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아무도 모른다/2011.01 ~ 2011.12 (101)
청춘
01. 꿈 속에서, 신발을 잃어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빨간색 신발이다. 어디 있나 싶어 한참을 찾았는데, 어떤 아저씨가 내 신발을 신고 갔다고 어떤 아주머니들께서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아저씨를 찾았다. 아저씨 발에는 내 신발이 신겨 있었다. "아저씨, 그 신발 제꺼예요. 얼른 주세요." 그래서 아저씨가 그 신발을 주었는지 아니 주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02. 어깨에 손을 두르는가 싶더니 나를 꼭 안아주었다. 나는 설레거나 기쁘다기보다도 왠지 슬펐다. 내 마음을 네가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네 마음을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03. 아침에 눈을 뜨니 빨간 쟈켓이 도착했다. 기온이 다시 내려간다고 하니까, 빨간 쟈켓을 입고 출근해야겠다.
어쨌든, 실제로는 괜찮지 않다 하더라도, 언젠가 괜찮아지기는 하겠지. 그렇다면 그냥, 괜찮은 척 하면서 버티는 것도 나쁘지 않아.
바람이 좋아서, 일분일초가 아깝다. 이 계절은 오래 가지 않겠지. 잠깐 잊고 돌아서 있으면 어느 새 끝나있겠지. 좋았던 시간도 그러지 않았니. 언젠가 끝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끝날 줄은 몰랐던 것처럼. 이 계절도 그러할 거야. 분명히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면 이 계절은 오지도 않았던 것처럼 저 멀리 가 버리고 없을 거야. 그러니 난 요즘, 일분일초가 아깝다. 일분일초도 너무 아깝다.
비겁하게,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온 주제에, 그래도 네가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어서, 네가 잘못한 일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생각해내려고 애쓰는 중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바보가 되는 것보다는 네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거다.
찬 바람이 분다. 그래서 두근두근. 찬 바람이 부는데도 설레지 않는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까? 난 죄다 꺼져버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을이 온 날, 너도 왔다.
봄/ 오규원 저기 저 담벽, 저기 저 라일락, 저기 저 별, 그리고 저기 저 우리 집 개똥 하나, 그래 모두 이리와 내 언어 속에 서라. 담벽은 내 언어의 담벽이 되고, 라일락은 내 언어의 꽃이 되고, 별은 반짝이고, 개똥은 내 언어의 뜰에서 굴러라. 내가 내 언어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너희들도 자유롭게 서고, 앉고, 반짝이고, 굴러라. 그래 봄이다. 봄은 자유롭다. 자 봐라, 꽃 피고 싶은 놈 꽃 피고, 잎 달고 반짝이고 싶은 놈은 반짝이고 아지랑이이고 싶은 놈은 아지랑이가 되었다. 봄이 자유가 아니라면 꽃 피는 지옥이라고 하자. 그래, 봄은 지옥이다. 이름이 지옥이라고 해서 필 꽃이 안 피고, 반짝일 게 안 반짝이던가. 내 말이 옳으면 자,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
거의 모든 것이 너 때문에 의미가 있었다, 라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그 많던 것들이 의미를 잃는다.
축구를 보다가 문득, 이게 다 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경기에서 이기면 뭘 하고 지면 또 뭘 한단 말인가. 간절한 마음은 사라졌고 그들의 승리가 나의 승리처럼 여겨지던 마음도 사라졌다. 그러니까 축구든 야구든, 그건 그냥 다 심심풀이로 하는 놀이일 뿐이라는 걸 이제 알겠다.
열네 살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더라. 네가 돌아간 다음에 나는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고민이 많았을 것이고, 슬펐을 것이고,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과 그리 다를 것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열네 살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도 나는 너를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하긴 우리가 같은 열네 살이라 해도 어떻게 내가 타인을, 또는 타인이 무슨 수로 나를, 100% 다 이해할 수 있겠냐마는. 예전엔 그런 생각을 했다. 모든 아이들이 다 살갑게 군다 해도 이 아이만은 그러지 않을 거라고. 우리는 우스개소리로 설마, 그럴리가, 따위의 말들을 늘어놓았고 그러니까 나는 훨씬 더 쉽게 마지막을 생각했다. 하지만 문자 한 통에 매번 나를 만나러 문을 열고 들어오는 너를..
