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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3일, 고양이의 생각.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9.01 ~ 2009.12

2009년 6월 3일, 고양이의 생각.

dancingufo 2009. 6. 4. 03:25

우리집 근처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산다. 한 마리만 사는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거의 매일 우리집 근처에서 우는 고양이는 한 마리인 것 같다. 이 고양이의 울음 소리를 처음 들은 건 이사를 오고 나서 얼마 후의 일이었으니 벌써 4년쯤 전의 일이다. 처음엔 앞집에(내 방은 앞집과 매우 가까이 붙어 있다.) 아기가 있는 줄로 알았다. 고양이의 울음 소리를 아기의 울음 소리로 착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자려고 누웠는데 다시 또 그 울음 소리가 들려서 가만히 듣고 있어 보니 아기가 아니라 고양이가 우는 듯했다. 그래서 난 내 방 창문 근처를 배회하는 고양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새벽에 어두운 방에 누워서 고양이의 울음 소리를 듣는 건 별로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검은 고양이든, 도둑 고양이든 별로 무섭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내가 키우지 않는, 그러니까 나와 친밀하지도 않고 나와 낯익지도 않은 고양이의 울음 소리를 듣고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좀 더 편히 잠들 수 있게 저 고양이가 내 방 근처에서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창문을 열고 고양이를 쫓아버릴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말이다.

문제는 여름이라 내가 창문을 열어놓을 때 발생했다. 나는 개방 공포증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문이 열려 있으면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서 집에서든 회사에서든 방문과 창문을 다 꼭꼭 닫고 다닌다. 그런데 여름이 되면 역시 방문까진 열지 않지만 창문 정도는 열어둘 수밖에 없다. 그래서 창문을 열어놓고 있노라면, 내 방 창문 바로 곁을 후다닥 지나가거나 창문 바로 밑에서 옹알옹알하며 우는 고양이 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는 정말이지 마치 내 방 안에서 나는 것처럼 가깝게 들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를 조금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종종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이 고양이를 한 번도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드디어 이 고양이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공기가 조금 답답한 것 같아서 환기를 시킬 겸 창문을 열어두었더니 아니나다를까. 고양이가 내 방 창문쪽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들리던 울음 소리가 조금씩 분명해지고 커졌기 때문에 고양이가 내 방쪽으로 다가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지나가지 않고 내 방 창문 바로 앞에서 옹알옹알 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 방 창문은 옆집의 담과 나란히 있어서, 옆집 담에 올라서면 내 방이 보이는 구조다. 그런데 내 느낌에 고양이가 바로 그 담에 앉아있는 듯했다. 

나는 창문을 등지고 컴퓨터를 하다가, 고양이가 내 바로 뒤에서 울고 있다는 걸 느끼고는 잠시 팔에 소름이 돋았다. 게다가 조금 심장도 두근두근 뛰었는데 대체 왜 고양이 소리 정도에 이렇게 긴장하는 거야! 라고 스스로 나무라며 긴장하지 않는 척을 했다. 그리고 대체 이 녀석은 어떤 녀석이기에 이렇게 몇 년 동안 꾸준히 내 방 근처를 오가는 건지 궁금해져서 용감하게(!) 이 녀석의 얼굴을 보기로 했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밖을 보았더니, 세상에나.

이 녀석이 담에 앉은 채로(앉아있는 모습까진 안 보였지만 위치상 분명히 거기 앉아 있었을 것이다.)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는 내 방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대체 고양이 주제에(고양이를 격하하는 건 아니다. 다만 '주제에'라는 건 내 말 버릇으로, 난 원래 아무데나 이 말을 잘 쓴다. 내가 그렇다는 걸 알려준 건 나의 둘째 언니인데, 별로 좋은 습관인 것 같진 않아서 고치고 싶었지만 나도 모르게 툭툭 튀어나올 때가 많다. 그리고 또 때로는 이 말을 써야만 하고자 하는 말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지금의 경우가 바로 그 경우다.) 어째서 남의 방을 궁금해하며 그런 자세로 목을 쑥 내밀고는 쳐다보고 있는 건지. 그 모습이 어이가 없고, 조금 우습기도 해서 그대로 선 채로 녀석을 보고 있자니, 이 고양이가 내 시선을 피하지도 않고 빤히 나를 쳐다보는 것이다. 흠흠흠. 고양이는 역시 보통이 아닌 동물이다.

어쨌든 그래서 나도 시선을 안 피하고 이 녀석을 쳐다보고 있다가, 좀 더 제대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창문쪽으로 걸음을 옮겼더니 한 발짝을 옮기자마자 후다닥 달아나버렸다. 내 방을 궁금해 했으면 나를 경계하지 말든가, 나를 경계할 거면 내 방을 들여다보지 말든가 해야지. 이건 참 고양이한테 낚인 기분밖에 안 든다.

......라지만, 실은 고양이가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자야할 시간이 일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난 지난 4년 동안, 내 방 근처를 배회하며 우는 녀석이 검은 고양이일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해 왔는데 그건 아니었다. 이 녀석은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고양이 색깔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흰색이랑 옅은 황토색이 섞여있는 털색깔 말이다. 몸집은 큰 것 같지 않고 눈은 고양이 눈(;), 귀도 고양이 귀(;). 뭐 여튼 그냥 평범한 고양이처럼 생겼다. 별로 무섭게 생긴 애는 아니라서 다행이다.

만약 다음에 또 내 방을 보러 오면 그땐 어떻게 할까, 하고 잠깐 생각해 봤는데 역시 내가 다가서면 달아날 테니, 못본 체 하고 내버려두는 게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역시, 내가 잠들려고 할 쯤에 창문 곁에서 울지는 않는 게 좋겠지? 

그런데 이 녀석은 왜 굳이 내 방 창문쪽으로 다가와서 내 방을 들여다본 것일까? 고양이의 생각,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역시 궁금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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