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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이런 영화를 보면, 고통스러운 동시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나를 부끄러워하게 된다. 어차피 살아서는 내가 체감할 수 없는 일. 그런 일들이 버젓이 나와 동시대의 인간에게는 일상이 된다. 나는 그 일상을 상상하고 짐작한다. 넘어서 그들의 고통 또한 상상하고 짐작한다. 내 머리 속에 그려진 상상과 짐작은 나로 하여금 감정이입이란 것을 하게 한다. 그리하여, 나는 고통스럽다. 아이들의 눈. 아이들의 손. 아이들의 걸음걸이. 아이들의 목소리. 그것을 '현실이라면 어떨까' 나는 상상을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상상 따위로 대체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 아이들로 하여금 실제로 그런 눈을 하게 만든, 그 아이들로 하여금 실제로 그런 손을 가지게 만든, 그것은 그 아이들의 현실이다. 나는 그 현실을 상상하며, 울..
나는 류승완이 강박관념에 시달리지 않길 바란다. 팬이랍시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겠지만 어쩐지 요즈음의 류승완에게서는 무언가 보여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강해 보인다. 좋아한답시고, 남들보다 더 많이 아는 척 해서도 안 되는 것이겠지만 요즘의 류승완에게서는 무언가를 입증해 보이려고 하는 생각이 강해 보인다. 류승완은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다. 첫영화에 넉다운 된 이후에 줄이어 그가 내놓은 영화를, 나는 외면한 적도 없고 박수를 보내지 않은 적도 없다. 그것이 단지 류승완의 영화이기 때문이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스스로도 혹시 내가, 이 감독에게 100% 너그럽기만 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 모든 영화들이 이토록 즐거운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보았지만 열번을 다시 솔직해져도 나는 진심으로 이 ..
영상의 화려함이나 정교함으로 승부를 거는 영화에는 냉정하면서, 소리의 아름다움이나 즐거움으로 승부를 거는 영화에는 너그럽다. [코요테 어글리], [시카코], [레이], 그리고 [코러스]. 이쯤되면 내가 이 영화들을 모두 좋아했던 이유가 확인된다. 그것은 내 취향에 기인하는 것. 아름답고 즐거운 노래를 두 시간 동안 제공해 준다면 나는 일단 50점의 기본 점수를 놓고 영화를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 참 즐거웠어- 라거나. 이 영화, 참 좋았잖아- 라거나. [코러스]를 본 친구는, 천사를 만났다며 나에게 천사를 보내주겠다 했다. 그날 밤, 나는 천사를 만나지 못했고 친구에게 거짓말이나 늘어놓았다며 투덜거렸지만 그로부터 몇달 후- 결국은 그 천사를 만나고야 만다. 소년의 노래는, 천사의 메시지다. 나..
최근 몇 년 사이, 어떤 공포 영화도 이 영화처럼 내게 호평을 받지 못했다. 영화에서 본 끔찍한 장면들은, 며칠이고 나를 따라다니며 문득 문득 나를 들들 볶는다. 그래서 나는 공포물을 잘 보지 않지만 어쩐지 '한번쯤 봐도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 [4인용 식탁]앞에 앉았다. 덕분에 그 후 며칠을 내내 어둡거나 혼자 있는 시간을 무서워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 영화를 보기로 했던 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수연 감독은 굉장한 이야기꾼이다. [4인용 식탁]은 무섭기도 하지만, 치밀하게 잘 짜여진 시나리오에서 탄생했다. 많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단 한순간도 집중력을 잃지 않는 영화는 드물다. 그런데 이수연 감독은 이 영화에서 그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새로운 시선. 소름돋는 에피소드. 그 에피소드들이 치..
