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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나는 유쾌했다. 확실하게 이 영화는 나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예쁘고 늘씬한 줄스의 덕이기도 했고, 그런 감독은 절대로 있을 것 같지 않은 미남 감독 조의 덕이기도 했고, 제스의 방에 걸려있는 베컴의 멋진 대형사진 때문이기도 했다. 아니, 그것보단 평범하다 못해 초라하지만 그 얼굴엔 주눅드는 법이 없는 제스의 덕이 컸고,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축구의 덕이 컸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슈팅 라이크 베컴'은 유쾌한 영화였다. 적어도 내가 보고 싶은 것을 유치하거나 어설프지 않게 내 코 밑에 들이밀어 주었기 때문에. 어느 자리에 서서 차도 기가 막히는 굴곡을 그리며 골문으로 향하는 베컴의 킥처럼, 줄스도 비록 일직선으로 달려가지는 못했지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자신이 갈 길을 향해서 간 것이다. 눈부..
Die Bad.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나는 몰랐어. 영화속에 어떤 위대함이 있다는 것. 류승완의 흔적을 쫓아 다니다가 어느 날 알게 됐지. 나는 '류승완 식'을 좋아하는 건 아니야. 그냥 죽거나 아니면 나쁘거나- 라고 말했던 이 영화 한 편에 뒷통수를 맞았던 거야. 그런데 참, 이상할 만큼 류승완 이 사람이 나는 좋아. 나와 다르게 말하고,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만드는 것도 아닌 저 감독이, 저 배우가, 저 사람이 나는 참 좋아. 별 감흥도 못 느꼈던 '오아시스'를 다시 본 건 설경구나 문소리 때문이 아니었어. 참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하던 류승완 때문이었지. 류승범을 처음 본 것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였어. 저렇게 못생긴 배우가 또 어디 있을까, 싶었는데 잘난 피가 어디 ..
킬 빌은 즐거운 놀이이다. 킬 빌을 본다는 것은 타란티노의 한 바탕 놀아나는 파티에 참석하는 일이다. 그것은 잔인하고 그렇기에 더욱 더 유쾌한 놀이이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 놀이의 위대함은 느낄지언정 그 놀이의 재미는 느끼지 못한다. 타란티노의 '피의 파티'보다는 차라리 네 시간을 넘게 나를 정신병원에 가두어두던 폰 트리에의 설교가 나은 것 같다. 타란티노의 놀이를 즐길만한 기질이 나에게 없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빨간 우산 하나가 기적을 남기고 가는 순간. 이런 것으로도 사람 마음을 끌 수 있는 것이 진정 이야기꾼다운 것일까? 여자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예뻐보였다.
나는 아이들이 너무 슬펐다. 때문에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뜻은 아니다. 옷장 하나, 침대 하나, 소녀의 방 하나 꾸며주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 이 영화에 그러니까 나는 마음을 뺏기지는 않았다. 그저, 아이들의 말간 얼굴이 한 순간 향유한 후 잊어버리기엔 너무 마음이 아팠던 것 뿐. 수연이는 죽었잖아- 말하는 제 아버지의 말에 비명을 지르는 수연이의 얼굴이 너무 슬펐다. 수미도 아닌 수연이가, 살아남은 수미가 아닌 이미 없는 수연이가, 제 자신의 죽음을 믿지 않겠다는 듯 귀를 막아버리는 일이 나에게는 너무 슬펐다. 비록 그것이 '수미의 환상이면서 어떻게 수연의 시점을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이 영화의 오점일 수도 있겠지만. 바람이 불고 음악이 흐르고, 발작하던 아이의 숨이 조금씩 잦아들..
정원이 타고 다니던 스쿠터. 다림이 퍼먹던 아이스크림. 그런데 왜 반말해요? 동그란 눈을 하고 다림이 묻던 질문. 잠이 든 다림에게 선풍기 바람을 쐬어주던 정원의 웃음. 문 닫힌 사진관 앞을 서성이는 다림.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던 정원. 다림이 던진 돌맹이와, 쨍그랑 깨져 내리던 사진관의 유리창. 그리고 그는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나게 해준 당신에게 고맙다며 그렇게 눈을 감았던가. 처음에는 지루했고, 두번째엔 예뻤고, 세번째엔 재밌었고, 네번째엔 무척 마음이 아팠던, 그런데 정원의 생일이 8월이었을까?
