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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아주 오랜만에, 가위에 눌렸다. 웅크리고 자는 내 등 뒤에서, 그 여자가 촤락촤락 종이를 넘겼다. 방금까지 꿈에, 그 여자가 나왔다는 게 생각이 났다. 그리고 꿈은 순식간에 가위로 변했다. 나는, 무서워서 '엄마'라고 불렀다. 그러자 그 여자가'응'하고 대답했다. 나는 속으로, 네가 아니야! 라고 생각했지만 말은 입밖으로 나와주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엄마'라고 불렀고, 이렇게 잠들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하며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려고 끙끙대다가, 잠에서 깼다. 가위의 가장 무서운 점은, 깨어나기 힘들다는 것보다도 그렇게 어렵게 깼는데도 불구하고 금세 다시 잠들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축축 잠속으로 늘어지는 몸은 깨어나길 거부하고 그대로 다시 잠들려고 한다. 그 유혹을 이겨내고 겨우 일어나 앉은 나는, 방..
세 권의 책을, 동시에 읽고 있다. 예전엔 이런 것, 좋아하지 않았는데. 지금도 웬만하면 그리 하지 않긴 하지만 어쨌든 가끔은 그러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은, 과 와 를 동시에. 은 예전에도, 레위기를 읽다가 관두었던 적이 있다. 원래 레위기가 고비라고 말을 해준 것이 누구였더라. 너였나. 아니면, 언니였나. 어쨌든 일년도 전에 읽다 관둔 것이기에 이번에도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 창세기도 재미있고, 출애굽기도 재미있다. 아, 그렇지. 너는, 출애굽기가 재미나다고 말을 했지. 하지만 난 창세기도 좋아한다. 하나의 왕국이 시작되는 이야기. 역사의 시작을 읽는 것이니, 재미없지 않을 리가 없다. 는 세 권의 책 중 가장 재미없는 책이다. 어쨌든 내 취향으로는 그렇다. 그래도 가장 많이 읽어둔 책이기도 하다. ..
[풍속화 속의 고독의 날들 속에서 내가 자주 힘겹게 떠올린 건 도시로 나오던 그 날 밤, 외사촌이 보여준 사진집 속의, 아득한 밤하늘 아래, 별을 향해 높고 아름답게 잠든 새들이었다. 나, 그들을 내 눈으로 보러 갈 날이 있을 것임을 힘겹게 나에게 기약하며 그 풍속화 속에서의 나날들을 살아내곤 했다. 훗날, 살아가는 피로와 관계의 부재 속에 처절하게 외로워졌을 때도, 그날 밤 외사촌이 들고 있던 화보 속의 새들, 백로들. 숲속에, 밤이 온 숲속에, 마치 세상의 모든 일들을 다 용서한 듯, 서로 올망졸망 기대어 숲을 아름다이 잠으로 뒤덮고 있던 백로들의 무리를 내 눈으로 버라 가겠다는 마음 버리지 않았다. 나, 언젠가, 기차의 창틀에 팔을 흔들리며, 눈앞을 가로막는 능선을 넘어서 가리라고, 절망과 고독의 ..
눈 내리는 대전의 거리. 청춘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긴 거리.
예전엔, 나가수를 보면 늘 이소라가 1위 같았다. 1위를 할 거라고 생각한 게 아니라, 내 귀에는 그냥 이소라가 부른 노래가 제일 좋았다는 말이다. 그러다 이소라가 탈락한 후, 한동안 나가수에 관심이 없었는데. 최근 들어 다시 나가수에 관심을 가진 건 우연히 보게 된 바비킴의 무대 때문이었다. 나는, 바비킴이 그렇게 좋은 목소리를 가진 가수인지 얘전에는 몰랐다. 오래 전부터, 언니가 늘 바비킴이 좋다고 말했는데. 그때도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나가수에서 우연히 바비의 무대를 보고, 잠깐 걸음을 멈추고 텔레비전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후론 오늘은 바비킴이 어떻게 노래를 했으려나, 하는 마음 때문에 나가수를 다시 보기 시작했는데. 결국, 한동안 하위권을 맴돌다가 탈락해 버렸네. 다들 취향이란 게..
또 그럭저럭, 한 해를 보냈구나. 인생의 다음 장, 같은 것을 생각했지만 사실 그냥 게으른 한 해였다. 누군가를 보내고, 누군가와 헤어지고, 누군가를 버리고, 그렇게 내 자리로 돌아와 앉은 삶. 그래도, 올 한 해도, 포기하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내년은 더 부지런하게 살아보자.
토니 모리슨 - 빌러비드 존 치버 - 기괴한 라디오 게일 포먼 - 네가 있어준다면 서명숙 - 제주 걷기 여행 유은실 - 마지막 이벤트 폴 하딩 - 팅커스 베르나르 베르베르 -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니코스 카잔차키스 - 스페인 기행 전성희 - 거짓말 학교 레이철 커스크 -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파울로 코엘류 - 연금술사 스콧 니어링 - 스콧 니어링 자서전 마릴린 로빈슨 - 길리아드 주노 디아스 - 드라운 유시민 - 유시민과 함께 하는 프랑스 문화 이야기 존 치버 - 돼지가 우물에 빠졌던 날 조문채, 이혜수 - 100%엔젤 염상섭 - 삼대 리처드 매드슨 - 나는 전설이다 강풀 - 그대를 사랑합니다(1~3) 레이프 라슨 - 스피벳 앨리스 스타인바흐 - 한 달에 한 번씩 지구 위를..
