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5년 7월 12일, 연례행사 본문
01.
언제나 그렇듯, 미친 듯이 일에 쫓겨 정신없이 문서들을 훑어보고 있는데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우리 축구니 뭐니 때려치우고 그냥 놀러나 가자.]
휴가를 제대로 못 즐기게 된 것에 대한 투정인가, 생각을 하는데 문득 머리를 스치는 일이 하나 있었다. 우리가 여름 휴가 대체용으로 잡아뒀던 동아시아 대회 투어 일정. 그 동아시아 대회에 나올 수 있을 지 없을 지 미지수였던 녀석이 좋아하는 선수. 혹시나 하면서 왜 그러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아니나 다를까였다. 돌아오는 답은 예상한 그것에서 조금도 비껴가지 않은 것. 녀석이 그토록 훌륭하다고 믿고 기대하고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은 대회 명단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훌륭하다고 믿고, 기대하고,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 역시- 언제나 그렇듯 어김없이 그 명단에서 빠져 있었다.
02.
더운 날이었다. 나는 에어컨 밑에 앉아서 커피 한 잔 마실 여유도 갖지 못한 채 일에 밀려 허덕거렸다. 잠깐 인터넷을 열어 명단을 확인할까, 하다가 그냥 관두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포기인 걸까. 체념인 걸까. 나는, 이대로도 나쁘지 않다고 나를 다독여왔지만 그것은 언제나 절반도 진심일 수 없는 마음이었다. 결국엔 억울해졌다. 훌륭한 선수들이 많다는 건 알지만 그도 참 많이 훌륭했다. 누구라도 그 사실을 모를 리 없건만, 마치 그런 선수는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 다른 것만 보고 가버려서 결국엔 또 억울해졌다. 나에게만 훌륭할 리 없다고 늘 생각한다. 이토록 강하며 성실하고 한결같은 선수는 흔치 않다고 또 생각한다. 누구와 나란히 세워도 멋진 호흡을 뽐낼 거라고 다시 생각한다. 그렇지만, 선택은 내가 할 수 없는 거니깐. 내 몫은 그저 바라고 기대하고 믿는 것 뿐이니까. 이런 일로 다시는 우울해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결국에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 이것은 어김없이 돌아오는 연례행사와 같은. 차라리 기대조차 하지 않게 되는 것이 나을까. 차라리 바람조차 가지지 않게 되는 것이 나을까. 하고 싶지 않다. 지금쯤, 너는, 이미 그런 상태가 되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같은 건.
03.
여름은 조용히 내 곁에 와서, 지독할 만큼 들들들 나를 볶다가, 한바탕 몸살을 앓게 만든 후에야, 다음을 기약하며 떠나주겠지. 내가 행복해진다는 것은 지금의 내가 가진 무엇이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가준다는 것일까. 그럴 수 있다면, 너의 영광과 너의 승리도- 나의 행복 속에 포함되어 있기를. 그리하여 내가 행복해질 때 너도 영광을 차지하고 승리의 주역이 되기를. 우습겠지만 나는, 이런 바람을 고스란히 지닌 채 이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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