중국에서 들어와 며칠 우리집에 묵고 있던 큰 언니가, 가만히 내 책장을 보고 있더니, 갑자기 "저렇게 많은 책을 다 읽었어?" 하고 묻는다. 그리 많은 책도 아니지만, 어쨌든 새삼스러운 질문이라 대답도 않고 쳐다 보았더니, "저렇게 많은 게 머리속에 있다니, 네 머리속은 참 복잡하겠다." 라는 것이 이어지는 언니의 말이다. 큰언니는, 작은언니가 사회성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책속에만 빠져 살아서라고 생각한다. 나는 큰언니가 다독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올해 들어서야 처음 알았다. 사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런 사람들조차도 독서는 권장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독서가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그것이 삶을 좋지 않은 방향으로 끌고 갈..
많은 생각들을 했다. 기대한 만큼 걱정하거나 염려했다. 하지만 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는 것이 진실에 가장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소름끼치게 무섭다는 것을 네가 이해할 수 있을까? 가끔은 이렇게 잘 살고 있는 내가 이상하다. 이제와서는 조금도 구차하게 굴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한때는 너의 마음을 믿었고 그러니까 내가 어디로 숨더라도 너는 나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을 그냥 웃어넘긴다. 누가 먼저 돌아서고 누가 버리고 누가 믿음을 저버리느냐 하는 것이 실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겠다. 그저 나는 가끔씩 내 마음이 안쓰럽다. 네가 몰라준다면 아무도 알 수 없는 마음. 그리고 아무도 알지 못한다면 그런 마음이 있었다는 건 어떻게 기..
01. 꼴찌를 해도 최선을 다하면 폼난다.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도 멋있다. 하지만 어쨌든 벼락치기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최선을 다해도 벼락치기는 벼락치기일 뿐이다. 무한도전 조정 특집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 02. 좋아하는 햇님달님.
누군가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또 누군가는 그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 내 생각이 틀릴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김형일이나 고창현도 좋아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무작정 믿었던 이름들이 또 따로 있었다. 그리고 그 이름들에 대해서는 늘 너그럽게 굴었고, 또 언젠가는 꼭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다. 그래서 슬펐던 것이다. 하필이면 그 이름이 거기에 있어서. 차라리 이런저런 다른 이름들이었다면 조금 놀라고 말았을 텐데. 하필이면 그 이름이 그곳에 있어서, 나는 슬펐고, 한동안은 내가 뭔가를 잘못 안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국가대표급이었으며, 자주 팀을 옮겼고, 현재는 중국에 진출해 있는 모선수'라는 설명을 보았을 때 나는 단박에 권집을 떠올렸다. 잔디 위에 ..
고민지가 한 게임에 볼넷 여섯 개를 던지자, 이에 지지 않겠다는 듯 장민지는 일곱 개를 던지네. 쌍민지가 아주 난리가 났다. 잘 하자는 내 응원은 어디로 들은 거니? 원래 에이스란 연승은 이어가고 연패를 끊어주는 존재인 건데, 어쩌자고 우리 에이스는 연승을 툭 잘라먹는지. 그래, 실은 난 오늘 장민지가 폭탄을 껴안을 줄 알고는 있었다. 그렇다해도 그렇게 주구장창 볼만 던져댈 줄은 차마 몰랐지. 미친 듯 폭발하던 타선도 침묵을 지키고, 그렇게 드디어 연승이 끝났다. 그래서 이제 안 불안하냐고? 안 불안하긴! 삼성한테 스윕 당할까봐 불안해 죽겠다. 또 5위로 떨어질까봐 어제보다 더 불안해졌다! 스포츠 팬으로 산다는 건 이렇게 늘 불안한 일이었다. 그런데 난 왜 평생을 스포츠를 보면서 살고 있는 걸까.
