대한 자신과 만나는 것을 고민하던 딸은 멋지게 철봉을 돌아 내리던 순간 큰 자신을 하늘로 날려보낸다. 내내, 나에게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던 영화는 결국 이렇게 끝을 맺는다. 나는 가득 따라왔던 녹차를 끝까지 마셔버리고는 영화 재생 프로그램을 끈다.
이 영화는 초록으로 시작해 초록으로 끝난다. 초록은, 사람의 마음에 위로와 평화와 미소를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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