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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죽는 일이 무서운 것 보니, 아직 죽을 때가 아닌가보다. 죽을 게 아니라면, 열심히 사는 게 낫겠다.
조용하고 로맨틱한, 서재 같은 집으로 보이겠지만. 실은, 어둡고 박쥐가 나오는, 구석에 혼자 웅크린 채 울고 있는 어린아이의 집.
잃어버린 후에는 언제나, 곧 되찾을 수 있겠지 생각을 했다. 딱 한 가지만은 잃어버리자마자, 다시는 되찾을 수 없겠구나, 하고 깨달았다. 지치지도 않고 잠을 자면서, 뭔가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때는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두어 달 전, 롯데가 한창 정규리그에서 2위를 달리고 있던 때이다. 내친 김에 1위까지 넘보며 하루하루 승차 계산에 바쁜 나를 보고, 이제 갓 야구를 보기 시작한 열세 살짜리 조카가 말했다. “우승하려면 2위로 올라가는 게 더 유리하대. 3위나 4위로 올라가면 경기를 너무 많이 해서 지치고, 1위로 올라가면 너무 오래 쉬어서 경기감이 떨어진다던데? ” 이론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냥 고개를 끄덕여 주어도 좋았을 테지만. 그러기엔 지난해의 기억이 너무 또렷해서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우린 지난해에 2위로 올라갔지만, 한국시리즈 못 갔잖아.” 그리고 그런 건 다 못 믿을 거라는 듯 대답하자, 조카는 잠시 당황하는 듯했다. 자신이 옳다고 믿은 것을 그렇게 단숨에 일축해버릴 줄은 예상 못한 모양..
첫 번째 시즌이 끝난 겨울엔, 축구가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마냥 지루하기만 했다. 오프 시즌의 지루함을 레알 마드리드나 아스날의 경기들로 달래보려 했지만, 그조차도 마땅치가 않았다. 도무지 허전한 마음이 채워지지 않아서 툭하면 함께 축구장을 다니던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었다. 그때 내가 보고 싶어한 것은, 지난 시즌 고작 1승을 거두며 최하위를 차지한 데다 열악한 자금 사정 때문에 결국 해체설까지 나돌던 팀이었다. 그런데도 그 팀의 축구가 그리워서 나는 그 해 겨울 내내 몸살을 앓았다. 그러니 봄이 돌아왔을 땐, 당연하게 축구장으로 달려갔다. 2003년, 대전 시티즌의 개막전 상대는 지난 시즌 2년 연속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데 성공한 성남 일화였다. 지금이야 리그의 최강팀이라 하면, 전북 현대나 FC..
모네의 그림을 보면, 마음이 잔잔해진다. 딱히, 좋아한다, 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모네의 그림은, 좋다. 최고의 작품은 물론, 이지만. 꼭 그 작품이 아니더라도, 정물화는 별로 감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도, 너무 예뻐서 감탄사를 터트리게 했던, . . . 파리에 가고 싶구나.
다행히도, 롯데 자이언츠를, 대전 시티즌 만큼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만약, 롯데를 대전 만큼이나 좋아했다면, 나는 너무 슬퍼서 견디기 힘들었겠지. 처음부터, 두산은 무섭지 않았지만 SK는 조금 무서웠어. 오히려 삼성이라면 헛된 꿈이라도 꾸었겠지만, 나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언제나 SK라서. 그래서 꿈꾸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 바보들이, 고작 선발 투수 2명 데리고, 어떻게 어떻게 플레이오프 5차전까지 끌고 가서. 어쩌면 이번엔, 하늘이 우리편을 들어주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살짝, 또 다시,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그래, 그건 뭐, 다 내 잘못이지만. 그냥, 너무 허탈한 건, 그렇게, 그런 식으로 지지는 않았어야 했는데. 므찌나, 일년 동안 참 고생 많았어. 지난해만 해도 그렇게 잘하는데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않다면, 그 또한 내 잘못이다.
150km로 날아오던 공이, 눈자위를 맞추고 떨어졌다. 강골로 소문난 강민호가 충격에 그라운드로 나뒹굴었을 때, 나는 져도 좋으니 강민호가 괜찮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가장 힘든 자리. 가장 위험한 자리. 그런데도 늘 밝은 얼굴로 그 자리에 있어줘서 고마워. 너 없이도 이겼다는 것이, 네가 없어도 된다는 걸 뜻하는 건 아니란다. 네 어깨가 조금 더 가벼워지고, 네 미안함이 조금은 덜어졌기를 바라며. 어서 돌아와라. 그리고 우리 같이 한국시리즈 가자. *) 사진은, SADAD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news.kyobobook.co.kr/comma/openColumnView.ink?sntn_id=5890 어릴 땐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았다. 집에는 남자 형제도 없었다. 정확하게는 남자 형제가 있긴 하지만 열 살이나 어린 남동생이기 때문에 학창 시절의 나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결국 여자만 다섯인 집에서 자라면서 어떻게 축구를 좋아하게 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처음에는 축구가 무척 재미없어 보였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으로나마 처음 축구를 본 것은 할머니 집에 갔다가 삼촌에게 TV 채널권을 빼앗긴 이유였다. 삼촌 곁에 앉아서, 한참을 뛰어도 고작해야 두세 골 밖에 들어가지 않는 걸 무슨 재미로 보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그 경기를 끝까지 지켜본 것은 시골에 있는 ..
