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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01. 사람들을 만났다. 이런저런 농담을 하고, 듣고, 웃고, 그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아무 생각없이 그냥 마구 웃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지 출출하지도 않았는데 식사를 하고, 두어잔일 뿐이지만 맥주를 마시고, 눈 앞에 보이는 대로 안주를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다지 배가 부르지 않을 만큼- 그 만큼 웃었구나, 라는 생각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어쩐지 조금 유쾌해졌다. 사람은 섬이 아니라고. 그래, 그 말은 누구에게나 이런 관계맺음 정도는 필요하다는 뜻이었는지도 모르겠다. 02. 요즘은 마음이 시들시들하다, 라고 자주 느낀다. 꼭 특정한 대상을 향해서라기 보다는 그냥 대부분의 대상을 향해서 그렇다. 지난 몇 달 손을 놓고 있었던 나의 옛 싸이를 돌아보다가, 내가 올..
01. "시들시들해." "뭐가?" "그냥, 마음이. 꽃이 지는 것처럼, 그래." "네 마음이 진다는 말이야?" "응. 가장 좋았던 시기는 끝난 것처럼." "그럼, 네 마음도 없어져?" "아직은 아니지만, 곧 그렇게 되겠지. 꽃도 피었다가 지잖아. 마음도 그래." "사람 마음이 어떻게 꽃하고 같아?" "꼭 다르라는 법도 없잖아." "그럼 언제 다시 피는데?" "그건 나도 몰라." "다시 피기는 해?" "다시 피겠지. 그치만 다시 핀 꽃이 졌던 그 꽃하고 같은 꽃은 아니잖아." "무슨 말이야?" "그 때 내 마음이 좋아하는 건 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일 거라고." 02. 때로는 이 마음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죄처럼 느껴져. 속죄하기 위하여, 그냥 이렇게 있는 거야. 03. 글쎄, 나도 사람일까? 나도 사람인 ..
바빠. 너무나 바빠. 왜 이렇게 바쁘냐면 난 할 일이 많기 때문이야. 일주일에 51시간을 일하고 있고 오며가며 지하철과 거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14시간. 아침엔 출근 준비, 들어오면 씻고 청소하고 잘 준비를 하는 데 드는 시간이 일주일에 17시간이나 되지만 난 그 외에도 해야할 게 너무 많지. 매일매일 일을 해도 업무량은 매일매일 늘어나기만 해서 자체 연장 근무는 불가피해. 하지만 리그가 시작되었으므로 주말에 연장근무를 계속 하기란 더이상 불가능하지. 나의 홈팀은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부터 두 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있어서 난 매번 일주일 중 유일한 휴일을 축구에 꼬박 가져다 바쳐야 해. 데뷔를 눈 앞에 둔 진과 등등의 녀석들도 챙겨봐줘야 하는데 그것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게다가 본 영..
01. 내가 원하는 것이 너의 사랑인지 너의 이해인지 잘 모르겠다. 내 입으로 말하는 것 뿐 아니라 내 머리로 생각하는 것들에마저 확신을 가질 수 없다. 가장 알 수 없고 믿기 어려운 존재는 사실 나였다. 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고, 신뢰할 수도 없으며, 이렇게 또는 저렇게 하도록 도와줄 수도 없다. 너무 어렵다. 나를 달래서 그럭저럭 살아가도록 하는 일이. 02. 진실은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그러니까 내가 믿고 싶은 쪽을 믿으면 되는 거니까.
누군가, 어느 순간 갑작스레, 내 곁에서 사라진다. 조금씩 멀어진다거나, 차차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갑자기- 고개를 돌려보니 곁에서 사라지고 없다. 다른 사람들처럼 예고도 하지 않고, 예감도 주지 않고, 인사할 기회도 주지 않는다. 기다리고 있는데 오지 않는다. 올 시간이 넘었는데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끝이다. 내 곁에 없다. 사라졌다. 마치 시간의 발자국에 묻히듯. 우리의 한숨소리에 지워지듯. 내가 상실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문득 다시 깨닫는다. 작별 인사라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내가 있다. 하지만 언제나 눈물로는 어떤 것도 바꿀 수가 없다. 나는, 고개를 돌려 이 자리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문을 열고 들어와야 하는데. 나를 보면 싱긋 웃어야 하는데. 그 모든 것은 끝..
