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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01. 가벼운 봄옷을 입고 싶었지만, 오늘은 추우니까 감기 조심하라는 문자에 겨울옷을 걸치고 집을 나섰다. 골목길을 내려가는데 한 무리의 아이들이 종알거리는 귀여운 목소리로 "예수님이 부활하셨어요~" 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나는 잘 모르는데, 저 녀석들은 알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팔랑팔랑 신이 난 듯 뛰면서 외치는 모습이 귀여워, 곁을 지나가는 한 녀석의 머리를 슬쩍 쓰다듬어 보았다. 왜 그러세요? 하는 눈빛. 답할 말이 없어서 나는 그냥 웃음. 너도 결혼할 때가 됐나보다, 애가 그리 이쁜 걸 보니- 라던 언니의 말이 떠올랐다. 하긴 어릴 땐 애라면 진저리가 났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애들이 예뻐진 거니까. 괜히 민망해져서 아이들의 무리로부터 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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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 에 대해서 조금 더 자유롭도록 하자. 타인의 눈과 생각과 말에 대해서 조금 더 무관심해지도록 하자. 02. 김은중을 보겠구나. 90분을 못 채울 것 같지만, 오랜만에 보는 경기인 거니까. 대전과 경기하는 김은중, 이 아니라 그냥 김은중, 자체를 보러가는 거니까. 집중해서 볼게. 그러면 꼭 90분이 아니라도 괜찮은 거겠지. 그러니 너는 내 기운을 좀 받아서 골을 넣도록 해봐. 그만 쉬고 골을 좀 넣어봐. 이래저래 내가 아무리 편을 들려고 해도, 골 못넣는 스트라이커는 매력이 없는 거잖아. 03. 그나저나, 나 걱정이 많아.
이동국이 다쳤다. 절뚝- 하며 잔디 위로 넘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더이상 내가 위하고, 지켜보고, 아껴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절반이 좋아하는 마음이었다면, 절반은 안쓰러움이었던 게 분명하다. 이동국에 대한 내 마음은 그랬다. 튼튼해져서 다시 밀림의 제왕이 될 수만 있다면, 나는 이동국 따위 계속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시큰둥하기만 했다. 이동국은 다시 잘 달려주었고, 실력에 걸맞는 자리를 찾아가는 듯 했다. 나는 이동국을 그만 잊고 지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잊어갔고,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갔고, 어떤 특별함도 느껴지지 않는 선수가 되어갔다. 그 때, 그럴 때, 이동국이 다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TV화면 속에서, 새파란 잔디 위..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과, 어떤 것도 쓰지 않겠다는 마음이 싸운다. 바보같은 짓이다. 어차피 지금껏 내가 쓴 것은 글이 되지 못했다.
나를 괴롭히는 이 마음에서 도망칠 거야. 도망쳐 버릴 거야. 무섭고, 슬퍼. 나를 이렇게 만드는 너를 미워해. 나는 이 마음에 절대로 붙잡히지 않을 거야. 너, 자꾸 나를 비참하게 만들 뿐이잖아. 너를 잃어도 아무런 후회도 없을 거야. 나는 여기서 도망가 버릴 거야.
글이 사람을 얼마나 거짓되게 만들고, 현혹시키며, 잘못된 것을 보게 하는지 알겠어. 이런 글은 더 이상 쓸 수 없어. 써서는 안 돼.
사람들은 왜 사람들에 대해서 함부로 말할까? 사람들은 왜 사람들을 함부로 대할까?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기가 힘들어.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이렇게밖에 행동하지 못하고, 이렇게 깨달으면서도, 이렇게 여전히 달라지지 못할까. 이제는 나를 좋아하면서 지내기도 너무 힘들어. 검은 강물 안에서 죽고 싶다고 생각을 했어. 넘실대는, 검은 강물을 내려다봐봐. 진주처럼 곱고 고와서, 자꾸만 눈물이 나지. 오늘은 이슬람의 여자들처럼 히잡을 두르고 있고 싶었어. 내 얼굴을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거야. 창피해서,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나에게 Y가 말했지. 왜 그래요. 왜 화가 났어? 하지만 난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어. 부끄럽다고, 어떻게 말해. 지금 당신이 내 얼굴을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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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커피 드세요?" "네, 가끔. 힘들 때만요." "왜 힘드세요?" "아, 육체적으로 힘들 때. 몸이 힘들 때요." 02. 생각해보니, 마음이 조금 그렇다. 그 와중에도 웃어준 것에, 결국은 고마워진다. 내가 봐도 참, 바보같은 마음이다.
