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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술이 약해지면서 좋아진 점이 있다. 술을 조금만 마셔도 적당히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적당히 취해서 돌아오는 날이면 나는 꼭 술마신 티를 낸다. 친구야- 큰 소리로 불러 털썩 친구의 침대에 드러눕고, 앉아서 뭔가를 적고 있는 녀석의 흰 어깨와 팔뚝살을 깨물어 잇자국을 내고, 그래서 매운 손으로 두어대를 맞고 구박을 들어도 꿋꿋하게 옆에 앉아 종알거린다. 있잖아, 나 오늘 종알종알. 있잖아, 내가 여태 그랬거든 종알종알. 있잖아, 나 요즘 너무 괴로워.종알종알. 이런 것은 적당히 취하지 않으면 우스운 말이 된다. 친구야 나 있잖아. 요즘 너무 힘들어. 친구야 나는 요즘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 친구야 나는 요즘 아무것도 뜻대로 되지 않아. 나도 모르겠고 이것도 모르겠고 저것도 모르겠고 다 모르겠어. ..
내 글은 간결하지 못하고, 주제를 가지고 있지 못하며, 자주 방향을 잃고, 지나치게 감성적이다. 이러한 것들을 알고 있지만, 나에게는 수정이나 발전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다. A.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것이다. 이 이유는 당신이 나와 닮은 탓도 아니고, 내가 당신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도 아니다. 숱한 많은 조건들이 효과를 발휘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나를 기회주의자라고 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은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 그런데도 마치 나는 죄인처럼 한 마디를 하는 데도 자유롭지 못하다. 숨겨야 할 것과 드러내야 할 것은 대상만 다를 뿐 정확하게 일치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당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것일까. 나는, 현실이 되어주지 않는 막연한 미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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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좋아한다, 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당분간 너를 욕해도 참아. 백번을 다시 택하라고 해도 나는 너의 편. 그러니까 당분간만 부당해도 참아. 어차피 이것은 또 내가 지는 게임. 늘 내게 최악의 기억을 주는 것은 너지만, 늘 나는 다른 선택 같은 건 생각조차 안 하니까- 조금만 시간을 줘. 이 현실을 인정할 시간. 조금만 더 시간을 줘. 내 머리가 받아들인 것을 내 가슴도 받아들일 시간. 니쪽에서 괜찮아진 거라면 나도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는 걸 알아. 그러니까 조금만 더, 내게도 시간을 줘.
‘감정은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은 그냥 생겨나고 모든 검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무심코 눈이 훑어 내리던 페이지에 가슴팍을 탁- 쳐 내리는 구절이 있어 다시 한번 읽어본다. ‘어떤 행동이나 한번 내뱉은 말에 대해선 자책할 수 있지만 감정에 대해선 그럴 수 없으니 우리는 감정에 대해 아무런 힘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좀 더 제대로 이해해내기 위해 다시 한번 읽어본다. ‘감정에 대해선 그럴 수 없으니 우리는 감정에 대해 아무런 힘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엔 그 진실을 깨닫기 위해서 한 번 더 읽어본다. ‘감정에 대해선 그럴 수 없으니 우.리.는.감.정.에.대.해.아.무.런.힘.도.행.사.할.수.없.기.때.문.이.다.’ 예를 들면 그런 것이다. 나의 괴로움은, 내가 나 스스로가..
세상에는 도저히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을 내가 싫어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니까 난, 누군가를 싫어하면서 마음 불편해하고 미안해하고 내 마음의 편협함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무관심할 수 있지만, 끊임없이 내 곁에서 도저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으로 떠들어대는 사람의 경우에는 싫어하는 것이 맞다. 그 사람이 날 좋아하든 말든, 또는 그 사람도 날 싫어하든 말든 그런 것과는 무관하게 말이다. 모든 사람이 날 좋아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는 날 싫어하는 것이 맞다. 마찬가지로 나도 몇몇 사람을 좋아하고, 몇몇 사람을 싫어한다.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 아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서 침묵한다. 나는 적당한 수준의 위선과 가식을 떨 수는 있..