지난 9월 2일, 사직 구장에서는 롯데와 LG의 시즌 열일곱 번째 경기가 펼쳐졌다. 1회 말, 손아섭의 활약으로 일찌감치 승기를 잡은 롯데는 5회 말, 전준우와 홍성흔의 연이은 홈런으로 점수 차를 더 크게 벌렸다. 그리고 6대 0으로 앞서가던 7회 말, 갑자기 사직 구장의 관중석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들뜬 그 분위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운동장을 바라보면, 그 날 컨디션 문제로 선발 출전하지 않았던 강민호가 타석으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강민호라 하면 시즌 내내 체력 소모가 커서 팀에서도, 팬들 입장에서도 가장 걱정을 많이 하는 선수였다. 그런 선수를 기껏 한 경기 쉬게 해주었다가, 6대 0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대타자로 투입한다는 것은 팬 서비스 차원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양승호 감독의 그러..
01. 김연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김연수를 한 번 밖에 안 읽었다. 나쁘진 않았지만 좋지도 않았다. 그래서 김연수에 대한 추천을 볼 때마다, 잠깐 고민을 한다. 내가 김연수를 못 알아본 걸까. 김연수가 내 타입이 아닌 걸까. 02. 읽고 싶은 책보다, 읽어야 할 책들을 읽고 있는 요즘이다. 오랜만에 책장에, 읽지 않은 책들이 쌓이고 있다. 추석에 언니를 만나기 전에, 생일 선물로 받았던 로맹 가리를 읽어야 하는데. 그보다도 천명관의 를 읽고 싶었는데. 요즘은 무엇보다 를 읽고 싶은데. 정작 손에 잡은 건 . 다음을 기다리고 있는 건 . 책마저 좋아하는 것을 읽을 수 없다니, 슬픈 날들이다. 03. "너희가, 어떤 책을 읽느냐, 어떤 친구들을 만나느냐, 그리고 또 앞으로 어떤 사람들과 가까이 ..
장현규라는 선수가 있었다. 2004년 봄, 갓 대학을 졸업한 후 대전 시티즌에 입단한 선수였다. 처음에는 누구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지만, 데뷔 후 채 반 년이 지나기도 전에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된 선수였다. 언제나 가난하여 쉬이 좋은 신인선수를 가지지 못했던 우리는 갑자기 나타난, 젊고 튼튼하고 부지런한 이 선수의 플레이에 자주 감탄했다. 그때 장현규는 우리들에게 희망찬 미래를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다른 팀의 팬들은 장현규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우리가 아무리 입을 모아 이 선수를 칭찬해도, 그런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고, 그래 봤자 꼴찌 팀의 수비수 아니냐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반응들을 마주쳐도 서운하거나 억울하진 않았다. 그때는 장현규가 우리 팀에 있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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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안 된다는 거 아는데, 또 다시 이게 다 뭐라고, 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번에도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어졌다. 늘 괜찮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은 우리 모두가 보이는 것과는 다른 마음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장현규라는 선수가 있었다.
이렇게, 온 우주가 외로워진 것은, 너 때문이 아닌가- 하고 하릴없이 생각을 해본다. 실은, 너에게 내가 소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걸 네가 믿지 못했기 때문에, 네가 나를 떠난 거라고, 나를 납득시키는 중이다. 네가, 행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삶이 비참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가만히 누워서, 이게 다 내가 선택한 길이라고 생각을 한다. 네가 사라진 순간, 삶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지만, 삶은 그러지 못하고 변해버렸다. 적어도. 일 년에 백 권씩은 책을 읽고, 한 달에 두 편씩은 글을 쓰고, 삼 년에 한 번씩은 비행기를 타자고 생각한다. 그렇게 산다고 해서 행복해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견딜 수 없이 불행해지는 건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끔, 너무나 철저하게 혼자라는 걸 깨닫는 때가 있다. 몰랐던 사실이 아닌데도 그 사실이 이렇게 가슴 깊이 와닿을 때면, 온 우주가 다 외롭게 느껴진다.
잊어버리고 있던 질문이 생각이 났다. 어떻게 너는 그렇게 다정하게 돌아설 수 있었을까. 아니, 어떻게 너는 나 없이도 살 생각을 했을까. 아니, 나는 어떻게 너 없이도 이렇게 태연할까. 실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관계가 끝난 다음에는 그 어떤 말도, 행동도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마음이 아프거나 상처를 받았거나 그래서 해결할 수 없는 감정들이 숱하게 남았다고 해도 그건 그냥 각자가 감당할 몫이라고. 나는 너를 감당하며 살아가기 싫어서 이렇게 태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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