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본문
소피아 코폴라.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딸. 대부3의 여주인공. 현재 아카데미 어워즈의 열렬한 구애를 받고 있는 작가 겸 감독.
이런 여자는, 딱 이런 영화를 만들 것이다- 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영화 속의 남자와 여자는 외롭다. 사실 사랑뿐만 아니라, 의사 선생의 설명과 CF감독의 연기 주문마저도 통역이 안 되는 것이 영화 속 세상이다. 그러니 사랑이 통역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외로움도 마찬가지. 허무나 권태도 마찬가지다.
영화 속의 남자와 여자는 외롭고, 권태롭다. 그렇지만 그들은 며칠씩 고급 호텔에 묵어도 주머니 사정은 걱정할 필요없는 '상류층'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살짝 감정 이입을 하려다가 만다. 그들이 살짝 안쓰러워지려다가 또 만다. 잘못 보면 배부른 투정이다. 그래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건, 돈 많다고 해서 외롭지 말란 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소피아 코폴라에게 어울린다. 이 여자의 약력을 훑어보면, 방황한 흔적이 역력하다. 거장의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계인들이 다 지켜보는 영화의 여주인공이 되어야 했다. 덕분에 최악의 여주인공 상같은 걸 수상해야 했고, 버텨내기 힘든 악평과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그 이후에는 과감하게 연기를 포기하는 대신 패션이나 회화를 배우고 뮤직 비디오를 연출하기도 했다. 작가도 했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니까 영화 속에서 "글을 쓰려니 능력이 없고, 사진을 찍으려니 그것 역시 마땅찮다"라고 말하는 샬롯은 감독의 분신이기도 하다.
거장의 딸로 태어났으니 입에 풀칠하고 사는 건 걱정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꽤 오래 방황했다지만 자기 할 일을 찾아가는 동안 든든히 뒤를 봐주고 지켜봐준 집안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사람'의 딸로 살아내는 일, 세상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정'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일, 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분명히 남들보다 더 외롭고 남들보다 더 지치기도 했을 것이다.
이 여자는 인간의 섬세한 감정을 제대로 바라볼 줄 알고, 그 외로움을 재미있게 얘기할 줄도 안다. 그렇지만 어쩐지, 이 여자가 이야기하는 외로움과 권태에서는 부르조아적인 냄새가 난다. 그래서 정말로 쉽게 말해서, 내가 꽤나 마음에 들게 이 영화를 감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배부른 투정이라는 것이다.
물론 빌 머레이의 연기는 완벽했고, 스칼렛 요한슨의 표정은 심장을 울리고도 남았다. 어디 그뿐이었을까. 밥이 뱉어낸 대사 하나하나는 모두 다 명언이었으니, '소피아 코폴라'의 작가로서의 역량 하나만도 칭찬할 만하다. 꽤나 똑똑하고 또한 당차 보이는 이 여감독이, 언제든 기대를 걸어도 좋을 만큼의 작품을 내 코 앞으로 내밀었으니- 다음에는 또 이 한계를 넘어서 얼마나 마음에 드는 작품을 가지고 나타날 지 기대해봐도 좋은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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