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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터 그라스, 양철북. (1~2). 본문

피도 눈물도 없이

권터 그라스, 양철북. (1~2).

dancingufo 2008. 9. 27. 01:28
모든 인간에게는 자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해 보았다. 그러니까 나는 스무살 이후로 줄곧, 내가 곧 어른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려 왔으니까 말이다. 때로는 아직도 사춘기 소녀로 살려 드는 나를 경멸하거나 혐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어린 아이의 시간에 머물고자 하는 소망은, 비단 나의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인간은 아예 평생을 세 살짜리로 살기 위해 고의로 성장을 멈춰 버리기도 하니까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어른의 사고력을 가지고 있었던 오스카는 자의에 의해 세 살 이후 성장을 멈춘다. 물론 스무살이 넘은 후, 아버지를 땅에 묻으면서 자라야한다- 라고 마음 먹은 그는 몇 개월간에 걸쳐 20cm게 넘게 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오스카는 여전히 1m 20cm가 조금 넘는 난쟁이일 뿐이다. 권터 그라스의 <양철북>은 바로 이 난쟁이 소년의 눈을 통해서 전쟁 전후의 독일을 그려내는 작품이다.

<양철북>의 시간적 배경은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함께 포함한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모두에서 전쟁의 주범으로 꼽힌 독일의 모습은 그야말로 살풍경스럽다.

오스카의 아버지 마체라트(오스카는 마체라트가 자신의 친아버지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는 자발적으로 나치가 되어가지만, 오스카 어머니의 애인인 얀(오스카가 자신의 친아버지라고 추정하는 이이다.)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죽음을 맞는다. 오스카에게 북을 제공해주던 마르쿠스 아저씨 역시 매한가지다.

하지만 오스카는 이들의 행동이나 죽음에 대해 어떤 감정적인 흔들림도 보이지 않는다. 오스카는 아무런 정치적 입장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오직 세 살짜리 아이처럼 순간 순간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뿐이다.

권터 그라스는 이 작품에서 오스카의 눈을 통해 독일의 추악한 면을 그려내는 동시에, 오스카와 같은 개개인의 무관심이 결국 나치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독일의 국민들은 나치당에 의해 피해를 입은 이들이 아니라, 나치당을 만드는 원인이 된 책임자라는 것이다.

결국 그라스는 쉽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이 이야기를 통해서, 조국이 지은 잘못에 대한 반성을 하고 있는 듯하다. 아무것도 반성하지 않고 어떤 일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오스카라는 주인공을 통해서 그라스는 제 나라의 사람들에게 반성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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