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황선미, 푸른 개 장발 본문

피도 눈물도 없이

황선미, 푸른 개 장발

dancingufo 2006. 6. 15. 03:28
 
이 동화에는 체념, 비슷한 것이 서려있다. 체념이 아니라면 쓸쓸함일까. 아니라면 그냥 삶에 깃들어있는 안쓰러움같은 것일까.

<마당을 나온 암탉>은 읽다보면 눈물을 펑펑 흘리게 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희망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잎싹은 굳세고 강한 주인공이고 결국 자신이 하고자 하던 것을 다 하며 지키고자 한 것을 다 지킨다. <일기 감추는 날>도, <초대받은 아이들>도 주인공 소년이 조금 안쓰럽긴 하지만, 그 다음에 펼쳐질 미래는 밝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과수원을 점령하라>는 변해가는 마을 안에서도 따뜻함과 가족이란 테두리를 지켜나가고 있는 인물들이 어여쁘다. 그런데 이 책은, <푸른 개 장발>은 그 모든 작품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다.

장발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모든 것을 잃는다. 동생을 잃고 어미를 잃고 모든 형제를 잃고 새끼들을 잃고 좋아했던 하얀 개를 잃고 특별히 애닳아했던 새끼인 고리를 잃고 그리고 미워했지만 그 곁을 떠나지는 못했던 목청씨도 잃는다. 장발은 계속 그렇게 잃기만 한다. 잃을 때마다 분노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지만 아무것도 되찾지 못하고 아무것도 지켜내지 못한다. 심장이 터지도록 짖어도 돌아오는 것은 없고 달라지는 것도 없으며 잃어버리는 일만 되풀이 될 뿐이다. 그래서 장발은 쓸쓸해서 온 마을을 걸어다닌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결국엔 먹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다가 목청씨가 죽은 날, 함께 눈을 감아버린다. 

장발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동화가, 해피엔딩도 아니고 행복이나 희망에 대해 말해주지도 않는다. 이 책엔 기분 좋은 일이나 즐거운 사건이 없다. 고리와 함께 사는 동안 아주 잠깐, 그리고 동이가 찾아올 때 아주 잠깐, 장발이 웃었던 것도 그 때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의아하게 바라본다. 동화 주제에 어째서 이렇게 쓸쓸한 것일까. 이렇게 계속 계속 잃게만 만들다니, 황선미도 강경옥처럼 독하기 짝이 없는 작가였단 말인가. 슬퍼져서 책상에 엎드려 있다. 개를 키우는 일도, 예쁜 강아지를 사오는 일도 늘 두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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