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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난 항상 일본영화에는 어떤 한계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렇지만 사실은 그곳에도 좋은 영화가 많이 있어왔고 단지 내가 보고 있던 것이 그 나라 영화의 아주 일부분일 뿐이었다는 것을, 제대로 관심조차 주지 않았으면서 섣부르게 결론부터 내리고 있었다는 것을, 류헤이라는 이 젊은 소년을 통해서 알게 된다. 썩 잘난 얼굴은 아니지만 충분이 좋은 눈과, 좋은 입술을 가진. 멋진 옆모습과 특별한 표정을 가진. 소란스럽게 굴지 않아도 많은 것을 이야기할 줄 아는 특별함을 지닌. 젊은 소년. 어린 청년. 류헤이는 상처가 있는 얼굴이 어울린다. 류헤이는 사랑을 하고 있는 모습이 어색하다. 연애사진은 류헤이의 눈과, 류헤이의 입술이, 류헤이의 옆모습이 얼마나 멋진지를 알려주는 영화이다.
바람이 분다. 쿠조를 생각한다. 나는 쿠조를 사랑했다, 고 아직도 생각한다. 그렇지만, 사는 동안 이렇게 치명적인 소년은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이렇게 마음에 멍으로 남는 소년은, 이렇게 화석처럼 슬픔으로 남는 소년은, 사는 동안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좋아하는 영화는 많다. 좋아하는 감독도 여럿 있다. 그런데 처음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이 영화를 만들어 준 감독에게, 수고했어요- 말 한 마디 꼭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 건. 척 보아도 쉽지 않은 일이다. 가난과 고통을 모두 이기고, 결국 이런 영화를 만들어준 감독에게 고맙다. 이런 영화를 보고 나면 살고 싶어진다.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좋은 영화다. 보는 내내 목이 아팠는데 이상하게 눈물 한 방울 못 흘리게 하더니, 마지막 이 분 동안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게 만들다니. 엉엉, 소리내서 울어본 지가 얼마나 되었던가.
냄새가 났다. 피터팬으로 시작해 애버 애프터로 끝나는 스필버그의 냄새. 재미있는 영화다. 심심한 사람들은 주저없이 골라 봐도 괜찮을 것.
대책 안 서는 왕자. 대책 안 서는 영화. 돈 들여서 이런 영화를 왜 만드는 걸까. 난 브래드 피트가 영화를 선택하는 눈을 믿었다. 좀 기막히고 적응 안 되는 영화는 있었어도 지루한 영화는 없었으니깐. 근데 나이 들면서 판단력이 흐려졌나보다. 확실히, 이건 좀 아니다. 아무리 자기만 멋있게, 최대한 멋있게, 그려주는 영화라 해도 이런 영화의 주인공이라니. 그래서 나한테 이런 영화를 시간 들여 보게 하다니. 결론은 자식 농사 잘 짓자는 것. 첫째 아들은 멀쩡하게 낳아놓고 둘째는 왜 그 모양이었을까. 천성은 못 속이는지라 화살 잡으니까 힘 좀 쓰긴 했지만 역시 트로이의 올리는 아웃이다. 아무리 잘 생기고 멋져도 아웃. 최소한 뭘 시작을 했으면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은 잡아야 하는 법이다. 이쪽은 동쪽, 이쪽은..
올드 보이는 무서운 영화다. 올드 보이는 끔찍한 영화다. 올드 보이는 잔인한 영화다. 올드 보이는 슬픈 영화다. 그런 점에서, 올드 보이는 복수는 나의 것과 닮았다. 박찬욱은 참 모질고 모진 사람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이 괴물로 변하는 걸 그렇게 침착하게 바라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박찬욱은 참 따뜻한 사람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수가 결국 미도를 애인으로 받아들이게 할 수는 없다. 오랜만에, 마음이 아프다. 이것은 복수는 나의 것을 보고 울고 싶었던 때와 같은 마음. 감독은 부정하고 싶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올드 보이는 복수는 나의 것을 닮았다.