어쩐지 기분이 나빠지고 있다. 혐오하는 대상을 바라보는 눈으로 거울을 노려보기. 젠장, 난 왜 고작 이따위로 생겨먹은 거야.
01. 꿈속에서도 아이는, 어쩌면 그렇게 실제의 아이와 똑같은 것인지. 나에게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리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결국 아이를 등에 업고, 추위에 아이가 방치될까봐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때로는 아이에게 소리를 치는 제 엄마를 바라보면, 아이가 너무나 예쁘다고 말하는 제 엄마를 보고 있으면, 나는 저 아이가 마치 자기의 것인 양 이야기할 수 있는 그 사람이 부럽고도 미웠다. 나는 아이의 검고 동그랗고 큰 눈동자 때문에, 내가 그 아이를 나의 것으로 소유하고 싶어했다는 것을 안다. 그래, 나는 아이의 어머니가 되고 싶었고 그래, 또 나는 아이의 연인이 되고 싶었다. 02. 시간이 없다는 핑계. 오늘은 아니라는 핑계. 두고볼 것이다. 그 핑계를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써먹을 것인지를. 03. ..
01. 캇툰의 데뷔곡이 될 를 듣고 있다. 들을 때마다 하는 생각이지만, 쟈니스들 노래 치곤 꽤나 좋다. 기대보다 노래가 좋아서 다행이다. 데뷔 앨범에 몇 곡이나 들어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같은 느낌의 진 솔로곡이 한 곡 있었으면 좋겠다. 멤버가 자그마치 여섯이긴 하지만, 그래도 진의 노래가 가장 뛰어나니까. 그러니까 한 곡 정도는 어떻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음, 그래도 역시 무리인 걸까. 02. 다른 노래를 부르는 나카시마 미카의 목소리는 를 부를 때 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실망같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조금 허전한 기분이다. 03. , 보다 재미있다. 이 사람의 책은 책장이 빨리 빨리 넘어간다. 04. 다운받는 속도가 늦어지는 바람에 결국 을 다 보지 못했다.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되겠거니, 해도..
01. 스페인 태생의 작가는 어떤 글을 쓰는 것일까, 호기심을 가진다. 스페인 역사에 관해 알고 싶어하고 스페인 남자를 한 번 더 돌아보는 것과 같은 이유다. 좀 더 스페인 작가의 글을 읽어보고 싶다. 물론 최근 들어 책장에는 읽지 않은 책이 늘어나고 있지만 말이다. 02. 신청해두었던 김수영 전집이 드디어 도착했다. 손에 들면 장중한 무게감이 밥 안 먹어도 배부를 것 같은 포만감을 안겨준다. 겉장을 넘겨보니 작은 글씨들이 빽빽하게 지면을 채우고 있다. 아하- 웃고 싶어지는 기분. 오랜만이다. 책을 보면서 느끼는 카타르시스. 이 책은, 로마인 이야기 이후 오랜만에 내가 독파하고 싶어진 책. 03. 후두두둑- 갑자기 떨어지는 빗방울에는 걸음이 빨라진다. 뛰다시피 들어간 극장에서는 몇 년 사이 내가 가장 심..
어떤 것은 내 자유의지에 의해 일어나는 일이야. 어떤 것은 무의식적으로 행하고 있는 일이야. 때로는 타인의 의지에 의해 이끌려가기도 하는 거야. 그렇게 삶이, 이 방향과 저 방향에서, 다시 또 새로운 방향에서 진행되고 있어. 내가 앉아있는 곳은 그 삼각형의 무게중심이 맞는 걸까.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이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 맞는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어. 이 의심이 솟아난 이상, 난 또 아마 모든 것을 다시 고민하게 될 거야. 내가 있는 시간에서 거짓말처럼 없어져버린 너에 대해서도 생각하겠지. 너를 좋아하는 이유나 너를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서 뿐 아니라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게 맞는지 싫어하는 게 맞는지도 생각하게 될 거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행위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묻겠지. ..
