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5년 6월 16일, 활력소 본문
짧게 머리를 깎은 승룡이는 몰라보게 남자다워졌다. 처음 봤을 땐 너무나 이쁘장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이쁘다는 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얼굴이 되어버렸다. 그러고보니 쌍꺼플진 두 눈이 이뻐서 그렇지, 새까만 피부나 단단한 골격은 오히려 또래 아이들보다도 더 사내아이답다. 문제집에 열중하는 옆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새삼 놀래서 말을 건다. 승룡아, 너 너무 터프해. 승룡아, 너 너무 멋지다.
스물 다섯까지 몰랐던 사실이지만, 요즘은 자주 깨닫는 것이 나는 아이들을 참 좋아한다. 아기, 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냥 아이들을 좋아한다. 잘 생긴 녀석도 있고 그렇지 않은 녀석도 있고 똑똑한 녀석도 있고 그렇지 않은 녀석도 있고 말을 잘 듣는 녀석도 있고 그렇지 않은 녀석도 있지만, 아이들은 모두 다 저마다의 사랑스러운 면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아이들의 덜 자란 손을 잡고,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춰서 얘기하는 일이 좋다. 내가 교육이라는 일에 어느 정도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그 일이 아이들을 만나는 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승룡이는 딱 내 마음에 들게 잘생긴 녀석이고, 반에서 늘 1등만 한다는 똑똑한 녀석이고, 자기 할 일 알아서 잘 한다는 의젓한 녀석이다. (게다가 반대표로 육상 선수로 뛸 만큼 튼튼한 녀석이기도 하다!) 그런 승룡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백점만점! 이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워주는 일이고, 모르겠다는 문제를 함께 풀어주는 일이고,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웃으면서 반가워해주는 일이다. 가끔 떡뽁이나 햄버거로 저녁을 때우고 싶어하면 함께 나가줄 수 있고, 몸이 좋지 않아서 집에 있는다고 하면 전화를 걸어 걱정해줄 수도 있다. 내가 이뻐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승룡이는 꼭 내 눈을 맞추고 웃고 난 후에야 집으로 돌아간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는 진심이 통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요즘의 나에게 승룡이와의 관계보다 즐겁고 유쾌하고 흡족한 관계란 없다. 때문에 요즘의 나를, 제대로 웃게 해주는 사람은 승룡이 뿐이다.
삶이 그나마 나에게 너그러운 점은, 이렇게 웃을 일이 하나도 없는 바닥에 다다랐을 때- 겨우겨우 숨이라도 쉴 수 있게 활력소 하나 정도는 내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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