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1그램 본문
나오미 와츠가 좋다.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뚜렷하게 인식하게 된 건, 내가 나오미 와츠를 마음에 들어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냐리투의 영화는 지적이었고, 베네치오 델 토로의 눈빛은 짐승같으면서도 연약해 보여서 슬펐다. 숀 펜의 환상적임이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고 해두자. 그러니까 이냐리투의 마술같은 솜씨와 두 배우의 카리스마만으로도 이 영화는 처음부터 '게임 끝!'을 외쳐도 좋은 영화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의 기대가 너무나 컸기 때문에 내가 이 영화로서는 다소 억울할 '기대 만큼 못 했다'라는 감상을 가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와중에도, 내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거나 많은 감탄사를 늘어놓거나, 두 눈을 집중하고 있었던 건 나오미 와츠였다. 나오미 와츠는 착해 보이는 볼을 가졌고, 온순해 보이는 눈을 가졌고, 평범해 보이는 몸짓을 가졌지만,
나오미 와츠는 다부지고 고집스러운 입술을 가졌고, 차갑고 섬뜩한 백색의 피부를 가졌으며, 제대로 분노하고 슬퍼할 줄 아는 눈빛을 가졌다. 쉽게 말하자면 예쁘장하다는 한 마디로도 설명가능할 것 같던 이 여배우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여러가지 느낌을 구석구석 제 몸에 묻혀서 나타나게 됐는지, 21그램을 보는 내내 내가 놀라웠던 것. 나오미 와츠의 발전. 늪처럼 깊어지고 넓어진 나오미 와츠.
나오미 와츠를 처음 본 것은 멀홀랜드 드라이브. 다시 나오미 와츠를 만난 것은 프렌치 아메리칸. 그리고 21그램에서 세번째 그 얼굴을 만난 후에, 나오미 와츠를 보기 위해 새삼 미국판 링을 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영혼의 무게가 21그램 어쩌고 저쩌고 한 건 사실 좀 유치했지만, 우리가 그렇게 악악거리고 바둥대며 소리치고 절규하는 모든 것들의 무게가 사실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기억해둘만도 하다. 편집의 장난으로 (굳이 이름 붙이자면) 감동 (이라 할 만한 감정)을 더 부풀렸다는 게 그 당시에는 좀 꺼림칙했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것 같다. 나름대로, 그래야만 했던, 나로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냐리투는 알고 있을.
그러니까 내가 모르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빴다고 말하지는 말자. 21그램은 분명 기대이하였지만, 기대이하인데도 불구하고 꽤나 좋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영화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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