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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01. 오늘따라, 너무 심심해. 심심하니까 우울해져. 우울해서 흥이 나지 않아. 사는 게 왜 이렇게 재미가 없는 거야. 투덜투덜. 오늘의 나는 내가 싫어하고 꼴사나워하는 종류의 인간들과 닮았네. 02. 왜, 왜, 왜. 이렇게 많은 인간들이 곧이 곧대로 듣기보다는 아니라고 말하고 아닐 거라고 말하고 아닌 이유에 대해 말하는 걸까. 나는 고집을 부리고 싶어. 내 말은 다 옳아. 그리고 누군가는 그냥 좀 들어주면 좋겠어. 03. 이런 곱지 않은 성격으로 나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얼마나 숱하게 짜증나게 한 걸까. 그래, 가끔 흉한 꼴도 보이고 듣기 싫은 말도 던지고 그러는 것이 관계라고는 하지만. 그렇지만. 04. 진실에 대한 집착은 때때로 무서워.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각자의 몫으..
투정부리고 싶지 않은데, 투정을 부리게 돼. 아무렇지 않다고 말했다가도, 금세 다시 침울해져. 물론 반쯤은 장난처럼 사랑한다는 말같은 걸 남발하고 있지만. 많이 좋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야. 나한테는 네가 최고의 선수인 것도 사실이야. 많이 특별하게 생각했고, 나에게 있어서의 대전 시티즌에는 너의 비중이 너무 컸어. 한동안은 너만 봤던 나니까. 너 때문이라면 대전조차도 원망하고 탓할 수 있었던 게 나니까. 나는 꽤나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이고, 한 번 좋아하면 마음이 잘 돌아서지지가 않아. 그러니까 자꾸 이렇게 되는 것을 어쩔 수가 없는 거야.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싶거든. 나도 너를, 예전에는 좋았지만 이제는 남의 것이 된 선수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그게 안 된다면, 네가 있는 ..
하트 에이스의 의미는, 가장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는 것. 대전은 승리했고, 김은중은 골을 넣었다. 이것이 내가 가장 원하는 결과였다는 것을, 하루가 다 지나간 후에야 인정하고 있다. 앞으로의 많은 리그 데이가 오늘만 같아라.
그냥 있어. 그 후의 시간은 늘 그랬던 것도 같아.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었겠어. 그냥 있어야 했지. 울지도 않았어, 난. 노력 따위 하고 싶지 않았지. 나는 그냥 있었어. 그렇게 있다보니 시간이 흘렀고. 시간이 지난 후에 그대로의 내가, 아직도 거기 있었어. 그래서 무서웠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하지만 나 외의 모든 것은 놀랍도록 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렇다면 나만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남겠지. 지금의 이 시간에는 내가 없다고 생각해. 난 거기 그냥 있었으니까. 아마 알아볼 수 없을 거야. 시간이 달라졌어. 같은 시간 안에는 없게 되었지. 난 아무것도 안 해서, 우는 것도 잊는 것도 안 해서, 그냥 거기에 있었어. 그 시간에 남겨졌어. 다른 사람을 좋아해. 그렇게 하라고..
01. 타로 올해의 내 카드는 황제이고, 황제는 요정 왕국의 지배자이다. 이 요정은 혼란스러운 상황에 질서를 부여할 것을 알리는 존재라고 한다. 지치고 힘들지라도 도식적인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내 성격 카드로 지정되어 있는 것은 황후이다. 이 카드는 78장의 카드 중 가장 예쁘며, 그런 이유 때문인지 처음부터 내 눈을 사로잡은 카드이다. 황후는 황제의 아내이며, 다른 요정의 삶에 커다란 힘을 행사한다. 예쁜 왕관과 모자를 쓰고 있는데 이것은 가장 뛰어난 요정만이 쓸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처음 이 카드가 내 성격 카드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매우 기분이 좋았던 것은, 카드 속 황후가 매우 아름다우면서도 아주 엄격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무척 크고 어여쁜 날개를 가지고 있으며..
바람이 분다, 라거나. 소년은 울지 않는다. 소년, 열일곱. A better day. 거짓말같은 시간. Please. 괜찮아, 울지마.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마음이 슬퍼서 문득 생각이 났네.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나의 소년과 소녀는 모두 다.