01. "골을 못 넣었으면 못한 거죠." "어떻게 매번 골을 넣어요." "네?" "어떻게 매번 골을 넣냐구요." 02. 활짝- 웃어주지도 않고, 다정하게 이야기해주지도 않고, 대전에게 이기지 못한 것을 억울하게 여기기나 하지만. 달리고, 골을 만들어내기 위해 싸우고, 화를 내고, 움직이고, 넘어지는, 그런 김은중을 보고 있다. 그리고 그런 김은중을 보다가 다시 알아버린다. 나는, 김은중이, 정말 좋다. 03. 피곤하고, 많이 졸린 하루다. 자야겠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 꿈을 꾸어야지.
01. 이 기분을 뭐라고 할까. 진심이기 때문에 사소한 것에도 흔들릴 수 있다는 것. 원하기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것. 물론 너는, 이런 것, 이해해주려고 하지 않겠지만. 02. 프리지아, 를 선물받았어- 라고 말했지. 생각이 났어. 그 때 그 술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손에는 노란색 프리지아가 들려있었다는 것. 지하철 역으로 향하면서 내가 멀리 가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것. 이제는 고통스럽지 않아. 생생하던 고통은 희미해지고 줄어들고 약해졌지. 그래서 난 기억은 하면서 살기로 한 거야. 고통스럽지 않으니까, 그리워해도 돼. 울지 않을 거니까, 그리움 같은 것은 괜찮아. 03. 난 뛰어나다거나 잘 하고 있다는 말 같은 것을 듣고 싶진 않았어. 난, 다른 말을 원했지만 늘 원하는 말이 아..
01. 엄마가 다녀갔다. 그런데도 별로 해줄 게 없어서 마음이 불편했다. 자기 전에 침대에 누운 엄마가, 입었던 옷을 벗어서 내게로 쓱- 던져놓으며 말했다. "좀 개라. 예전에 내가 많이 개줬잖아." 나는 빨래를 보기 좋게 개는 재주가 없었다. 그래서 싫어하고, 내 것이 아니면 개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내게 툭 던져지는 티셔츠에 짜증을 좀 내려다가, 뒤이은 엄마의 말에 아무런 대꾸를 못했다. 하긴, 예전에 엄마가 많이 해줬지. 지겹도록 참 많이도 해줬지. 그런 생각을 하면 애를 넷 키운 엄마가 무슨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신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좀 진저리처지기도 하고. 02. 나는 엄마를 좋아했다. 그냥 나와 다른 하나의 인간으로 보면 뭐 그리 좋을 데가 있겠냐마는, 그냥 내 엄마라는 존재는..
01. 버려도 될 것과 버리면 안 되는 것을 구분하기. 이 폴더와 저 폴더를 분류하기. 사는 건 결국 나누고 나누는 것의 연속인 걸까. 이 사람과 저 사람을 구분해서, 다르게 대하기. 02. 착한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거절해야 할 것이 있는데 못하는 사람. 그러면서 결국 거절하는 것과 똑같은 결과를 만드는 사람. 그래서 결국 처음부터 나를 거절하려 했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사람. 그런 최악을 만드는 사람. 흔히 사람들이 착하다거나 마음이 여리다고 말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 좋은 것은 좋다, 싫은 것은 싫다, 라고 말해두는 쪽이 좋아. 좀 드세고 날카로우면 어때. 그런 사람이 나에게 친절한 것이 훨씬 더 진심이라는 것을 알아. 03. 축구, 가 다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다루어지..
01. 두통이 시작되는가, 했다. 카페인이 부족했던 탓이라 생각하고 커피를 한 잔 더 마셔보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내내 아픈 머리를 감싸쥐고 있었다. 두통이 사라진 건 퇴근길에서였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을 특별히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대가 어중간한 것. 토요일에도 일을 해야 한다는 것. 업무 시간 안에 주어진 업무량을 다 끝내기가 불가능하다는 것. 그런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긴 하지만, 확실히 특별하게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남의 돈을 받아먹고 사는 일이 어디에선들 쉬울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꽤 일을 잘해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이런 나를 꽤 마음에 들어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런데도, 조금씩 못견딜 것 같아진다. 나의 문제라는 것을 알지만, 어쩔 도리가..
