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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 로얄

dancingufo 2005. 5. 16. 19:45



호시노 때문이었다. 릴리슈슈의 호시노 말이다. 유명한 영화였지만, 한번은 봐야겠다 마음은 먹고 있었지만, 호시노가 아니었다면 인터넷을 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상한 일은, 그렇게 인상 깊은 존재였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릴리슈슈 이외의 다른 영화 속에서 호시노를 재빨리 구분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진 속에서 찾아보자면, 두 명의 남자 아이 중에서 좀 더 뒤쪽에 앉아있는 아이. 나는 이 아이가 호시노라는 걸, 영화가 중반부에 접어들었을 때에야 확신했다-_-

하지만 배틀 로얄의 미무라(릴리슈슈의 호시노)는 영화 속에서 별다른 존재감이 없다. 영화의 주인공은 미무라보다 앞에 앉아있는 사내녀석 나나하라 슈야(본명은 후지와라 타츠야)와 상처를 입은 채 비스듬하게 넘어져있는 노리코(본명은 마에다 아키). 친구를 죽여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이 생존 게임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이들 역시 슈야와 노리코이다.

문제는, 이 영화가 어째서 그렇게까지 사회적인 반향을 불어 일으켰을까? 하는 의문이 들 만큼(일본 사회와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건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는 그다지 잔인하지 않았고, 오히려 조금 유치하거나 우스웠다는 데 있다. '생존 게임'을 표어로 내걸었지만 영화는 초반부터 '마지막에 누가 살아남을 것인지, 대충 어느 순서대로 죽을 것인지'를 충분히 예측하게 만든다. 그래서 긴장이랄 것 없이 그 (표어만 내건) 생존 게임을 지켜봤지만,

그래도 며칠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조금 슬픈 구석이 있긴 했다. 아름답고 장중한 음악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아무리 성적 매력을 잔뜩 강조한 교복을 입고 있어도, 아이들이 아직 아이였기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무표정하고 덤덤한 기타노 다케시의 얼굴에 배여있던, 이상한 쓸쓸함과 허탈함 때문이었을지도.

어쨌든 일본의 아이돌 스타를 대거 배출해 낸 이 영화에는 새로운 발견의 재미란 게 있었다. 무자비하게 친구들을 죽여대던 미츠코가 [GO]의 여주인공과 동일 인물이라는 것(영화를 보면서도 몰랐다. GO에서보다는 이 영화에서 더 이쁘게 나온다). 그리고 너무 낯이 익어서 대체 어디서 본 걸까, 를 내내 궁금하게 만들었던 치구사가 [킬 빌]의 교복 소녀와 동일 인물이라는 것. (왜 낯이 익은 건지를 알아내기 위해 그녀의 프로필을 들춰보니 '킬 빌'에 출연을 했단다. 그 순간 떠올랐다. '킬 빌'에서 우마 서먼을 향해 무시무시한 철퇴를 휘날리던 일본 소녀의 얼굴이.) 그러고보니 영화 속에서 슈야와 노리코를 도와줬던 카와다도 [GO]에 출연을 했다. 쿠보즈카 요스케의 선배였지, 아마.

영화의 소재가 참 좋다. 아쉬운 것은, 때문에 더 잘 만들 수 있었을 거라는 점이다. 물론, 보는 입장에서 무슨 말인들 못하겠냐마는. 가끔 소재가 참 멋져서, 신선해서, 더 많은 꺼리를 제공하고 있어서, 더 좋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본 것 같은 영화를 보면 참 많이 아쉽다.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그랬고, 배틀 로얄도 그렇다. 게다가 소년, 소녀의 이야기라면 일가견이 있는 일본 아닌가.

아직 2편을 보지 못해서 이 영화가 어느 지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1편보다 나은 2편이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호시노 때문이라도 봐야 하겠지만, 충분한 가능성을 썩히는 건 아쉬운 일임이 분명하니까.

그나저나, 슈야와 노리코는 2편에서도 살아 남을까? 그럼 죽었던 미무라는 다시 살아나기라도 하는 걸까?




* 2편 보고 나서 알았다. 오시나리 슈고는 2편에서 미무라가 아닌 다른 역으로 출연한다. 쉽게 말해 눈 가리고 아웅. 슬프게도 2편은 1편에도 훨씬! 못 미쳤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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