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5년 7월 11일, 꼬리에 꼬리를- 본문
10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퇴근해서 돌아오면 12시가 된다. 하루 중 14시간이 고스란히 출근과 일과 퇴근에 쓰이고 있고, 나머지 10시간 중 절반은 잠을 잔다. 씻고 청소하는 시간을 최대한 짧게 잡아도 결국 하루에 내게로 돌아오는 시간은 고작해야 서너시간. 그 시간 안에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인터넷을 하고, 일기를 쓰고, 얘기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아무리 하고 싶고 보고 싶은 게 많아도 그 모든 일을 무조건 서너시간 안에 끝내야만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건 안다. 그러니까 나도 이렇게 사는 것이 그냥 사람처럼 사는 거라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생활을 견디기가 힘들고, 다른 사람들 역시 이런 생활을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의 하루하루를 돌아볼 때마다 내가 소모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쓸모없는 일들에 의해 소모되고 있다는 생각. 나의 에너지는 이렇게 다른 일들에 쓰여져서 결국 남는 것이 없어질 거라는 생각. 치열하게, 부지런하게, 생기있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또 닮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나를 반성하기도 하지만- 사람에게는 한계란 것이 있는 법이다. 철이 든 이후 줄곧 그렇게 살아보려고 노력했지만, 그렇게 사는 것을 나는 할 수 없다. 그것은 내가 해낼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아니다. 나는 내가 해낼 수 있는 방식 대로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어떻게 되든 1년을 버텨보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1년을 산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1년 후에도 나는 가난할 것이고, 1년 후에도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을 것이다. 필요한 것은 결단력과 용기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명백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 일상에서 벗어나면 또 내가 나를 책임지기 힘들어지고, 그리하여 타인에게 짐이 되거나, 그로 인해 비참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나를 한번도 믿어본 적 없는 것은 바로 나이다. 내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누구도 나를 비참하게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해왔지만 나는 나에게 올바른 가치관이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진행시켜줄 용기, 생각의 우물에서만 주저앉아있지 않게 할 행동력을 심어준 적이 없다. 때문에 나는 비참해졌고, 결국 나를 비참하게 만든 것 역시 내가 되어버렸다. 생각해보면 선천적인 의지박약에 시달리는 것은 바로 나이다.
절실한 꿈을 이야기하면서 노력하지 않는 타인을 비웃은 적이 있다. 그렇게 절실하다면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웃는 것, 사람들을 만나는 것, 즐거운 다른 모든 것을 잊고 꿈만 좇으며 살면 되지 않냐고 타인을 비웃은 적이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는 순간에 가슴 한 켠 찔려하지도 않은 나는 절실한 꿈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조차도 없는 셈이다. 모든 것은 자기 변명식으로 이루어졌다. 정말 내가 이 삶을 버텨낼 수 없다면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웃는 것, 사람들을 만나는 것, 즐거운 다른 모든 것을 잊고 버텨낼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용기니 결단력이니 생각할 것 없이 정말로 다른 삶을 원한다면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이 생각에는 반드시 끝이 있어야만 한다. 나는 이 생각을 언젠가는 끝을 내야만 한다. 쉽게 않겠지만, 계속해서 살기로 했다면 사는 동안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오늘은, 또는 내일은, 이라고 하루하루 생각만 하는 것으로는 더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로만 치닿을 것이다. 결국 나를 살게 할 것은 나 자신 아닌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것도 나 하나 뿐인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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