이대역 습관처럼 신촌역에서 내려버린다. 어느 역이냐는 반문을 듣고서야 내가 미처 약속 장소를 확인하지 않았음이 생각난다. 좀 짜증도 나고, 내 버릇은 여전하구나- 싶어서 웃음도 난다. 터덜터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가 이대역으로 향하니,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은 그 역에는 어쩐지 매우 기분 나쁜 바람이 불고 있다. 그 곳에서 치마를 펄럭이며 지도를 보고 서있는 여자는 불운을 암시하는 존재처럼 느껴지는 것과 같은 식. 최근 들어 이대역은 내게 그런 식으로 기분 나쁜 공간이 되어 있다. 말 나는 누군가의 목소리나 말투에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쉽게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모자란 내 청력 탓이라 생각한 적도 있고 남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지 못하는 내 집중력의 문제라고 생각한 적도 있..
01. 나를 지키는 것은 쉽지 않다. 진짜 자존심을 유지하는 것도 그렇다. 타인을 비웃거나 무시해선 안 된다고 나를 타이르지만, 그것도 내게는 너무 어렵다. 나 하나를 내 의지대로 살게 만드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 요즘은 자꾸 이런 생각이 들고, 그래서 더더욱 나를 자주 돌아보게 된다. 내가 부족하거나 무지한 것은 답답하고 싫어도 참을 수 있다. 채워나가면 되고 배워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이토록 오만하고 관대하지 못하며 허영심에 들떠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면 참을 수가 없어진다. 이런 습성들은 내가 싫어하는데도 내게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흔들리지 않고 옅어지지 않는, 굳어버린 나의 기질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싫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타인을 함부로 느끼는 것을 정당화해주지는 않는..
아주 조금,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 중요한 사람은 지키면서 살고 싶었어. 가진 것 없고 그래서 보여줄 게 없고 사는 데 득이 되거나 힘이 되는 게 부족해도 그런 것으로 낙담하지 말자. 그런 것 말고, 내가 세상을 제대로 볼 힘이 있는가 하는 것. 내가 조금 덜 이기적이고 조금 더 품이 넓은 사람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살도록 하자. 내가 나를 경멸하거나 혐오하면서 남은 생을 보내고 싶진 않아. 조금 더 힘내자. 최소한 나에게만은, 조금쯤 좋은 사람이라 인정받기로 하는 거야.
01. 마음 같은 것 아프지 말자. 그런 것 까지는 하지 말도록 하자. 02. 좋지 않은 일이 있어. 덕분에 생각이 정지됐지.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청소기를 돌리면서 내내 생각을 했어. 방법이 있어? 있을까? 어떡하는 게 현명한 거지? 자신은 있어? 억울하진 않니? 그러다 또 화가 나서 울고 싶었지. 도망가고 싶었지만 도망가면 죽을 것 같았어. 목숨보다 더 포기하기 어려운 것은 자신의 일상인 거잖아. 나는 내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어. 이번에도 그냥 숨어버리는 게 다일까? 하지만 과연 이번엔, 숨을 곳이 있기는 한 걸까? 피가 나빠. 그래, 아니라고 말을 할 수가 없어. 03. 진과 우에다와, 카메와 준노와, 윳치와 코키가 데뷔를 했고 그래서 굉장히 축하해주고..
왜, 라니. 왜, 그런 말 따위 어째서 하는 거야. 왜. 나라고 해서 이유를 알 리 없어. 이게 다 내 탓은 아니잖아. 나는 외롭다고 울지도 않았고, 진실을 원한다고 기도도 안 했어. 그냥 존재가 느껴지지도 않게, 조용히 있고 싶었던 거야. 그래, 다 거짓말이라고 하자. 내 말은 다 거짓말이라고 쳐. 이 말이 진실이라 생각하고 내뱉는 것도 아니야. 하지만 정말 난 무서운 거라고. 어쩔 수 없잖아. 이렇게 겁이 나는 게 많은 것은, 내가 원한 것이 아닌데도, 이런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은, 나에게 내 탓이라고 하지 말고 부디 나에게 이 마음을 추스리라고도 하지마. 정말 이렇게 이유도 없이, 머리를 처박고 울고 싶다니. 구제불능 조울증이야. 뭐가 다 이따위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