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릴리슈슈의 모든 것 본문
한동안, 영화를 봐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한동안, 영화를 봐도 아무런 하고 싶은 말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이 영화를 만났기 때문에 '릴리슈슈' 이 이름을 가슴 속에 넣어두고 산 것은 운명이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릴리슈슈의 모든 것. 이 영화를 보고 싶어한 것은 3년 전부터의 일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어느 극장에서도 이 영화는 개봉되지 못했고 (영화를 수입해 놓고도 개봉하지 않은 것은 물론 돈벌이의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별히 선호하는 감독이나 배우도 없었건만 이상하리 만큼 이 영화에 마음을 매여두고 있던 나는 결국 '언젠가는 보고 말테야' 하는 아쉬움만 간직한 채로 살았다.
그리고 3년. 갑자기 릴리슈슈, 먼지 쌓인 이 이름이 가슴에서 투투둑- 고인 물을 튕기며 뛰어 오른다. 잊은 줄 알았던 이름을 다시 만났다. 낯설음 반, 반가움 반으로 어색한 손을 내민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빌리 엘리어트. 우울한 청춘. 나는 종종 소년이나 소녀들의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긴다. 떠도는 소녀, 방황하는 소년들 때문에 나는 아팠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 치명적인 기억을 남긴 것은 저를 외면하는 제 짝의 모습에 짝에게 가져다 주려던 우유를 밟아버리던 효신이었고, 추락할 순간을 준비하는 친구에게 내달리다 계단에서 넘어져 소리 지르던 쿠조였다. 그리고,
친구의 짝사랑 상대를 유린하도록 명령한 후,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제 친구를 쳐다보던 호시노.
하늘을 날고 싶어하던 츠다. 제 두 손 안의 파란 사과를 내려다보던 유이치. 햇빛 가득한 음악실에 앉아 드뷔시를 연주하던 쿠노.
분명히, 호시노는 유이치를 좋아했을 것이다. 아니, 장담하건데 호시노는 유이치를 좋아했다. 어째서 호시노가 츠다에게 원조 교제를 강요하고, 유이치를 왕따시키며, 쿠노를 성폭행 당하도록 만든 건지는 나도 모른다. 어째서 호시노가 다정했던 유이치에게 등을 돌렸고 자신이 서있던 (이지메 당하는) 자리에 유이치를 몰아 넣은 건지도 나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호시노가 유이치를 좋아했다는 것. 그리고 호시노도 분명히, 울고 싶었을 거라는 것.
그런 호시노 때문에 나도 좀 울고 싶었다는 것.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꼭 수고를 해서라도 이 영화를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와이 슈운지는 '릴리슈슈의 모든 것이 나의 유작이었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러브 레터, 4월 이야기도 좋았지만 유작으로서라면 이 영화가 '가장' 좋다고 나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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