6연승이다. 지금부터 투수들은 폭탄 게임을 하는 것이다. 누가 이 연승을 끊을까. 이 연승은 언제, 어디서 끝이 날까? 그러니까 연승이라는 것이 이렇게 불안한 거였구나. 언젠가는 분명히 진다. 그런데 그게 내일일까? 아니면 그 다음날? 나는 계속 이기면 마냥 좋기만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게 아니었어. 연승은 불안한 거다. 더욱이, 투수를 좋아하는 야구팬에게는 말이다. 오늘도 아섭인 정말 잘했다.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완벽한 손아섭. 뭘 해도 아섭이가 있으면 믿음이 간다. 이런 애가 우리 새끼라니, 우쭈쭈 해야 하는데. 정작 우쭈쭈는 딴 애한테 하게 되지. 원래 그런 거다. 마냥 믿음이 가는 애는 입이 닳도록 칭찬은 해도 마음이 쓰이지는 않는다.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건 준우. 비록 오늘 ..
보고 또 봐도, 청이의 만루포는 소름 돋는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청이 조금 아껴요. 사실 전혀 기대 안 했는데 그 순간에 만루 홈런 날려줘서 어찌나 고맙던지. 두 팔 번쩍 들 때에, 난 청이 등에 날개 돋는 줄 알았지 뭐니. 수고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청아. 물론 난 네가 조금만 더 빨리 만루포를 날려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한다만, 그게 어디 네 탓이겠니. 한 경기에 볼넷을 여섯 개나 내주면서 이닝마다 타자들 모아놓고 사람 한숨 나오게 만든 고퐁퐁 탓이지. 그러니까 고원준. 투수가 일단 공을 잘 던져야 귀여운 것도 귀여운 거고 이쁜 것도 이쁜 거지. 공을 그딴 식으로 던지는데 무슨 수로 귀엽고 무슨 수로 이쁘겠어. 가능성이 있어 보이니 마음에 들어한 거지, 귀염성 있게 생겼다고 좋았던 ..
나 없이는 못 산다고 해놓고, 거짓말쟁이 같으니.
01. 드디어 4위구나. 치고 치고 또 치니 4위를 하네. 어떻게 어떻게 4위까지 왔다. 다음주엔 더 잘하자. 02. 그나저나, 우리 풍기, 아픈 건 괜찮겠지? 삼진-삼진-삼진에 겨우 볼넷 하나로 출루해도 나는 풍기가 좋다. 그러니까 아프지 말아야지. 강민호는 우리의 보물 아니니. 문리바 얼굴도 괜찮은 거겠지? 나흘 연이어 등판한 사유리와 천사님 모두 수고하셨어요. (나는 사유리, 그래도 존대 써도 되는 연배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나 언제 이렇게 늙은 걸까.) 투런 날린 준우, 탑 닮은 아섭이, 니네가 오늘은 진정한 MVP. 요즘 아주 정이 가는 청이. 그리고 되살아난 우리 돼지도, 다 너무 예쁘다. 03. 화요일엔 민지가 나오겠지? 아아아. 경기 보고 싶을 거야. 장민지 9승했으니 고민지도 5승 하..
내일은 비가 올 거야. 난 사실은 탄천에 가기 싫어. 일 끝나면 집에 와서 무한도전이나 봤으면 좋겠어. 그런데도 나는 탄천에 가게 될 거야. 습관인지, 의무감인지, 그건 잘 모르겠어. 그냥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나는 생각대로 움직이겠지. 회사에서 탄천으로 가려면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야 하고, 탄천에서 집으로 오려면 지하철을 네 번이나 갈아타야 해. 아무리 편한 신발을 신고 나가도 난 녹초가 되어서 돌아오겠지. 생각만 해도 귀찮고 피곤해. 난 이제 축구 같은 것, 별로 재밌지도 않은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난 내일 탄천에 가게 될 거야. 그러니까 샤프, 내일도 내 앞에서 골을 넣어줘. 있잖아. K리그에서 100골 50도움을 달성한 사람은 딱 한 명뿐이래. 그러니까 샤프가 100골 50도움을 달성하면,..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