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알 포인트 본문
로미오 포인트.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 그들은 무언가를 찾기 위해 그곳으로 간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언가를 찾아야만 하기 때문에 그들은 절대로 해피엔딩을 맞을 수 없다. 그들이 '불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들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을 행하러 간다.
로미오 포인트로 향한 9명(또는 10명)의 병사들이 찾은 것은 산 자도, 죽은 자도 살 수 없는 곳에서 떠도는 귀신일 뿐이다. 그리고 그 귀신들이 그들에게 선사한 죽음이다. 빙의. 떠도는 넋은 그들에게 스며들어 그들의 손이 총을 들게 하고, 그 총으로 동료를 죽이게 만든다. 살아남은 자는 빙의될 가능성을 잃은 병사 뿐이다. (그는 귀신이 들어올 수 있는 눈을 잃었다.)
영화가 반드시 친절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구성에서의 치밀함은 친절과는 다른 것이다. 친절은 있어도 없어도 되는 '배려'지만 치밀함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수'다. 영화가 조금만 더 치밀하게 구성되었다면, 관객에게 알 것은 알려주고 알려주지 않아도 좋은 것만 추측하도록 내버려 두었다면 이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 덜했을 것이다.
또 한가지의 아쉬움은 병사들의 연기력. 장상병은 영화의 '포인트'다. 그런 그가 좀 더 제대로 연기를 해냈다면 그의 공포가, 그의 슬픔이, 더 간절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혼자 남아 죽은 동료들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에서 배우는 스스로의 감정을 못 이겨 결국 눈물을 흘렸다지만, 최종적으로 느끼는 건 관객이어야 한다. (배우가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칭찬할 부분도 못 된다. 물론 배우마다 그 정도에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장상병이 불쌍하다는 건 알았지만, 어쩐지 느껴지진 않았다. 물론, 내가 무딘 탓일 수도 있다.
열 여덟의 장상병. 베트남에서 총을 들었던 이들은 바로 그런 소년들이었을 것. 그게 슬펐다. 나는 단지, 그게 슬펐다. 장상병의 말간 얼굴. 앳된 눈. 엄마에게 소 한 마리를 사다주는 게 소원의 전부였던, 열 여덟 소년.
텔미썸씽의 작가. 공수창 작가는 이 영화를 찍으면서 공수창 '감독'이라 불리는 걸 허락했던 순간을 저주했다고 하지만, 데뷔작 치고 이 정도면 칭찬을 받아도 괜찮다. 펜만 들고 살던 사람이 현장에서 직접 움직인다는 것은 그 동안의 삶을 대하던 태도를 버리고, 새로운 태도로 새 삶을 만들어가는 것과 같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는 이 감독에게는 우선 격려의 박수. 나머지 평가는 다음에 들고올 새로운 작품에서 하면 되겠지만, 궁금한 것은 공수창씨가 과연 다음 작품에서도 '작가'가 아닌 '감독'이 되려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부디 이 감독이 너무 호된 신고식에, 도망쳐 버리지 않길 바란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