계속해서, 선택 앞에 놓인 것이다. 누구라도 산다는 건 그런 식일 것이다. 내 의지대로- 였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휩쓸린 기억이 있다고 해도, 원하지 않는 것을 하도록 강요받은 적도 없고 원하는 것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요당한 적도 없으니. 그것으로 괜찮다. 스물 여덟해는 고스란히 내 것으로 남았다.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하느냐, 하는 것도 결국은 선택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미 내가 그 태도를 어느 정도까지는 선택했다고 믿는다. 어떻게 믿음에 흔들림이 없을 수 있겠냐고. 이렇게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 선택이 달라질 리 없다. 그것을 믿고 가면 될 것 같다.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최소한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
01. 회색 신사에게 시간을 빼앗겼던 모모의 마을 사람들이 생각났다. 시간에 여유가 생긴다면 하고 싶은 게 많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내가 모모의 마을 사람들과 닮았다는 걸 깨달았다. 내 시간도 그렇게 회색 신사들의 손 안에서 사라져버린 것일까. 바둥거릴수록 그것들은 내 시간이 되지 못하고, 영영 내게서 멀어져버린 것일까. 나는 지금 시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02. 시간. 언제나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때로는 거짓말같았다. 어떻게 이렇게 금세, 그 긴 시간들이 흘러갈 수 있냐고.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지나간 시간을 바라보았다. 그 속에, 넘실대는 기억의 강 속에, 네가 있었다. 03. 잡을 수 없으니까 괴로웠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랬던 것 같다. 04. 시간이 계속해서 흘러갈..
내 안에 역겹고 경멸스러운 것들이 있다. 모든 사람에겐 그런 것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만약 나뿐 아니라 모두 그러한 거라면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그런 것들을 어떻게 참고 버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안에, 역겹고 경멸스러운 것들이 있다. 그래서 나를 마주보는 일이 너무 힘들다. 다른 이의 어떤 말도 나를 설득시키지 못할 것이다. 삶을, 그리고 나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 어째서 이런 강박관념이 깃들어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01. 최근 내가 생각을 잘 하지 않게 된 것은 시간을 최대한으로 쪼개 쓰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동안 너무 되는 대로 살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최근 퇴근한 후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알차게 쓰려고 애쓰고 있다. 그렇게 얼마 남지도 않는 시간 안에 이런 저런 일들을 채워넣다보니 당연히 짜투리 시간이 없어졌다. 나는 늘 혼자 가만히 있는 시간을 넉넉하게 가지고 사는 사람이었고, 그 시간들을 통해서 독서도 하고 사색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시간을 쪼개 쓰기 시작하면서 내 일상에서 독서도 사라졌고 사색도 사라졌다. 덕분에 부지런하게 사는 것이 무조건 옳은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나는 나에게 맞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고도. 02. 아주 쉬운 문법책을 사서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
종아리가 아프다. 잠이 오지 않는다. 불을 껐더니 창밖이 환하다. 아침이 왔나보다. 이런 기분으로 아침을 맞아보기도 오랜만이다. 글을 써야했는데 마무리하지 못했다. 몰랐는데 나, 책임감이라든가 그런 것이 꽤 강한 인간이다. 아마도 어딘가 미흡한 인간으로 남는 것을 싫어하는 탓일 테다.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기질인 것 같다. 오래 걷지도 않았는데, 왜 종아리가 아픈 것일까. 문득 엄마에게 회초리를 맞던 기억이 떠오른다. 왜 맞았더라? 그러고보면 꽤나 고지식한 선생님같던 우리 엄마. 이런 점. 조금 엄마를 닮은 것 같다. 좋은 점인 걸까. 나쁜 점인 걸까.
너나 나나 다 월드컵 때문에 난리라고 짜증을 내놓고도, 결국 나도 월드컵 때문에 마음이 들뜨네. 어쩔 수 없지. 난 축구팬이니까. 리그 축구건 대표팀 축구건, 난 축구가 좋으니까. 가슴 설레는 계절이 왔다. 그러니까 즐겁도록 해야지.
사람들이 다 잊는 것 같다고. 그래 난 그런 사실이 조금 억울했어. 너도 다 잊은 것 같더라고. 그래 난 그런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던 거야.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진실만 믿고 진실만 보고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마음은 생각과 또 달라서, 이렇게 너를 오해하는 나일까봐 진저리를 치지. 내가 본 것이 진실이 아닐까봐. 내가 죄다 잘못 보고 있는 것일까봐. 무서워. 그래서 화가 났어. 한참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네 눈빛을, 네 표정을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갑자기 아득해지는 거야. 네 세계에는 내 자리가 없잖아. 나는 네 일상이 아니잖아. 바보처럼, 진실을 봤지. 그래서 화가 났어. 기억 속에는 분명히 나를 웃게 했던 네가 있고. 난 그 때 첫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녀처럼..