잔디 위의 너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이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년 전, 니가 달고 뛰었던 그 번호는 내가 좋아하지도 않았고 너에게 어울리지도 않았던 22번. 다가가며 보아도 너는 지금 22번을 달고 있다. 웬일인 걸까, 니가 맞는 걸까, 고개를 갸웃하면 바람이 불어 휙- 하고 날리는 곱슬곱슬한 머리카락. 그 머리카락은 아직도 눈에 익다. 팔을 곧게 뻗고 돌아서서 걷는 걸음걸이도 그렇다. 니가 맞구나, 확인을 하면 입가로 슬쩍 웃음이 번진다. 오랜만이다. 너를 만나러 온 것은 참 오랜만. 적당히 붙은 근육 때문에 너는 이제 예전처럼 커보이지 않는다. 많이 변했죠? 많이 좋아졌죠? 나보다 더 오랜만에 너를 보는 지인은, 예전같은 호리호리함을 찾아볼 수 없는 너 때문에 놀라고만다. 5월의 햇볕은 따..
함께 사는 동안, 가장 맛없는 음식을 만들었던 건 H였다. H는 우리들 사이에서 게으르기로 유명했다. 때문에 청소나 설거지, 빨래 같은 것들에 무감했고 나는 종종 그런 H에게 잔소리를 퍼부어야 했다. 발을 씻지 않고 침대에 올라가지 말라거나 양말과 수건을 같이 세탁기에 돌리지 말라거나 속옷은 제때 제때 빨아 입으라거나.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듣는 것이 싫을 법도 했건만, H는 한번도 내게 화를 내거나 기분 나빠한 적이 없었다. 늘 인상을 쓰고 소리를 지르는 것은 나. 그리고 H는 그런 내게 언제나 웃으면서 말했다. 귀찮아. 하기 싫어. 쉬고 싶어. 중국에서 잠깐 귀국해 들어왔을 때, H는 내년에 결혼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 때 우리 나이 고작 스물 여섯이었다. 만나는 남자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난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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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리자 비가 내리고 있다. 덕분에 공기가 한껏 차가운 채이다. 기습적으로 내 맨팔에 와닿는 것은 한기. 팔에서 오도독 소름이 돋는다. 추워서 걸음을 빨리 해보지만, 곧 앞을 가로막는 것은 붉은 불의 신호등이다. 역시 세상은,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무조건 걸어가도 되는 곳이 아니다. 나는 가끔, 이 세상과 타협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들고 있던 우산을 뱅뱅 돌린다. 예쁜 분홍색 레이스가 머리 위로 촤라락 움직이고 있다. 나는 기분이 좋다. 즐겁다. 행복하다. 내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들의 노력에 의해서 행복해지는 일은 절반의 허전함을 안겨준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기분이 좋다. 즐겁다. 행복하다. 이것은 축구가 내게 주는 기쁨. 고통..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잘 참지 못한다. 상황과 장소, 그리고 상대방에 따라 태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잘 참지 못하고 참지도 않는다. 그래서 물론 나를 유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미움받는 일에 익숙하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싫어하지 않는 이상 누가 나를 싫어하든 말든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친구가 꼭 만나고 가라며 나를 데리고 간 곳에는 젊은 스님이 한 분 계셨다. 생년월일시를 묻고 이름을 물으시더니 다짜고짜 내게 "본인은 예의가 바른 편인가?" 라고 물으셨다. 나는 잠깐 웃음을 짓다가 "네."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신 스님은 "예의없는 사람을 아주 싫어하네. 무식한 사람도 못 참아하고...
술을 마신다. 처음 술을 마셨던 건 열 여섯살 때의 일이다. 아마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백일주 같은 걸 마셨던 모양이다. 잠깐, 몇 모금, 그렇게 마시다 말았으니 그때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진짜 술을 마셨다, 라고 기억되는 건 열 일곱살 때부터이다. 어울려다니던 무리를 갑자기 바꿔버린 후에 나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호프집을 들락거렸고 맥주와 소주를 번갈아 마셨으며 혼자 거리에서 구토를 하기도 했고 취기가 가라앉지 않아서 밤을 꼬박 샌 후에 아침도 먹지 못하고 등교를 하기도 했다. 술이 좋아서 마신 건 아니었다. 학교나 집을 겉돌며 말썽을 일으킨 것도 아니었다. 나는 모범생은 아니었을망정 선생들이 마음을 놓고 보는 우등생에 속하기는 했고, 착한 딸은 아니었을망정 걱정할 게 없는 바른 딸이긴 했다..
