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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좀 우습지 않니? 네가 무언가를 마지못해 하게 될 때, 그것은 굉장히 비싼 거야. 반대로 네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하게 될 때, 그건 의외로 가치가 없는 거지. 왠지 거꾸로 같지 않니?" "자네 마흐러의 그 노래를 아나? '나는 세상에의 궤적을 잃어버렸다.'"
01.마츠다 류헤이, 를 만나러 갔다. 내가 처음 만난 마츠다 류헤이는 우울한 눈을 하고 있지만 좋은 얼굴이라는 느낌을 주던 어린 소년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다시 만난 마츠다 류헤이는 어느 새 윗옷을 벗고는 다 자라버린 자신의 육체를 부끄럼없이 내보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다시 또, 소년이 자라버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소년이 자라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내가 알던 소년이 어느 새 어른이 된 것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도리없는 상실감이 밀려온다. 마치, 자라버린 소년은 더 이상 내가 알던 소년과 동일 인물이 아니기라도 한 것처럼. 그 소년은 이제 세상에 없고, 소년이라는 허물을 벗어던진 알맹이만 이 세상에 남아있는 것처럼. 02.그래서 쓸쓸하게 ..
재미는 있지만, 감흥은 없다. 웃으면서 보지만, 만족스럽진 않다. 입을 쩍 벌리게 할 영상인 건 알겠지만, 결국 진부한 러브 스토리 이상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징징거리는 것도 보기 싫은 판에, 짐승까지 나서서 사랑 타령이라니. 나오미 와츠가 지금까지의 그 어떤 영화에서보다 예뻤다는 것을 빼곤, 인상 깊을 게 없는 영화다.
솔직하게 말하건대, 난 이 영화가 정말로 재미없었다. 단순히 그냥 재미가 없어, 그냥 그러네, 지겨워,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너무나- 굉장하게- 재미가 없어서 몇 년 사이 이토록 나를 지루하게 만든 영화는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많은 영화들을 재미있게 보는 타입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영화를 웃으면서 넘길 수는 있는, 그러니까 그렇게 까다로운 관객은 아니다. 어떻게든 관객을 울게 하려고 하거나 반대로 관객을 웃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영화만 아니라면 나는 꽤 영화에 너그러운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내게도 굉장하게 재미가 없는 영화라는 것이 있는데 이 바로 그런 영화였다. 물론 유난스레 내가 이 영화에 집중하지 못한 몇가지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번역이 썩 잘 된 것 같지는..
소설가가 되길 원하지만 고심해 적은 소설을 출판사로부터 퇴짜맞는 마일즈. 자신이 배우라고 믿지만 사실 몇 번 텔레비젼에 얼굴을 비친 것이 전부인 잭. 이미 재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전 아내에게 술에 취해 전화를 거는 마일즈.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도 취향이랄 것도 없이 여자만 보면 마음이 내키는 잭. 이 남자들은 혐오스럽게 살이 붙은 마일즈의 배 만큼이나, 필시 선탠의 부작용일 것으로 보이는 잭의 붉은 피부 만큼이나 사랑스러운 점이 없는 인물들이다. 나는 인상도 찌푸렸다가, 쯧쯧- 혀도 찼다가, 하하- 소리를 내 웃기도 하다가, 조금 안쓰러워하기도 하고, 아주 조금 감동도하며, 아주아주 조금은 마일즈의 마음을 이해도 하면서 이 인물들을 바라본다. 이렇게 방황하게 되는 마음, 헤매게 되고 고민하게 되는..
극장을 나섰을 땐, 몸이 아팠다. 어깨와 팔이, 허리와 다리가 통증에 휩쌓여서 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질상 끔찍하고 잔인한 장면을 두 눈 뜨고 보지 못하는 탓도, 예정된 비극 앞에서도 울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탓도 아니었다. 화면 속 육체들에 가해지는 고통 때문에 짜증이 나기도 했고, 훌쩍임을 넘어서 엉엉 울어대는 다른 이들의 소리가 신경에 거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내가 몸이 아프다고 느꼈던 것은 단순히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난 얼마쯤 긴장하고 있었다. 그 긴장이 두 시간 동안 계속되면서 몸에 무리가 생겨버렸다. 개인의 타락이 순전히 사회의 탓이라고 말하는 태도는 나에게 충분히 비웃음을 살만했다. 그들이 가벼운 죄밖에 짓지 않았다(고 끊임없이 강조하)는 사실이나, 악 밖에 가진 ..