01. 난 그게 두려운 걸. 니 안에서 나의 모든 게 없던 일이 될까봐. 눈 감으면 늘 선명하던 니가 어느 순간 사라질까봐 정말 겁이 나는 걸. 02. 정말 많이 좋아했다. 하지만 친구, 이제 정말 그만하자.
01.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02. 생각을 많이 했어.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오래 자리잡고 있는 동안, 나도 생각을 많이 했지. 바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고. 어디서 일을 하든 내가 좋아하는 일일 가능성도 적고. 어차피 그런 거라면 나를 이렇게 인정해주는데, 그냥 있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냐고. 계속 생각을 했어. 나도 생각을 많이 했어. 그래서 몇 번이나 하려던 말을 삼킨 적도 있었는데, 어째서 오늘은 그렇게 그 말이 쉽게 툭 내뱉어졌는지 모르겠어. 그냥 그런 말이 나오더라고. 그냥 나도 모르게 뱉은 말처럼. 그냥 그랬어. 그냥 툭. 안녕하세요. 주말 잘 지내셨어요? 뭐 이런 인사를 하는 것처럼 말이야. 어찌나 싫은 기색을 비치던지 결국 저녁을 먹다가 체해버렸어. 저녁 ..
어쩐지, 감동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김은중은 아직도 앳된 티가 얼굴에 남아있던 청년이지 않았는가. 그 사람이 결혼을 하는가 싶더니, 어느 새 한 생명의 보호자가 되었다. 김은중은 이제 아빠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모양이다. 혈육이, 혈육을 가졌을 때 이런 것과 비슷한 감동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조금 믿기지 않고 많이 기특하여 코끝이 다 찡해온다. 한 달음에 달려가 축하인사를 퍼붓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결국 아쉬워진다. 계속 김은중이 자라나는 것을 보고 있었다는 기분이다. 이렇게 자라나는 김은중이란, 어쩐지 나를 감동에 젖게 한다.
01. 화가 나면, 아닌 척 굴려 해도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어. 이렇게 화를 내는 내가 싫어서 아무렇지 않은 척 굴려도 해도, 한 번 화가 나버리면 얼굴도 보기가 싫어지는 거야. 사람이 싫은 일에 대해서는 어쩌면 이렇게 한결같은지 모르겠어. 02. 열심히 살자, 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칭얼대지 않기로 하는 거야. 있잖아. 나중에 원하던 것을 결국 손에 못 넣었다 하더라도. 그래도 살았던 것을 후회하지는 말자. 그 마음이 첫번째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모든 것까지는 되지 않도록 애쓰는 거야. 그렇게 해야만 나중에 내가 나로 인해 좌절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03. 토닥. 어깨를 두드려주는 손에 대해서 생각했어. 하지만 힘내는 일은 혼자서 하자. 타인과 나눌 수 있는 것은 기쁨이나 즐거움 ..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학교 앞을 지나간다. 서서 창 밖을 내다보면 한참 공사가 진행중이다 싶더니 어느 새 건물이 높이 솟아있다. 저 건너편으로 고등 학교나 중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높게 오른 건물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생각보다도 나는 풍경을 좋아했던가보다. 이렇게 시야를 가리는 고층 건물에 실망스러운 마음이 되는 걸 보면. 그곳에서는 4년이나 5년쯤의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 나는 그 시간에 비하면 분명히 과할 그리움을 안고 산다. 무엇을 그렇게 애틋해하는 것인지 나도 모른다. 그 교정에 내리던 햇살이었던가. 비가 오면 비린내가 나곤 하던 호숫가였던가. 그래, 어쩌면 그것은 너의 하얀 얼굴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그 하얀 얼굴에 그림자를 만들던 긴 속눈썹 같은 것일 수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지나가..
시원한 동시에 따뜻한 바람이 맨다리를 휘감을 때의 감촉이란 것이 있다. 그 감촉은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잡는 것만큼이나 기분 좋은 것이다. 치마를 입어보지 않았거나, 스타킹을 벗지 않는 사람들은 이 느낌을 모를 것이다. 나는 대체로 차가운 쪽의 계절을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여름이 다가올 무렵에 신나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맨발로 샌들을 신을 수 있고 맨 다리로 치마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오늘이나 어제, 지난 며칠동안은 아침엔 따뜻하고 저녁엔 시원했다. 그래서 매일매일, 숲속에서 맞은 아침이라든가 바닷가에서 바라본 저녁 하늘 같은 것을 떠올리는 것이다. 어딘가 가고 싶다고 혼잣말을 하면, 사시사철 그러지 않았냐고 G가 묻는다. 사시사철, 그래.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 그러니 이쯤에서 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