어떻게 해야 하는 줄 몰라, 나는 자리에 앉았어. 그 말이 생각났지. 마지막 말인 것 같았어. 난 세상에 그보다 더 나를 씁쓸하게 만드는 말이 있을까, 생각했지. 난 그렇게까지 아픈 말이 마지막이 되지 않아도 좋았을 거라 생각했어. 때로는 내가 이렇게 웃고 있는 게 너무나 미안했지. 내가 이럴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을까, 궁금해졌어. 하지만 이런 것에 죄책감을 가지는 내가 싫었어. 정말로 아무렇지 않니? 사는 건 그때와 조금도 다를 게 없니? 이해하지 못하고 납득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았어. 그리고 그렇게 끝이었지. 생각보다 사는 건 너무 쉬웠지. 도망가고 싶었다고, 그래 나는 그랬어. 내가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시간에서, 모든 게 너무 늦어버렸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어떻게 될 것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마는 시점이 있다. 그것은 자포자기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렇게 되어버린다 해도 지금은 어쩔 수 없다는, 필사적인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마음을 싫어하고 무서워하고 꺼림칙해 하지만,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는 이상은 그 마음에서도 도망갈 수 없다. 나는 그렇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이제는 그렇게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마는- 그 시점에 서, 있는, 중이다. 최선을 다해서, 그 우울하고 어두웠던 어린 시절의 나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괴로워하지 않고, 쉽게 즐거워하며, 자주 웃고, 휴식과 여유를 여과없이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대신 다른 것을 잃지 않았던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되돌아보는 일은 ..
01. C는 나와 참 다른 사람이다. 나는 C가 하는 대부분의 말을 조소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거나 신기해한다. 그런데도 내가 종종 C의 말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나는 C에게 전혀 친절하지 않고 다정하지도 않지만 종종, 가만히 앉아서 C의 말을 떠올리는 것이다. 02. 나카시마 미카가 glamorous sky를 부를 때, 문득 심장이 철렁한다. 나는 성급하게 머리 속에 떠오른 그 이미지를 잡아챈다. 5초쯤 주의를 기울이면 그 얼굴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 얼굴은 C의 존재처럼, 이상하고 의문을 가지게 하는 상태로 내 머리 속에 살아있다. 그와 반대로 나는 그 얼굴에게 아무런 인상도 남기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 때면, 이상한 굴욕감에 빠지게 된다. 내가 열 여섯이나 스물 한 살이었다면 분명..
01. 우선 순위를 생각하라, 고 내게 말했어. 2위나 3위는 모르지만 그래도 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고 말했지. 그런데 왜 순위를 알 수 없는 일부터 시작하고 있냐고 물었어. 나는 아직 시기상조라거나,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거나, 이 일들도 꽤 재미있게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것 같았어. 하지만 사실은 무섭거나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지. 결국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게 가장 진실에 가깝다는 것을 말이야. 02. 내가 쳐다만 보아도 너는 고개를 끄덕일 거야. 하지만 나는 그런 어리석은 확신에 사로잡혀 있을 수 없었어. 누군가는 사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나는 이렇게 아무렇지 않기 위해 노력할 거야. 나는 이렇게 희미하게 사그라들고 작아져서 없어지는 것들을 그냥 바..
아무렇지 않고 싶었어. 흔한 열정이 유일한 것인 양 목을 매지 않겠다고 생각했지. 나는 어느 새 믿음을 잃어버린 내 마음을 보았어. 내가 당신을 믿었던가? 내가 당신들을 믿었던가? 이상한 일이지. 당신들은 늘 나를 이렇게 실망시키고 슬프게 하는데도 나는 믿음을 잃어버린 내 마음이 미안했어. 미안해서 울고 싶었어. 라울은 달리고 있었지. 긴 부상 끝에 라울은 드디어 그 자리에 돌아와 있었어. 아무렇게나 자라버린 까만 머리카락은 더 이상 라울 곤잘레스를 소년으로 보이지 않게끔 만들었지. 나는 좁은 그 어깨가, 수척한 그 얼굴이, 근심이 드리워진 그 검은 속눈썹이, 너무나 초라해 보여서 속이 상했어. 패배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동료들을 바라보고 있었거든. 절대로 멈춰서는 법이 없던 라울 곤잘레스도, 패배에 가..