01. 유치하고 한심한 로맨스물을 보고 있다. 시간이 더디게 흘러간다. 대체 왜 이딴 걸 보고 있는 거야. 자문하며 머리를 긁적인다. 그리고 두 시간을 버텨낸 후에 생각한다. 이 영화, 유치해 죽겠는데도 어쩐지 쓸쓸한 기분을 일으킨다고. 02. 내가 좋아한 건 그냥 신이었던가. 마츠준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 이렇게 보고 있으니 낯이 설고 어색하다. 근육을 키우고 여자와 함께 있던 류헤이처럼, 어른이 되고 연애를 하는 마츠준 역시. 03. [많이 화내고, 절대로 용서하지마.] [내일 네 마음이 멀어진다 해도, 사랑해.] 사랑은 진부하지만 내 마음도 결국 사랑을 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1. 관객 분위기가 이렇게 좋은 것, 오랜만이다. 내가 웃을 때 다른 사람들도 웃고 내가 울 때 다른 사람들도 우는 듯 했다. 소리도 치고 마음껏 박수도 칠 수 있었다. 마치 동료나 친구들처럼 극장 안 사람들이 편해져 버렸다. 아마 그 자리에 앉아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재미있거나 또는 좋은 영화였기 때문일 것이다. 2. 여러 면에서 평균 이상의 점수를 줘도 아깝지 않은 영화이긴 하지만, 역시 그 중에서도 압권은 장생의 눈빛이나 장생의 목소리. 장생의 몸짓 같은 것이리라. 3. 그나저나 취향의 문제인 것인지, 이준기의 어디가 예쁜 건지는 잘 모르겠다. 4. 어쨌든 이 영화, 재미있기는 해도 분명히 뭔가 미흡한 영화인데 그걸 콕 집어 말하기가 참 어렵다. 나도 친구녀석들처럼 두번 세번씩 이 영..
눈물나는 모성이나 모든 상처를 치유하는 가족애 같은 것. 분명히 나도 가족을 사랑하고 하여 그런 주제는 때로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다지 매력적이진 않다. 난 판타지를 어린아이처럼 지켜볼 수 있는 마음도 부족하고, 초콜렛보다 사는 것이 더 달콤하단 말에 고개를 끄덕일 만큼 긍적적인 인생관도 없다. 그러니 마법같은 팀 버튼의 솜씨도 그냥 그렇게 깜찍한 정도. 사실 가족이 있어 사는 일이 덜 외롭긴 하겠지만 얼마나 많은 고통이나 괴로움이 가족이란 테두리 안에서 비롯되는지를 외면해도 좋은 것은 아니다. 가족만 있으면 가난도, 외로움도, 그 어떤 고통도 괜찮을 거란 것은 아무리해도 환상이지 않은가. 또는 나처럼 가족에게서 멀리 떨어져 사는 이에게 이런 주제란 일종의 폭력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나 명절이 되면..
훌륭한 시나리오, 배우들의 명연기, 치밀한 구성, 감독의 뛰어난 역량, 같은 것들과는 무관하게- 때로는 그저 마냥 즐겁기만 한 영화들이 있다. 나는 오랜만에 그런 영화를 만났고, 그 영화는 바로 스윙 걸즈이다. 내가 유난히 교복입은 소년, 소녀들에게 약하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 점을 제외하더라도 스윙 걸즈는 보는 이의 마음을 흐뭇하게 건드려놓는 힘이 충분한 영화이다. 적당한 유치함과 스토리의 비약이 있음은 인정하지만, 그렇다한들 또 뭐 어떠랴. 이렇게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데, 이렇게 어여쁜 소녀가 웃는데, 이 영화 이것만으로 충분히 좋은 영화라고 인정해줘도 좋을 것 같다.
