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본문
사람들은 홍상수의 영화에 열광하거나, 불평한다. 주로 영화 좀 본다는 애들은 열광하는 쪽이고, 주로 남자애들은 불평하는 쪽이다. 그리고 나는 특별히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의 영화를 불편해하는 쪽도 아니니 일단 '중간'이라고 해두자.
사실 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리얼리티'를 그의 영화에서 잘 발견하지 못한다. 홍상수의 영화에는 로맨틱함이 없을 뿐 환상이 없지는 않다. 그의 영화는 분명히 남다른 면을 가지고 있지만, 또 때로는 진부하기도 하다. 그의 영화가 재밌는 건 인정하지만 썩 즐겁지는 않은 것도 사실이다.
[강원도의 힘]은 좋았다고 기억한다. [오, 수정]까지도 신선했다. [생활의 발견]에는 또 다른 재발견의 맛이 있었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는,
남자가 있고, (언제든지 섹스 가능한, 그래서 남자의 미래인) 여자가 있고, (남자의 섹스를 가능하게 하는) 술이 있으며, (남자에게 유일하게 의미를 가지는 행위인) 섹스가 있다. 내 눈에는 아직 그것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은 여자에게 성적인 폭력을 가한다는 이유로 그토록 가열차게 김기덕을 비난하는 페미니스트들(또는 여성 비평가와 여성 영화 팬들)이 어째서 홍상수에게는 그런 비난을 퍼붓지 않으며 오히려 찬사와 박수를 보내는가 하는 점이다. 어째서 김기덕의 영화에는 엄지 손가락을 들어올리는 남성들이, 홍상수의 영화를 보면 불편해하고 그래서 불평하는가 하는 점이다. 어차피 여자를 '환상속의 그대'로 규정해놓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다 들어주는 존재로 그리는 것은 홍상수도 김기덕도 마찬가지다. (나는 김기덕에게 역시 호의도, 악의도 없다.)
어쩐지 이 영화는 홍상수에게 어떤 기점이 될 것 같다. 앞으로 홍상수는 달라질 수도 있고 더해질 수도 있다. (물론 홍상수는 주위에서 뭐라고 지껄이든 자기 스타일을 쉽게 변화시킬 인물은 아니며, 그런 이유로 이 영화 속의 남자들은 여지껏 그가 그린 남자 캐릭터 중 가장 비열하고 재수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나는, 이 영화 때문에 처음으로 홍상수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좋게 말해 '중간'이지 솔직하게 말해 '무관심'했던 이 감독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 열광할 것인지 아니면 불평할 것인지 입장을 정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앞으로는 어떤 입장을 취할지도 모를 가능성은 생긴 것이다.
확신하는 것은 홍상수가 리얼리스트는 아닐 거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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