네가 좋은 사람이건 아니건, 불쌍히 여겨서 그런 것이건 어쨌건, 진심 같은 거 알고 있건 모르고 있건, 어쨌든 난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 아프다고! 아프다고, 진짜. 그래서 고개를 무릎에 처박고 조금 울었다. 혼자서 우는 건 청승맞은 거지만, 그래도 나한테 울 자유 정도는 있는 거 아닌가. 하필 나오는 노래도 Radiohead의 creep이야. 여러모로 울기 적절한 날이다.
01. 를, 이렇게 한 번도 안 웃으며 들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봉도사 깔때기도 여전하고, 그런 봉도사를 투닥투닥 구박하는 우리 기자님도 여전하고, '쫄지마, 씨바!'하고 외치는 김총수도 여전한데, 그런데 어쩐지 통 웃음이 나지 않는다. 뭐, 정치적인 의도니 어떠니 그런 것 다 떠나서. 정봉주를 구속시킨 것이 실수니 어쩌니 하는 것도 다 떠나서. 그냥, 한 사람으로서 정말로 감옥엔 가기 싫었을 거 아니냐는 말이다. 진실을 가둘 수 없다, 나는 안에서 싸우겠다, 뭐 그리 말을 해도 봉도사는 정말 감옥에 가기 싫었을 거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가는 거고. 그러니까 난 좀 슬프다. 이 추운 날, 나이 오십도 넘은 그 남자를 꼭 감옥에 쳐넣어야만 속이 풀리는 한심한 인간들 때문에, 결국 난 좀 슬퍼지고 말..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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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마음이 조금 그랬다. 늘, 가장 위태로운 자리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힘들지 않은 시간이 되기를. 진실이 밝혀지고, 그리하여 반드시, 좋아하시는 일이라고 하니까,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정치를 하실 수 있기를. 다같이 잊어버리지 않을 테니, 주기자님도, 힘내요. 힙냅시다.
"천재란 2,000번을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며, 창의성은 2,000번을 실패한 뒤에 얻을 수 있는 빛과 같은 것이다." 창의성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박경철이 인용한 광고인 박웅현 씨의 이야기이다. 워낙 여기저기서 올해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렸기에, 읽어봐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다지 큰 기대는 없었다. 하긴 뭐, 나 와 같은 책은 거의 베스트셀러 1,2위를 독점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조차 안 했으니 이 정도면 처음부터 호감을 가진 편에 속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박경철의 책은 늘 읽어봐야지 하면서 미뤄두기만 하고 있다가 어제 저녁 처음으로 손에 들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절반을 읽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다시..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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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나는, 그럭저럭 빈둥거리며 살고 있지만, 엄마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걸 생각하면, 그래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나는 결국은, 나보다 엄마를 더 우선시하지는 못하겠지? 말로는 늘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하면서도 실은 나의 이런 빈둥거릴 수 있는 여유가 더 소중한 거겠지? 결국은 나도 나쁜 딸이다. 어쩌면 나야말로 가장 나쁜 딸.
한 글자, 한 글자, 아껴서 읽게 되는 글이 있다. 그런 글이 있다는 걸 아는 건 분명히 행운인 것 같다. 신경숙은 이 글들을 청탁을 받아서가 아니라 자기가 쓰고 싶을 때 썼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에 수록된 단편들은 신경숙의 초창기 글들과 비슷한 냄새가 난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작품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가 지금 풀밭에서'가 가장 좋았고, '세상 끝의 신발'은 왠지 모르게 '겨울우화'를 생각나게 해서 기분이 묘했다. 신경숙의 글속에 숨어있는 수많은 비유와 상징들을 보고 있노라면, 역시 어떤 재능은 태어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올해가 가기 전에, 신경숙의 새 글들을 읽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나는, 책머리에 부자되세요- 라는 인사 대신 꿈을 이루세요- 라고 써넣을 줄 아..
거짓말처럼 12월 9일이었고,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니 거짓말처럼, 눈이 내렸지. 어쨌든 첫눈이잖아. 처음 눈이 내린 게 언제였든, 내가 처음 눈을 본 것은 어제 아침이니까. 그러니까 승주 말대로 올해의 첫눈이야. 축복의 의미가 맞다고 믿을래. 반가워. 첫 눈. 그러니까 난 파리에 가야겠어. 이건 그냥 여행을 가고 싶다는 게 아니야. 마드리드에 가고 싶다거나 아니면 더블린, 아니면 암스테르담, 이스탄불이나 런던, 뭐 그런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게 아니라 나는 파리에 가야겠어. 파리에 가서 오랑주리 미술관에 가서 하루종일 놀아야지. 나는 아직 답을 모르지만. 결과가 없다면, 과정은 왜 중요하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르고 있지만. 어쨌든, 누구도 수고했다고 말해주지 않는 나를 향해 나만은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