특별히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를 만나겠다고 누군가 연락을 해온 것도 아니다. 그냥, 그냥, 이 도시의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그냥, 그냥, 이 도시의 냄새를 맡고 싶었다. 축구는 정체성이라 했던가. 팀에 대한 애정은, 나로 하여금 살아오면서 나와 어떠한 인연도 맺어본 적 없는 이 도시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내 팀의 경기가 쉬는 동안 그 경기를 보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이 도시에 발 디디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냥, 그냥, 이 도시를 봐야겠다는 마음도 커졌다. 나는 이 도시를 잘 모르고, 그저 한 달에 두 세번 잠시 이곳에서 쉬었다가 떠나오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니 이것은 분명히 이 도시를 내가 환상화하고 있는 것이 맞겠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이 도시에서 시간은 늘 특별하게 흘러..
01. 늘 웃으면서 안부 인사를 건네는 것은 지겹다. 사실은 슬프면서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구는 것도 지겹다. 상대방의 마음이 상할까봐, 그런 말을 해서 내가 미움 받을까봐,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관계인데 그 관계가 혹 틀어지게 될까봐, 그리하여 내가 나쁜 사람으로 기억되기라도 할까봐, 할 말을 빙빙빙 둘러하고 최소한의 예의라는 이름으로 넌지시 본론을 꺼내다 마는 것. 내가 하고 있는,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지겹다. 나는 솔직하게 내게 말을 하는 네가 있었으면 좋겠다. 솔직하게 내가 이야기해도 나를 오해하지 않는 네가 있었으면 좋겠다. 02. 그렇지, 그녀. 그녀는 사라졌지. 노래가사처럼 그녀는 사라졌어. 그녀를 본 사람은 이제 정말 없는 걸까. 사라져버린 그녀는 어디로 간..
키프로스는 지중해 동부에 있는 섬나라라고 한다. 수도는 니코시아이고 그리스어와 터키어를 쓰고 있다고 한다. 한국과의 시차는 7시간. 그러니까 현재 그 나라는 오후 7시다. 김은중은 그 섬나라에서 현재 오후 7시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갑자기 김은중이 무척 보고 싶어서 키프로스라는 나라에 대해 알아본다. 국가도 들어보고 사진도 찾아본다. 그 나라에는 아름다운 아프로디테의 섬도 있다하고, 그 나라는 셰익스피어 '오셀로'의 배경이 된 나라라고도 한다. 공기는 맑을지 궁금하다. 물은 깨끗할지 궁금하다. 음식은 맛이 있을지, 날씨는 포근할지, 잔디는 잘 정리가 되어있을지도 궁금하고 사람들은 친절할지도 궁금하다. 그 곳에서, 김은중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너무 궁금하다. 종종 이 마음이 너무나 유치해서 웃음이 날 ..
비가 내린다. 추적추적- 이라고 표현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진부하단 생각이 들어서 관둔다. 옷을 갈아입으려다 멈추고 책상 앞에 앉는다. 의자를 사니 좋다. 바닥에 주저앉는 것은 왠지 서글픈 느낌이 드는 일이다. 돌아보니 금세 책상 위가 지저분해져 있다. 휘적휘적 치워버리면 그만인데 괜스레 성가셔서 그것도 관둔다. 활짝 열어둔 창문으로는 빗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꽤 따뜻한 날이다. 맨다리를 감아도는 공기도 그다지 차갑지 않다. 이런 기분을 말한 것일까. 언젠가 자신은 자주 이유없이 행복하다고 말했던 그 여자의 말 말이다. 난 그 때 그 여자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난 행복을 꿈꿔본 적도, 행복하단 기분을 느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어쩐지 이렇게 지저분한 책상 앞에 앉아서 등 뒤에서 울리는 빗소리를 듣..
01. 여유로운 하루가 갔다. 이보다 더 여유로울 수도 있을까, 생각한 하루가 갔다. 하루가 이렇게 긴 시간이었던가, 새삼스러웠던 하루가 갔다. 나는 이 하룻동안 일을 하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TV를 보고 씻고 청소를 했다. 하루를 쉬기로 한 덕분에 꽤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하루가 갔다. 02. 모르는 소리 말아, 라고 자주 말하고 싶었다. 관계에 대한 환상은 없어진 지 오래이다. 그래서 더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네가 내 옆에 올 수 없다 해도 말이다. 마음이 너무 세세하게 만들어져 있는 탓이라고 해두자. 너무 작은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물기가 스며들 틈이 많다고. 나도 나의 이런 점이 좋은 것은 아니다. 나는 이보다 더 대담하고 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생각과 말은 좀 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