수화기 저편 당신의 목소리. 내가 말하지 못한 게 있죠. 난 가고 싶었는데, 여기 있죠. 이런 내가 싫죠. 결국 못 갈 테죠. 욕망하죠. 그런데 못하죠. 당신에게 말했어야 했죠, 갔어야 했죠. 차라리 잠들기라도 했어야겠죠. 당신이 귀머거리일까 겁나죠. 당신이 겁쟁이일까 겁나죠. 비밀이 폭로될까 겁나죠. 아마도 당신을 사랑한단 말 차마 못하죠. -프랑수아즈 아르디, 이자벨 위페르의 노래 〈8명의 여인들〉중-
You are, just boy. 생각했지. 웬디, 이 나쁜 계집애. 지 하나 떠나는 것도 모자라 그곳의 아이들까지 모조리 데려가다니. 그 후에 혼자 남을 피터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거야? 어쨌든, 난 이래서 영화속의 계집애들이 싫다니까. 그렇지만 You are, wonderful boy. 너는 평범한 소년이 아니지. 그냥 소년이냐는 말에, 너는 NO! 라고 소리쳤지. 그러니까 외로워도, 그 선택은 스스로 한 거야. 어른이 되고, 그래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위해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며 살 수는 없어서 그래서 스스로 웬디를 보낸 거야. 네가 웬디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뭐지? 라고 묻던 후크의 말은 옳았어. 그녀는 사랑조차 받지 못할 테니까. 피터팬을 보고 슬퍼하는 것은, 이미 네버랜드에서 쫓겨..
슬픔을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고통은 괴로움을 주지. 그리고 실미도는 (굳이 선택하자면) 후자에 속해. 강우석은 영화가 즐거워야 한다고 말했지. '복수는 나의 것'은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이지만 과연 관객이 그 영화를 좋아했을까? 하고 되물었지. 그렇지만 내 생각에, 그런 말은 실미도를 만든 감독이 할 말이 아니야. 실미도가 복수는 나의 것보다 덜 잔인했다고도 말할 수 없지만, 단순히 영상에서 보여지는 잔인함의 강도가 관객이 느끼는 '고통'의 강도와 비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야. 적어도 선악의 분명한 구별 따위 짓지 않는 복수는 나의 것이, 악인을 규정함으로 해서 분노의 강도를 높이는 실미도보다는 훨씬 더 받아들이기 편했어. 나는 이런 영화가 어떻게 천만명이나 되는 관객을 끌어모을 수 있었는지 사실 궁금해..
"다케시, 난 당신 영화의 무례함이 좋아. 계속 그렇게 만들어" - 구로사와 아키라가 기타노 다케시에게 - 자토이치를 다 본 후에 든 생각은 딱 한 가지였다. 이렇게 멋지고 신나는 영화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보아야 한다는 것.
그 사람들이 멋지다는 건 안다. 카메라가 그들을 클로즈 업 할 때, 내 눈이 황홀하다는 것도 안다. 한 씬 한 씬에 많은 땀과 수고가 녹아 있다는 것도 알고, 그 결과물이 나름대로 재미있고 두어번 눈물 콧물 짤 만큼 슬프기도 하다는 것 역시 안다. 이 영화에 담겨있는 그 감독의 포부와 기대도 안다. 아니, 알 것 같다.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감독의 포부와 기대가 나는 부담스럽다. 관객을 천만명이나 불러들였다. 놀라운 결과이다. 하나의 사건이고, 존재 자체가 놀라운 영화이다. 그렇지만, 이런 영화는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다. 어디에서나 탄생할 수 있고, 누구라도 만들 수 있다. 그런 아름다운 배우는 어느 나라에나 있고, 그런 눈물나는 형제애는 어느 상황에서나 그릴 수 있다. 그런데도 천만명이나 ..