13년 전의 조니뎁은, 그렇게 생겼다. 13년 전의 줄리안 무어는, 그런 얼굴이었다. 나는 비스듬히 누워서 준의 얼굴을 보고 있다. 준에게서는 천사의 냄새가 난다. 조니 뎁의 마술 같은 몸짓에는 감탄하지 않지만, 준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마술에 걸린 듯한 기분이 된다. 이 영화, 평화롭구나. 세상에는 가끔, 이런 영화도 필요한 거구나. 나른한 기분이 되어 그대로 잠이 든다. 깨어나면 나도, 다리미로 식빵을 구워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녹차는 따뜻한 것보단 차게 해서 마시는 쪽이 좋다. 살면서 자연스럽게 변하는 것이 몇가지 있는데, 입맛도 그 중 한 가지인 모양이다. 나는 단지 녹차가 '쓰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하지 않았다. 단 맛, 매운 맛, 짠 맛, 맛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지만 나는 그 중에서 특히 '쓴 맛'을 싫어한다.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삼촌. 아들. 딸. 영화 속에서 가족들은 계속 찻잔을 들고 있다. 그런 가족들을 보다가 어쩐지 갈증이 나 냉장고 문을 여는데, 물병 속에 누가 녹차를 담아놓았다. 시원해서 쓴 맛마저 상쾌해진 녹차. 한 컵 가득 따라와 다시 영화를 본다. 커다래진 사친코가, 작고 이쁜 사친코를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가족들 중에서 사친코가 가장 마음에 든다. 조용한 아이의 눈에는, 소리없이 바람에 몸을 ..
나는 아무런 정치적 관심도, 의식도, 입장도 없는 사람이다. 스물 일곱해를 사는 동안 내가 정치와 관여된 무언가에 관심을 가져본 것은 지난 2002년 12월, 대선 때 뿐이다. 나는 특별한 논리적인 이유없이 그냥 마음이 끌려서 노무현을 좋아했고 그래서 그가 대통령이 되기를 바랬다. 그래서 그 즈음 보름 가량 그와 또 다른 대통령 후보들을 지켜보았고, 그에게 나의 한 표를 던졌으며, 결국 그가 대통령이 되는 순간에 눈물을 흘리는 기쁨을 누렸다. 그리고 그 시간은 사는 동안 내가 정치에 관심을 기울였던 유일한 시기로 남았다. 그 이후로 나는 다시 아무런 정치적 관심도, 의식도, 입장도 없는 사람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러니 내가 북한에서 보내온 간첩, 쉬운 말로 빨갱이라 불리던 비전향 장기수들에 대한 특별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나는 자괴감을 느낀다. 나는 박탈감을 느낀다. 죽어도 되지 못할 것 같은 사람, 이나 죽어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 어쩌면 나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그린을 찾아 뛰어가는 헹고의 눈에, 목을 매단 듯 서있는 아그린의 환영이 보인다. 그 순간 나는 울고, 그리고 생각한다. 이런 것은 예술이다. 이 사람은 예술가다. 할 말을 잊고, 생각도 잊고, 숨쉬는 것도 잊는다. 슬프다. 세상에 이토록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시선과, 다양한 마음과,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어서. 나는 그의 절반도, 절반의 절반도, 이해할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고 제대로 바라볼 수 없어서. 욕심인 거겠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여자란 참 이상한 존재다. 그렇게..
"밝은 미래는 봤어?" "아니. 그 영화보면, 미래가 밝게 보여?" "뭐... 느끼기 나름이겠지." 그렇다면 나는, 빛을 내는 해파리 따위에겐 이제 희망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일까. 머리 아파. 난 꿈에서도 이제, 밝은 미래는 보지 못해.
아이들이 트렁크 속에 구겨지듯 갇혀서 이사를 했던 것은, 그들의 존재를 다른 사람들이 알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혹시 이웃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알게 될까봐, 그래서 어렵게 구한 집에서 쫓겨나게 될까봐, 아이들은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 채 하루종일 집 안에만 숨어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섣부르고 성급한 걱정일 뿐. 정작 아이들이 부모에게 버려진 채 몇번의 계절을 그곳에서 방치되어 있는 동안에도- 아무도 그들을 몰랐다. 아무도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뼈, 가 아프다. 손가락의 마디, 가 저리다. 나는 화를 내고, 신경질을 터트리며, 인상을 찌푸리고, 눈을 가리면서 2시간 20분을 버텨냈다. 이런 영화들을 보면 화가 난다. 나를 어떻게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영화. 나를 울 수도 없게 하고, ..