그 곳은,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이다. 중세의 기사들이 살고 있을 것 같은 그 성의 담벼락을 넘어서면 잔디가 보인다. 드넓은 초록색 잔디다. 난 진초록이 인간에게 얼마나 과한 평화를 주는 색인지 새삼스레 깨닫는다. 그런 나를 기특하게 여기기라도 하듯 카메라는 천천히 잔디를 돌면서 다가간다. 물론 도착지는 그 자리다. 그 사람들의 얼굴, 바로 그 앞에서 카메라는 멈춘다. 이름은 한 명의 것씩, 차례대로 보인다. 나는 웃는 그들의 얼굴과, 그들의 어여쁜 이름을 번갈아가며 본다. 지네딘 지단. 호나우도. 파본. 왈테르 사무엘. 구티. 루이스 피고. 이반 엘게라. 이케르 까시야스. 로베르토 까를로스. 솔라리. 조나단 우드게이트. 토마스 그라벤센. 마이클 오웬. 데이비드 베컴. 미첼 살가도. 룩셈부르고. 낯익은, 눈..
01. 택시는 집 앞이 아니라, 집으로 올라오는 골목 앞에 멈춰선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한다. 걸으면서 살짝 찡그리던 조엘의 얼굴을 생각한다. 마음이 아파서 조금 더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걸음을 옮기면서 슬쩍 씁쓸한 듯 웃고 말던 클레멘타인의 얼굴을 생각한다. 마음이 또 아파서 또 조금 더 빠르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생각이 나고, 또 생각이 나서, 결국 나는 구두굽이 내는 시끄러운 소리도 잊고 새벽의 조용한 골목 위를 달린다. 타닥타닥. 내 발소리가 빙글빙글 돌아 하늘까지 닿게 크게 울린다. 나는 집 앞으로 꺾어 들어오는 골목 앞에서 우뚝 걸음을 멈춘다. 헉헉. 빨라졌던 심장 박동이 제 자리를 찾느라 숨이 가쁘다. 숨을 고르고 서있는 동안 사람의 ..
앞도, 뒤도 막혔다. 앞사람도 뒷사람도 내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 누구라도 한번쯤 겪어봤다고 생각할 시절이다. 비록 누구에게나 폐만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래도 너는 열 여덟이니까 나는 네가 부럽다.
01. 영화를 보다가 문득, '동막골'은 혹시 자살을 기도하던 표현철의 환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너무나 행복하여 환상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것이 현실을 살고 있는 나의 한계이다. 나는 그런 마을을 상상속에서라도 현실이라고 그릴 수가 없다. 하여, 그것은 죽음을 앞둔 표현철의 환상이었을 거라 생각을 해본다. 표현철은 자신이 수많은 민간인을 죽게 했다는 죄책감을 씻어버리고자, 환상속에서나마 민간인(동막골의 사람들)을 위해 죽어간다. 인민군과 연합군과 다 함께 평화롭고자 하는 것도 전쟁에 지친 표현철의 환상일 것이다. 그 때 그 산 속, 탈영하여 혼자 남은 표현철은 자신에게 겨누었던 방아쇠를 당겼고 그리하여 혼자 죽어가던 중에 환상을 만난다. 그 환상이 바로 '동막골'이며 그..
01.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피의자는 미모의 카피라이터이다. 용의자는 현장에서 잡혔다. 단번에 풀릴 줄 알았으니까, 사건을 맡은 검사는 자신만만하다. 하지만 사건은 풀어나가려 할수록 복잡하게 꼬인다. 용의자와, 증언자들과, 이 사건을 생방송으로 중계하는 방송국 사람들과, 범인을 잡으려고 데려온 무당들까지 사건과 관계된 사람들이 하나 둘 세트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이 사건의 끝을 볼 때까지, 아무도 세트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02. 이야기는 새롭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다. 살인사건이 있고, 그 살인사건의 진범을 찾는 끝을 봐야만 영화는 끝이 난다. 용의자로 지목된 김영훈이 진범이 아닐 거라는 것은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논리적으로, 참 많은 오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판에 박힌 건 싫다. 겉멋이 든 것도 싫다. 로맨틱 코메디도 아니고, 액션 느와르도 아닌 바에야 판에 박히거나 잔뜩 어깨에 힘준 채로 나타날 필요는 없다. 내가 기대하고 바래왔던 정재은의 두 번째 영화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성장담에는 성장에 대한 진지한 사색이 필요하다. 성장을 현재 진행시키고 있는 젊은이들에 대한 주의깊은 고찰이 필요하다. 그저, 청춘들이 있고 그 청춘들이 꿈을 향해 내달린다는 것만으로는 성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성장'이라는 것은 인간의 인생을 아우르는 가장 중요한 테마다. 그것은 나, 를 결정하고 나의 인생, 을 결정한다. 이 영화가 아쉬운 것은 그런 성장이 너무 쉽게 도식화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달리는 '남자'들의 몸..
