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아무도 모른다/2005.01 ~ 2005.04 (44)
청춘
승리하는 당신의 동료들을 봐도 기쁘지 않아. 내 탓일까. 당신 탓일까. 그런 표정 짓지 말아줘, 라울. 그 자리가 부담스러운 거라면 이제부터 캡틴이라고 부르지 않을게. 그러니까 웃어줘, 라울. 당신이 슬프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당신의 팀 따위 아무런 즐거움도 되지 못해. 아프지 말자. 울지 말자. 슬프지 말자. 이번에는.
나는 사는 게 재미가 없다, 라고 말했다는 늙은 여자. 그 늙은 여자의 등을 보고 있었을, 그녀의 젊은 아들이 생각이 났지. 왜 이 따위가 인생이어야 하는 걸까? 돌아가고 싶어. 그런데 무엇을 향해서인지가 생각이 나지 않아.
01. 그래, 어쨌든 이긴 건 이긴 거니깐. 02. 축하해. 기뻐하던 용호. 잘해준 병국. 고마운 지성. 스트라이커 재진. 그리고 우리의 영광도. 03. 이상하지? 왜 동진인 볼 때마다 조금씩 더 좋아지는 기분일까. 04. 그리고 선택하길 잘했어. 이렇게 든든하게 자라줄거라고 믿었지. 내후년 너는 꼭 독일에 가게 될 거야. 자랑스런 우리의 병국이. 05. 한 골 밖에 못 넣었으면 어때. 보는 내가 화가 좀 났으면 어때. 용호가 기쁘다잖아. 병국이가 즐겁다잖아. 더 이상은 긴장같은 거 하지 말고 뛰어. 너희들은 잘났다. 그거 모르니? 06. 이곳에서 살아볼 생각을 하다가도 이렇게 한 순간 나를 무너뜨리는 생각. 즐거운 걸 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 아닐까? 5월 1일 난 창사에 가고 싶어졌어.
01. 제발 가줘. 내 안에 들어오지마. 내 속에 머물지도 마. 이 목소리를 들으면서 얼마나 숱한 생각을 했더라. 지금은 없는 너는, 상상도 못할 수만가지 생각들. 02. 드디어 봄비가 내리나보네. 추워도 바람은 따뜻한, 3월 3일의 비. 03. 택시를 타고 해변을 달리면 유난스레 짙은 안개에 바다색이 보이지 않아. 촘촘히 유리창을 때리는 봄비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묻는 소리. "어때요? 여기서 사니까 좋죠?" 나는 왜 아니라고 말하지 않고, 웃으면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을까. 04. 습관성이다. 거짓말이나 그냥 답을 회피하고 마는 것은. 05. 매일매일 아침마다 하는 생각은 오늘은 꼭 자정이 되기 전에 잠들어야겠다는 것이지만, 또 매일매일 저녁마다 하게 되는 행동은 세 시가 넘겨서야 잠자리에 드는 것. ..
호베르토 까를로스는 자기의 슛을 선방해낸 상대팀 골키퍼에게 엄지 손가락을 들어올려 보인다. 브라질리언이 아니고서야 가질 수 없는 여유인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건 까를로스만이 보여주고 있는 '나이스 샷'. 이런 까를로스를 누가 감히 욕되게 하려는 것일까. 호세 마리아 구티는 제 얼굴을 가격한 선수에게 경고를 주지 않는다고, 심판의 손을 거세게 뿌리친다. 당장 '씨팔' 욕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얼굴. 그리고 긁힌 상처속에서 배어나오는 피를 제 손으로 쓰윽 문질러 버리고, 저를 가격했던 이에게 두고보란 듯 시선을 주고 가는 몸짓이 어쩌면 그렇게도 마음에 드는지. 캡틴이 빠진 자리에서 캡틴의 완장을 차고, 그 누구를 만나도 주눅 들거나 자신없어하지 않는- 이런 구티를 누가 감히 2진급이라 부르는 것일까. ..