세상엔 특별히 하기 싫은 일이 몇가지 있다. 예를 들자면 요리하기. 전화받기. 누군가를 기다리기. 그리고, 누군가에게 구차한 부탁하기. 사는 일이 어려운 이유는, 이런 일이 특별히 하기 싫은데도 불구하고 반드시 해야만 할 때가 온다는 것이다. 요즘 나는 막 살아버린 대가를 좀 더 톡톡히 치루기 전에 요리를 해서 먹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고, 최소한의 인간관계라도 유지하기 위해 전화를 받아야만 하며, 예측하지 못한 약속시간에 늦는 친구들 때문에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고,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에게 구차한 부탁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는 일은 너무 어렵다.
몸을 웅크리고 침대에 눕는다. 달팽이가 되어 땅 속으로 기어들어갈 듯한 기분이 된다. 세상은 빙빙 돌아 내가 원의 중심이 되어버린다. 무섭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이러다가 언젠가 내가 아프게 될까봐 무섭다. 예전에 엄마는 아픈 나를 업고 병원으로 가다가 힘이 들다며 그냥 집으로 돌아가 버린 적이 있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도 좋았을 것이다. 엄마가 업고 병원까지 가기에는, 그때의 나는 너무 자라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그냥 나를 업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병원에 가지 못했고, 방에 이불을 베고 누워 장난을 치고 있는 두 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졸렸지만 방 안이 시끄러웠기 때문에 잠이 들 수 없었다. 엄마가 그런 언니들에게 짧은 야단을 쳤다. 나는 그 목소리에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결국,..
앉아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난 혹시 병이 든 게 아닐까. 사람들이 다 나 같을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걸 깨달으면 종종 놀란다. 내가 너를 좋아하면, 달라지는 게 있을까? 아니 근데 뭐 달라지자고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생각한다. 난 혹시 병이 든 게 아닐까. 아픈 여자인 건 괜찮지만, 미친 여자는 아니어야 할 텐데. 걱정이다.
꿈을 꾼 적이 있다. 내가 스무살을 넘겼을 때, 엄마는 처음으로 내게 너는 뭐가 하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고, 엄마는 내 대답에 그런 건 'S씨 같은 사람이나 하는 거야.' 라고 말했다. 나는 컴퓨터를 하다가 엄마를 돌아보았다. 엄마는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삶을 지속시키는 유일한 이유, 라고 믿었다. 혈육도, 가족도, 나의 엄마조차도 그 이유를 이해할 수는 없는 거라는 걸- 그때 알았다. 내가 타인을 믿었던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믿고 싶기 때문에 믿지 않았던 타인은 있었다. 나는 손을 잡았고, 팔짱을 꼈고, 입을 맞췄고,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외로워, 라고 말했을 때 그 사람은 외롭지 않게 같이 있어줄게, 라고 말했지만 살면서 나를 가장 외롭게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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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데 왜 말하지 않을까. 좋아하는데 왜 다가가지 못할까.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한다. Cool한 척 말한 것은 거짓말이다. 당신은 소극적인 사람이다. 당신은 분명히, 말하는 것도 다가가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내게 거짓말을 하지? 나는, 최소한, 당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온다. 거실 큰 창으로는 벌써부터 밝은 빛이 환하다. 맨정신으로 아침을 맞을 때면 매번 게으른 나를 탓하게 된다. 그렇지만 나는 반성이라는 것과 거리가 먼 사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 하루도, 내 마음도, 내가 아는 당신들도, 내 주위의 것은 모두 다. 나는 웃음이 많고 말이 많다. 나는 즐거운 사람이다. 나는 유쾌한 사람이다. 그런데 왜 자꾸 울까. 그런데 왜 ..
01. 나는 잠이 없다기 보다, 는 야행성이다. 그것도 새벽 서너시면 잠이 드는 것이 아니라 아침 여덟시나 아홉시, 때로는 열시, 열 한시에 자는 일도 흔한 지독한 야행성. 그래서 그런지 쟁쟁한 햇볕 아래서 돌아다니면 현기증이 난다. 뭔가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그럼 일찍 잠들고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의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아 겁이 난다. 내가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시도한 적은 있지만 성공한 적은 없었던 그런 식의 하루하루를, 내가 정말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아- 몰랐는데 난, 겁이 많다. 02. 그래 난, 겁이 많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잘 보이고 싶어진다. 그 사람이 날 좋아하지 않는 게 무섭기 때문이다. 그다지 많은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기 때문에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