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5년 6월 30일, 쓰다만 일기 본문
01.
나는 샤워를 하고 커피를 끓였다. 달달달 끓는 물소리를 들으니 온 몸에 끈적하게 묻어있던 피곤이 그제야 조금 옅어지는 듯 했다. 동생의 방에서 이부자리를 들고 나오던 언니가, 그런 나를 흘끗 쳐다보았다.
“새벽 같이 일어나야 하는데, 무슨 커피야.”
언니의 목소리에는 책망이 묻어 있었다. 외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언니는 예민해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려면 뭐 어때?’라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위로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걸 줄 수 있는 것은 니코틴이나, 카페인뿐이었다.
엄마 방의 문을 열고 들어서며 손에 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엄마는 내가 스무살이 훌쩍 넘을 때까지도 밥 한번 짓게 하지 않으셨다. 그런 티를 고스란히 내느라 나는 커피 한 잔도 맛있게 끓여내지 못했다. 사실 내게 필요한 건, 설탕이 잔뜩 들어간 엄마의 커피였다. ‘엄마. 이게 설탕물이지, 커피야?’ 엄마가 내 책상 위에 커피를 올려줄 때마다 나는 엄마에게 빈정을 놓았지만 사실 그 커피의 단 맛은 언제나 내게 신경 안정제의 역할을 했다. 그렇지만 오늘 엄마는 내 곁에 없었고 내 곁으로 돌아오지도 않을 터였다. 오늘 엄마는, 엄마의 엄마 곁을 지켜야 했다.
엄마가 고아가 됐다. 외할머니의 죽음은 나에게 그런 의미였다. 외할아버지는 엄마가 열 다섯 소녀일 때 돌아가셨다. 그리고 외할머니는 삼십 오년을 더 사셨으니 이른 죽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는 오늘부로 고아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사실은 어쩐지 나를 무척 슬프게 했다. 나는 엄마에게 위로가 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엄마는 나처럼 니코틴이나 카페인에게서도 위로를 찾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이제 엄마는 사는 일이 외로울 때 누구에게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걸까? 엄마가 외로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게 외할머니의 죽음은 그런 의미였다.
“엄마, 왜 이렇게 일찍 가. 엄마, 엄마 나 두고 이렇게 가면 어떡해.”
기억하건데, 그건 내가 생명을 가진 이후 목격한 광경 중 가장 슬픈 광경이었다. 엄마는 울 수 있는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참을 수 없는 불안함에 빠지고 말았다.
“엄마, 이렇게 가면 어떡해. 나는 어떡하라고, 엄마.”
엄마의 눈물. 엄마의 울음. 그런 것은 내게 낯설고도 생소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주저앉아 우는 엄마를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엄마의 울음소리를 들은 후에야 나는 그 사실을 처음 알았다.
할머니는 불 속에서 재가 되셨다. 엄마는 불가마로 들어가는 할머니의 시체를 붙들었다. 그 때 처음 울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았다. 나이든 한 여자의 얼굴일 뿐이었다. 그 얼굴이 나로 하여금 ‘내 어머니가 한 줌의 재로 변하는 순간을 지켜보는 건 어떤 기분인 걸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내가 짐작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서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고통이 언젠가 내 것이 되리라는 생각에 문득 엄마를 따라 소리 내어 울고 싶어졌다.
02.
하드를 뒤지다가 발견한, 2년 전의 일기. 오늘 깨달았는데, 쓰다만 게 참 많다. 그런데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하드 안이 깨끗해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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