심심하고 지루한 남자라고 생각했던 휴 그랜트의 얼굴에서, 이 시대의 권태나 영국신사의 나태함을 읽어낸 건 '어바웃 어 보이'에서였다. 자신의 딸의 대부가 되어달란 부탁에 나에겐 그런 자격이 없노라고. 너의 딸이 다 자라 열 여섯이 되면 밤새 술 마시고 같이 섹스를 할 거라고 태연히 말하던 그 얼굴에서 그가 게으르고 무성의한 표정을 짓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無味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내가 휴 그랜트의 이름이 포스터에 새겨진 것만으로도 그 영화를 보고 싶어하기 시작한 순간. 로맨틱 러브 스토리를 감수하고서라도 내가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그러니까 순전히 휴 그랜트 때문이었다. [어바웃 어 보이] 이후로 처음 나온 영화였고, 나는 이제 갓 휴 그랜트에..
[이 영화는 멋진 액션을 담고 있다. 게다가 멋진 배우가 출현한다. 나이가 마흔을 넘어섰지만 탐 크루즈의 외모는 여전히 출중하고, 할리우드식 점퍼를 입어도 일본식 기모노를 입어도 똑같을 정도의 매력을 발산한다. 멋진 배우 탐 크루즈. 왜 미국이 일본에 열광하는지 알 수 있다. 두 나라 모두 '도덕과는 상관이 없는 나라'이다. 두 나라 모두 보수적이며 거만하다. 그리고 이 두 나라는 필히, 서로 악수를 해야 한다. 라스트 사무라이의 마지막 사무라이가 미국의 장교 탐 크루즈인 이유. 그리고 그들은 사무라이임에도 마치 미국인 같다. 미국의 독립 기념일에 세계를 구하러 나선 미국 대통령 처럼. 미국에 의해 말살된 인디언과 개혁세대에 의해 구시대의 가치가 되어버린 사무라이가 같은 모습으로 그려진 것에 대해서 의문..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오. 그녀는 그냥 열심히 살았던 것 뿐일 수도 있잖아? 얘기하려던 건 바람난 여자가 아니라 바람난 가족이었을 거라고.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그렇지만 에미넴 역은 누가 한다죠?" 8마일의 제작 소식을 듣고 러셀 크로가 제작자 커티스 핸슨에게 보냈다는 메세지.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적어도 가장 간단한 방법, 바로 에미넴이 하면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에미넴, 이라고 발음할 때의 느낌이 좋다. 이 이름을 발음할 때마다 나는 이 사람의 '바라보는 눈'이 떠오른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그의 독설들이 아니다. 에미넴, 하면 연상되는 첫번째 것은, 두 손을 깍지끼고 앉아서 정면을 응시하는 에미넴의 눈동자. 사실 에미넴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바라봤을 뿐인데 나는 어쩐지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미넴의 눈은 순수하지만, 서럽고, 슬프지만, 무미건조하다. 곧 총을 들고 분노에 휩싸일 것 같다가도..
파이란은 말했지. 당신은 친절한 사람입니다, 라고. 자꾸만 보다보니 그리워하게 됐고, 그리워하다보니 좋아하게 되었다고도. 단 한 번 다정한 눈빛조차 없었으면서 저렇게 환희 웃는 얼굴로 함께 있는 모습은 파이란의 꿈일까? 강재의 꿈일까? 별의별 게 다 영화가 되는 세상. 장백지는 너무 예뻤어. 시체가 된 후에도 사랑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할 만큼.
내가 봉준호를 처음 만난 건, 네임밸류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수수한 얼굴에 이상스런 기민함이 엿보여서 특별히 내 마음을 끌어당겼던 배우 이성재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성재라는 그 배우 만큼이나, 수수하고 평범한 듯 하지만 그 속에 흔히 '촌철살인'이라 표현될 만한 유머와 냉소가 함께 느껴진 플란다스의 개는, 누구를 비판할 의도도, 누구를 우스꽝스럽게 만들 의도도 없던 영화였지만 그럼에도 어떤 무형의 메세지가 마음에 들어왔다. 어떤 말로도 정리할 수 없는 메세지였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아프고 또 조금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런 메세지. 그것이 내가 '봉준호'를 처음 만난 날의 기억이다. 그리고 그 후 3년이 지난 후에 봉준호가 새 작품을 준비한다는 얘기가 들려왔고, 아- 그 봉준호 싶어서 관심을 가지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