01. 돌아오는 데는 얼마나 걸리세요? 비행기 속에서 시달리는 시간에 대해 걱정한 적이 있죠. 단 걸 먹으면 피곤이 덜 하다고, 초콜렛 하나라도 건네줄 수 있을 때가 좋았어요. 02. 맞아요. 말이라도 친절했으니 그걸로 된 거죠. 그 이상의 어떤 보답이 있을 수 있다면 그건 당신이 잘 살아주는 것 뿐이에요. 03. 때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살다가, 때로는 사람들의 비난에 너무 많이 아프다가, 때로는 지나간 일들이 꿈처럼 그립다가, 나는 결국 생각을 해요. 이렇게 시간이 얼마가 지나도 나는 다시 그곳에서 내 자리에 서겠다고. 그러니까 당신은, 그때처럼 똑같이 내게 웃어 달라고. 04. 우리의 마지막 인사는 짧은 악수였습니다. 당신의 마지막 목소리는 '잘 지내요' 짧은 당부였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그것들..
미안해. 널 미워해.
01. 아침 6시. 이 시간에 나를 깨어있게 할 힘은 romantic soccer. 02. 김은중 대신 본 레알 마드리드.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최악의, 최악을 보여줄 수가 있니. 대체가 뮌헨보다 잘 했던 포지션이란 딱 하나. 골.키.퍼. 03. 누가 레알 마드리드 전력의 핵심을 호나우도라 하는가. 오늘 전력의 30은 까시야스. 거짓말 안 보태고, 부산의 김용대보다 비중이 높드라. 04. 그나저나 사고치는 까를로스라니. 믿을 수 없어. 괜한 짓 하고 경고 먹는 호나우도라니. 왜들 그러는 거지. 잡은 공의 80%를 뺏기고 말던 구티는 또 어떻고. 지단의 닌자모드는 상상해보지 못한 것. 피구도 칭찬받을 짓 하나도 안 했네. 나쁜 사람들가트니. 05. 김은중은 경기를 잘 했을까. 동료들하고 호흡은 잘 맞을까...
매일 매일 생각해. 너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나에게 조금도 다정하지 않았다고. 나는 네가 좋았지만, 기억하는 것만으로 너는 나를 비참하게 한다고. 나는 네가 조금도 밉지 않지만, 할 수 있다면 한 번 더 너를 아프게 하고 싶다고. 매일 매일 생각해. 어떻게 그 시절에서 나만 빠뜨려두고 너는 잘 살고 있냐고.
01. 모든 걸 말할 순 없잖아. 마지막 얘길 할테니 좀 들어봐. 내가 좋아했던 그 분은 살짝 미칠만큼 이 가수가 좋다고 하셨지만, 그녀는 노래하며 우는 이 가수에게 운다고 해서 사랑이 되는 건 아니라고 말했지. 그리고 그녀의 말이 옳아. 운다고 해서 사랑이 되는 것은 아니야. 02. 내 방 창문 위의 하늘에 고스란히 줄을 선 북두칠성. 여섯개는 초롱초롱 반짝이는데 하나가 안 보여서 한참 찾다가, 별자리 같은 건 볼줄도 모르는 내가 어쩌자고 저것이 북두칠성이란 걸 알았을까- 생각을 하네. 여섯개 밖에 보이지 않는데 정말 저것이 북두칠성 맞을까, 한참을 보다가 결국엔 찾고 말았어. 잘 보이지 않던 세번째 별. 03. '제발'이라고 말하지 못했어. 나에게 간절함 같은 것이 가당키나 하냐고 생각했으니깐. 그런..
미리가 말했다. 사랑은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 그렇다면 나는 죽지도, 까무라치지도 못했기 때문에 사랑으로부터 소외된 걸까. 젠틀한 루이스 피구. 놀라운 조 콜. 시선을 뗄 수 없는 벡스. 그리고 저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생각나는 것이 있어. 수많은 기억을 잊었겠지만, 그거 알아? 당신은 내게 꼭꼭 안부를 물어오는 착한 사람이란 것. 그래, 나도 이것이 어떤 결론에 가닿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상하지. 축구를 좋아할수록 당신에겐 미안해. 잘했어. 병국아.