스토리와 대사. 그리고 배우. 여기에 굳이 한 가지를 더하자면 흘러 나오는 음악. 이 네가지를 제외하고 내가 영화를 감상하는 데 영향을 주는 것은 없다. 나는 빼어난 풍경이라거나, 뛰어난 촬영 기법, 신기한 특수효과, 정성들인 스타일 같은 것들에 무심하고 무감하다. 내가 김지운의 '장점'을 나름대로 파악하면서도 그게 '장점'이라고 인식하지 않는 것은 그러한 이유다. 김지운은 스타일리스트다. 그의 영화에도 이야기가, 또는 대사나 음악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가끔 지나치게 폼잡는' 김지운의 버릇 때문에 나는 그의 영화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다. 김지운은 '판타지'의 소유자다. 내가 남자가 아니므로 장담할 순 없지만,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가지기 쉬울 듯한 그런 '판타지' 말이다. 그는 멋있어지..
소피아 코폴라.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딸. 대부3의 여주인공. 현재 아카데미 어워즈의 열렬한 구애를 받고 있는 작가 겸 감독. 이런 여자는, 딱 이런 영화를 만들 것이다- 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영화 속의 남자와 여자는 외롭다. 사실 사랑뿐만 아니라, 의사 선생의 설명과 CF감독의 연기 주문마저도 통역이 안 되는 것이 영화 속 세상이다. 그러니 사랑이 통역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외로움도 마찬가지. 허무나 권태도 마찬가지다. 영화 속의 남자와 여자는 외롭고, 권태롭다. 그렇지만 그들은 며칠씩 고급 호텔에 묵어도 주머니 사정은 걱정할 필요없는 '상류층'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살짝 감정 이입을 하려다가 만다. 그들이 살짝 안쓰러워지려다가 또 만다. 잘못 보면 배부른 투정이다. 그래도 이..
새벽 1시 50분. 콜라 한 잔을 들고 상암 CGV로 들어섰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오후 내내 추위에 떨었고, 추위가 채 가시지도 않은 몸으로 지하철을 탔다. 신촌에서 저녁을 먹으며 정신이 쏙 빠져버리도록 수다를 떨다가, 저녁 늦게 본 [밀리언달러 베이비]로 다시 한번 눈물을 뺀 후였다. 영화가 끝난 후, 곧 끊어질 지 모르는 지하철이라도 얼른 잡아 타고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이 삘 그래도 박차고 나가 자리를 옮겨서라도 [레이]를 볼 것인지 고민하다가 일행 중 한명은 돌려보내고 다른 한명과는 함께 남아 이 영화를 선택했다. 레이. 나는 피곤한 몸으로 자리에 앉았지만 단 1초도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레이 찰스의 음악. 나는 어지러운 머리로 자리에 앉았지만 단 1초도 다른 생각에 빠질 수 없었다. 영화..
나 아직 살아서, 이렇게 울 수 있다니 행복하다. 외롭고 쓸쓸한 엄마의 자리. 고독하고 힘에 겨운 엄마의 자리. 사는 일은 지치고 외롭지만, 삶은 고단하고 퍽퍽하지만, 그래도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엄마를 가졌으니 불행하지 않은 것이 맞다. 별로 감동적일 것도 없는 영화 한 편에 잃었던 눈물을 찾는다. 끈질기게 흘러서 얼굴을 덮어버린 눈물에, 생각을 한다. 살아서는 벗어날 수 없구나. 엄마, 당신의 이름에서 나 절대로 벗어날 수 없구나. 2005년 3월 8일. 아침잠이 많은 내가 오랜만에 혼자 조조를 본 날. 20분의 기다림이 싫어서 [레이] 대신 [말아톤]을 선택한 것에 대해 조금의 후회도 없는 날. 작고 마르고 볼품 없던 조승우가 크고 웅장하고 훌륭해 보인 날.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카메라를 터트려..