영화를 보기도 전에 그런 법석을 목격하지는 말아야 했다. 나는 어차피 이 시리즈의 팬임을 자청할 사람이고, 주위에서 어떤 부추김을 넣지 않아도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을 터였다. 그러니까, 영화를 보기도 전에 자기네들끼리 미리 공모라도 한 것처럼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 영화에 찬사를 보내는 기사들 따위 읽지 않는 쪽이 더 좋았다. 시리즈를 구원할 것이라느니, 공포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 것이라느니, 시작도 전에 난리법석을 떨어버리는 통에 정작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김이 빠져 버렸다. 이유도 모른 채 학교에서 살해당한 후 학교를 빠져나갈 수 없게 된 영언은, 선민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캄캄한 학교에 혼자 남는다. 그리고 나는 혼자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은 영언을 보면서 영언이 느낄 공포와 외로움에..
그러고보면 한번도 주위의 누군가에게서 '쥴리아 로버츠를 좋아한다.'는 말 같은 걸 들어본 적이 없다. 특별히 이쁘다거나 귀엽다거나 섹시하다거나 지적이다거나 청순하지 않기 때문에- 유명하기는 할 망정 딱히 유난스런 애정을 쏟아부을 대상은 아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꽤 오래전부터 이 여배우에게 굉장히 우호적인 태도를 유지해왔다. 그것은 벌써 15년 전 이야기인 [프리티 우먼]에서부터 시작된 태도이고, 1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달리 큰 변화를 맞이하거나 그럴 만한 이유도 없었던 태도이다. 줄리아 로버츠가 분한 사진작가 안나는 남편과 별거하고 있던 어느 날 '낯선 남자'인 댄을 만난다. 댄은 우연히 거리에서 마주쳐 한눈에 사랑에 빠져버렸던 앨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써내 작가가 ..
늦어도 한참을 늦었다.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몇년 전의 일처럼 오래된 기분이다. 한국 영화계에서 처음 보는 놀라운 데뷔작이란 소리를 지겹도록 들었고 그 뒤를 따라 줄줄이 이어지는 수많은 배우와 감독들의 호평이 있었다. 그러니 보기 전부터 이미 한 서너번 본 영화처럼 친근했고, 그런데도 볼 기회가 잘 생기지 않아서 어떻게든 구해서 봐야겠구나- 생각을 스무번쯤 했던 것 같다. 단순히 기발하다거나 장르의 혼용이라거나 놀라운 상상력- 정도로 표현하기엔 내가 너무 답답하다. 나는 얼마쯤 끔찍해하고 얼마쯤 슬퍼하고 얼마쯤 놀라워하고 얼마쯤 안타까워하면서 이 영화를 지켜봤다. 어쩐지 우스운 기분이라거나 황당하다는 생각 같은 같은 건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상상력을 가졌다는 사실보다도 이런 상상..
홍보는 장사를 위해서 하는 행위다. 그러니까 영화를 포장하고 있던 홍보문구가, 영화의 실제 내용과 많이 다르다한들 속았다거나 사기당했다며 괘씸해할 필요는 없다. 장삿속에 넘어가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도 개개인의 능력치에 달린 문제일 뿐이다. 개봉하기도 전에 잔뜩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것은 관객의 책임이지 이 영화의 책임은 아니다. 쿨한 척, 센 척해도 결국 과거의 상처와 주위의 방해를 무릅쓰고 사랑에 결실을 맺는 러브 스토리이다. 때문에 이 영화가 나빴다거나, 실망스러웠다거나, 또는 좋았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다. 나는 적당히 센치하게- 적당히 유치하게- 적당히 감정이입도 하며 이 영화를 잘 감상했다. 그것이 끝이다. 특별히 감동적일 것도 없고, 특별히 인상깊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