이렇게 지나간 노래를 듣고 있자니, 언젠가 본 적 있는 아이의 추운 눈이 생각나. 아이는 기습처럼 내 앞에 와서 쉽게 시드는 꽃 한 송이만 남기고 갔지. 그 꽃을 들고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내가 본 아이의 그 눈을 생각했어. 어째서, 내 삶에 잠깐 그 아이가 깃들다가 가버렸을까. 아이는 기습적으로 왔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또 한번 나에게 노크를 한 후 그렇게 다시 날아가버렸어. 어두운 골목길, 나를 바래다주고 돌아서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 그렇게 또 거리를 걷다가, 그렇게 또 지하철을 타다가, 또 어떤 날은 쇼핑을 하다가, 또 어떤 날은 영화관엘 들렀다가 아이를 우연히 만날 수도 있겠다고. 나도, 아이도 비록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그렇게 살다가 마주칠 수도 있겠다고. 그리..
살기 위해서도 노력을 해야 한다. 그냥, 사는 것처럼만 살기 위해서도.
01. 잊을 수가 없어. 그 날에 대해서는. 이렇게 네 얼굴도 기억이 안 나는데, 참 이상하지? 잊혀지지가 않아. 너의 많은 말들에 대해서는. 02. 거짓말이었다고 해도 괜찮아. 정말이었다고 해도 괜찮아. 내 마음은 늘 그랬어. 잃어버린 혈육처럼 마음이 아파. 그러니까, 웃으면서 잘 살아줘. 03. 한 번, 단 한 번이었지만- 나에게조차 설득이 되질 않아. 가당키나 하게니. 나에게 간절함, 같은 것이. 04. 정말로 피는 물보다 진할까?
생각이 길어지면 떠오르는 끔찍한 일들이 너무 많아. 가끔은 정말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쓸쓸하다. 외로움 때문이 아니라 무의미함 때문에.
AC 밀란과 페루자의 경기. 결과는 2:1 밀란의 승리. 가끔 느끼는 것이지만, 밀란은 경제적인 축구를 하지 못하고 있어. 두 골 차는 나야했을 경기였다는 거 당신들도 알지? 밀라노의 선수들. 1. 카카. 길고 훤칠한 스물 한 살의 브라질리언. 작은 호나우도와 함께 축구 황제국 브라질을 이끌어나갈 생각이라면 좀 더 건강해지고, 좀 더 똑똑해져야 할 것 같음. 그런데 정말 (믿을 수 없게도) 이 카카가 히바우도를 벤치에 앉힌 거란 말이야? 2. 인자기. 후반 20분 좀 넘어 들어오시던 오빠. 들어오시자마자 간단하게 오프 사이드 한 번 해주고, 엄청나게 구르고 차이면서 열심히 뛰시더니 결국 페널티 하나 받아낸다. 으하하- 언제 봐도 유쾌하고 어여쁜 오라버니. 3. 말디니. 당신이 디다 바로 앞에서 상대팀 공..
이 모든 것이 재미가 없어졌어. 나는 아, 하는데 너는 왜 어, 라고 대답을 않니?
01. 때로는 내가, 놀랄 만큼 당신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해. 그리고 그 진실의 여부나 이유같은 건 굳이 따져묻고 싶지 않아. 02. 다정도 깊으면 병이 되지. 웃음 소리 하나쯤은 그냥 흘려보내야 했어. 03. 내가, 우리가, 그들이 꿈꾸는 건 무엇일까. 04. 중국과 핀란드의 경기를 보다가 채널을 바꾸고 마네. 새삼스런 깨달음. 내가 모든 축구를 재밌어하고 있는 건 아니었구나. 05. 불을 끌 때마다 후회하고, 눈을 뜰 때마다 후회한 것을 되풀이하는. 문제는, 시간. 의지. 용기. 그리고, 비겁함. 06. 어쨌든 내 육체를 먹여 살려야 하는 거잖아. 내 눈과 내 입을 즐겁게도 해주어야 하며, 내 마음도 다독여줘야 하니, 어쨌든 살아내는 수밖에 없어. 결론이 이렇게 났는데 뭘 망설이니.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