몇번을 다시 본 것 같지만 언제나 아직 다 보지 못한 영화처럼 아쉬움이 남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육체의 아름다움에 쉽게 혹하는 내가, 왜소하고 볼품없고 유순하기만 하며 때로는 초라한, 양조위라는 배우에게 반한 기억. 양조위에 대한 기억. 1. 첩혈속집. 유덕화에 품에 안겨 피 흘리던 어린 사내. 무섭고 두려운 것이 많던, 툭하면 실수나 저지르던, 결국엔 등장인물 중 최초로 죽음을 만났고 죽으면서도 무섭다고 울었던 아량. 그 아량을 껴안고 죽음을 믿지 않던 오경관보다도 내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들었던, 그래서 처음으로 유덕화나 장국영, 주윤발 말고도 홍콩배우가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던 첩혈속집의 양조위. 그것이 첫 만남. 2. 비정성시. 사진관을 꾸려가는 4형제의 막내. 무언가로부터 언제나 소외되어 있는 ..
The Joy Luck Club, 1993 감독: 웨인 왕 출연: 프랭스 너옌, Lisa Lu, 밍-나 웬, 탐린 토미타 웨인 왕. 아시아인으로서 미국에서 살아나가는 일이 이 사람에게는 참 많이 고된 일이었을까? 꽤 많은 편수의 영화를 제작하고도 아직 제 길을 또렷하게 가지 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줄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이 감독의 남다른 관찰력이 좋다. 무심히 지나쳤을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저마다의 특별한 삶과 그 삶의 굴곡들과 그 굴곡들 속에서도 웃음을 찾아낼 줄 아는 능력. 그것이 내가 계속해서 웨인 왕을 주목하는 이유. 한번쯤은 다시 돌아봐야지. The joy luck club.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Special Edition, 1975 감독: 밀로스 포먼 출연: 잭 니콜슨, 루이즈 플레처 가끔은 이런 것들에 놀란다. 잭 니콜슨이란 사람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연기를 해왔다는 사실 같은 것. 그러고보니 언제부턴가 나는 이런 것을 보고 울지 않게 되었구나.
처음부터 기획 영화가 아닌 경우에야, 후속편이 전작을 따라잡기란 (또는 뛰어넘기란) 불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1972년에 스타트를 끊었지만 바로 올해 출시되었다 해도 믿을 만큼 세련되고 재미나다. 모든 걸 떠나서 알 파치노의 연기는 정말이지 이 영화의 백미. 한 배우가 내리 영화 3편을 이끌어나갈 능력이 있다는 건 역시 타고난 재주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대학생 마이클. 대부가 된 마이클. 늙어서 회개하고 싶어하는 마이클. 세 사람의 마이클이 알파치노의 심장에서 태어난다. 게다가 그 젊고 순수해 보이는 청년 알 파치노의 모습이라니.
젊디 젊은 브루스 윌리스. 무려 16년 전의 영화라고 한다. 그럼에도 재미있다는 것은 이 오락 영화가 그 만큼 잘 짜여져 있다는 증거. 2편도 구해서 봐야겠다.
굉장히 지겹게 본 것이 안타깝다. 좀 더 제대로 집중할 수도 있었던 건데.
여덟 달 전에 보던 것을 이제야 다시 봤다. 역시 나는, 김기덕에게 끊지 못한 관심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역시 그의 영화는 나에게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 망정 공감을 얻어내지는 못한다. 원죄란 대체 무언가? 그 원죄를 등에 지고 가는, 그 큰 돌을 허리에 메고 산을 오르는 스님의 모습은, 온갖 비난과 악평을 감수하면서까지 영화를 만들어내는 김기덕을 닮았다. 자기연민인가. 결국은 김기덕도.
박신양이 저런 배우였던가. 새삼스럽다. 나쁜 배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호감도는 제로였는데. 최창혁과 최창호를 동시에 소화해내는 그는 놀랍다. 더욱이 평소 박신양이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는 상당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배역임에도 조금의 어색함도 느끼지 않게 해주던 연기. 배신양의 재발견인가? 나는 요즘 염정아가 좋다. 긴 다리. 늘씬한 몸. 군살이라고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비쩍 마른 팔과 다리. 신경질적인 얼굴. 삶의 여유나 느긋함 같은 것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몸이다. 그래서 쉬지 않을 것 같고, 그래서 결국 해내고 있다는 느낌. 멋지고 예쁘다, 염정아.
비가 나왔으면 정말 큰일날 뻔 했다. 양동근이 대신 출연한 건, (영화에 출연하지 않기로 한) 비에게나, 영화에게나 잘된 일이지만. 양동근에게만 이익을 가져다 주지 못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