사토라레는 자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이 사념파를 통해 주위의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마는 존재이다. 기적이라 할 만큼 드물게 나타나지만 그 모두가 아이큐 180을 뛰어넘는 천재들이다. 그러니까 괴물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만 동시에 천재이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수요의 욕구를 느끼게 만드는 이중적인 존재인 것이다. 이야기는 이러한 기발한 설정에서 시작한다. 초반부에 나타나는 비행기 사고, 정부에서 조직된 위원회, 국무성, 군대 등은 이 영화가 비교적 스케일이 큰 영화일 거라고 짐작하게 만들지만 후반부에 들어서면 (이 영화에서 진짜 중요한 것들인) 외로움, 할머니와 손자간의 사랑, 인간의 외로움에 대한 이해, 괴물같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간본성에 대한 존중 등 휴머니즘과 관계된 소소한 것들이 영화의..
이 영화를 조금만 더 빨리 봤다면, 아니- 최소한 이 영화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보다 먼저 봤다면, 나는 류승완이 아니라 쿠엔틴 타란티노를 사랑스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입을 모아 타란티노- 타란티노- 했는지 이제서야 깨닫게 되다니. 이런 영화, 더이상 말이 필요없다. 재밌다. 정말 재밌다. 최고다, 타란티노. 아래는 이 영화가 거둬들인 상들의 목록. 무슨 상을, 얼만큼 받았느냐 하는 것이 그 영화의 훌륭함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저 수많은 이름의 상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영화가 처음 만들어졌던 당시 영화계에서 어떤 붐을 일으켰는지 짐작이 간다. 1994년 제47회 깐느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1995년 제67회 아카데미 최우수 각본상 수상 1995년 제52회 골든글러브 최우..
소년은, 균열된다. 무너진다. 소년의 얼굴에 주먹이 날아오고, 그의 얼굴은 일그러진다. 아프다. 내 마음이. 아프다. 내 마음도. 나는 왜 이렇게 소년이나 소녀들의 이야기가 마음이 아픈 걸까. 어째서 이렇게 소년이나 소녀들의 등을 보고 있노라면 울고 싶고, 죽고 싶고, 그리고 또 다시 살고 싶어지는 걸까. "바보, 우린 아직 시작도 안 했는 걸." 우리 이제 끝난 거냐는 신지의 물음에, 늘 그렇듯 바보같은 얼굴로 마사루가 던진 대답은 상투적이라도 좋다. 아이들은 돌아오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 저 소년들에게 그 희망을 던져주어서 좋다. 기타노 다케시의 무표정한 얼굴이 아이들의 등에는 비수를 꽂지 않아서 좋다. 멋지다, 기타노 다케시. 멋지다, 안도 마사노부.
01. 내 또래의 여자아이들은 대부분 조승우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마치 하나의 유행처럼 느껴질 만큼, 어디가나 그런 호감은 너무 눈에 익다. 물론 조승우는 그만한 호감 정도는 받아도 될 만큼- 괜찮은 배우다. 언젠가 친구 생일에, 불쑥- 나타났다가 사라진 이 배우를 현실에서 만난 일이 없었다면 나 역시 조승우를 지금보다는 더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스크린 속의 그가, 잠깐 내 현실로 걸어들어왔다가 사라졌을 때 난 스크린 속의 그에게 줬을 법한 호감을 원초적으로 봉쇄당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나는 조승우에게 참 무디다. 좋아할 법한 눈빛으로 말을 걸어오는데도 그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어쩌면, 그렇게 크지 않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것이 원래 조승우의 방식인 건지도 모르겠..
나는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얘기들을 싫어한다. 될 수 있으면, 가족이 필요치 않은 얘기들을 하고 싶다.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느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보다 비밀스럽기 때문에 위험하고 무섭다. 또한,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없고 쉽게 알려지지도 않기 때문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겨둘 가능성도 높다. 태어나면서 가지게 된 가족 이외의 새로운 가족은, 내 손으로 절대 만들고 싶지 않은 나에게 이 영화는 '공포' 이상의 '공포'다. 이 영화는 새로 들여 온 자식이 늘 문제를 일으킨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진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이상한 그림을 그리고,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여온 자식이 아니라, 오히려 그 들여온 자식을 끝끝내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