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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01. 나의 마음 알고 있었니. 정말로 너만을 생각하며 지냈던 날들. 하지만 너에 대한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는 더욱 더 힘들어야만 했어. 불안에 떨어야만 했어. 이제는 내 자신이 지쳐서 너를 볼 자신이 없어. 그래 비겁하게 너에게 등을 보이고 도망가려하는 내 자신이 너무도 싫어. 하지만 나는 너무 늦게 알아버린 거야. 내가 너를 좋아한단 걸 알았을 때, 하지만 그땐 너무도 늦어버렸어. 모든 게 변해버렸어. 나는 너무도 초라했던 내가 너에게 말할 용기도 자신도 모두 잃어버렸어. 하지만 그냥 그게 좋았었지, 라고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어. 그게 그렇게 힘들 줄은 난 정말로 몰랐던 걸. 이제야 늦게나마 난 깨달았던 거야. 이 모든 게 너에겐 변명처럼 들리겠지. 하지만 내 사랑은 오직 하나 너뿐이었다는 걸..
01. 담백한 까르보나라. 얼음이 둥둥 떠있는 시원한 콜라 한 잔. 해가 갓 지고 있는 저녁의 풍경. 낮동안 이상고온에 시달린 세상을 적당히 식혀줄 부드러운 바람. 그리고, 싱긋- 웃음짓는 열 두살 소년. 내가, 내일 만나고 싶은 다섯 가지. 02. "유치하지만, 질투나요." "왜요?" "K에게 잘해주잖아요." "그게 왜 질투가 나죠?" "그거야, 내가 좋아하니까. K보다 날 더 좋아했으면 좋겠으니까. ...그걸, 몰라서 물어요?" 03. 솔직하게- 나도, 너도. 04. 티투스가 죽었다. 이제 등장할 것은 도미티아누스.
베스파시아누스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아우구스투스의 이야기가 다시 읽고 싶어진다. 내가 카이사르보다 아우구스투스를 더 좋아했던 것은, 과감한 결단성과 천재성보다도 더없는 침착함과 인내심과 균형감각을 지니는 일이 더 힘들고 고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살면서 내가 가져보지 못한 미덕이다. 나에게는 침착함도, 인내심도, 나를 제어할 수 있는 균형감각도 없다. 주완이의 손가락은 길고, 예쁘다. 그런 손가락을 보면 손을 뻗어 그 손을 만져보고 싶어진다. 문득- 곧 내가 손을 뻗어 누군가의 손을 건드리게 될 것 같아 겁이 났던 적이 있다. 그 손가락처럼, 주완이의 손가락도 길고 예쁘다. 그런 손을 붙잡고 있으면 어쩐지 마음이 좀 평화로워질 것 같다. 내일은 주완이가 오면, 악수를 청해봐야겠다.
선천적으로 내 혈관에는 조증과 우울증이 반반의 비율로 내포되어 있었을 것이다. 즐거운 나를 아는 당신도, 우울한 나를 아는 당신도, 나를 알고 있을 가능성은 있지만 나를 제대로 알고 있을 가능성은 없다. 이것은 Zero를 나타내는 수치다. 확신을 가지고 단언하건대, 나는 대부분의 인간을 경멸한다.
01. 내가 무슨 일을 할 때, 재빠르게 그 일을 습득하고 남들보다 뛰어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 나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모든 일에 있어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요리라거나, 자수라거나, 수학적인 지식이 필요한 문제라면 난 아마 어떻게 해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젬뱅이라고 생각하는 그 일들을 제외한다면, 난 내가 무슨 일이든 빨리 배우고 또 잘해나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은 사실이든 또는 그렇지 않든 나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든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는 남들이 다 저지르는 실수라거나, 그로 인해 남들 다 듣는 싫은 소리를 나 자신은 견딜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사소한 부주의와 가벼운 꾸지람에도 쉽게 지쳐버리는 나를 보면서 '왜 남들은 다 견딜 수 있는데 나는 견딜..
정규리그 첫패배. 어긋나는 약속. 낯선 도시에서 길을 몰라 고생하는 친구. 먼 원정길을 혼자 올라온다는 동생. 이렇게, 일요일이 간다.
내가 이기적이고, 내가 자기 중심적이며, 내가 이해심이 부족하고, 내가 신경질적이라는 사실을 가장 괴로워하는 것은 나이다. 나의 거짓말과 나의 이중성, 나의 나태함과 나의 편협함을 가장 속상해하는 것도 나이다. 이러지 말자고 생각하지만 자꾸만 나 때문에 괴로워진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자기 반성에 능한 사람이었던가.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나에 대해 냉정하고 엄격했던 거지? 어쩐지 속이 상하고 억울해져서 눈물이 난다. 불을 끄고, 노래를 크게 틀고, 아무렇게나 말려있는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간다. 자의식이 지나치면 과대망상과 피해의식과 자기 합리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럴 땐 잠이 들지 않으면 내가 나를 다스릴 수 없다. 잠이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온몸이 아플 만큼 깊은 잠에 빠진다. 노래 소리 때..
01. [나도 힘세요] [나도 저 책 다 읽었어요] 제 형을 칭찬하는 내게, 기분 나쁘다는 듯 이야기하는 승룡이 때문에 한참을 웃는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비빌 데를 알고, 자기 비빌 데를 빼앗기면 화를 내는 법. 대놓고 그리 이뻐했으니 당연한 건지도 모르지만, 이 조그만 녀석도 나를 자기가 충분히 비빌 수 있는 데라고 인식했다는 게 신기하고 우습다. 손바닥에 와닿는 짧은 머리카락의 감촉. 시간이 부드럽고 따뜻해진다. 이 녀석을 마주하고 있는 동안에는 어쩐지 삶이 평화로워지는 기분이다. 02. 상식적으로, 라는 말은 언제나 위험하다. 내 상식과 타인의 상식이 같을 가능성이란 지극히 낮기 때문이다. 03. 평화롭게 생각하고 싶다. 사랑도 평화롭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쓸모없는 것이라 해도 굳이 삶에서..
짧게 머리를 깎은 승룡이는 몰라보게 남자다워졌다. 처음 봤을 땐 너무나 이쁘장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이쁘다는 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얼굴이 되어버렸다. 그러고보니 쌍꺼플진 두 눈이 이뻐서 그렇지, 새까만 피부나 단단한 골격은 오히려 또래 아이들보다도 더 사내아이답다. 문제집에 열중하는 옆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새삼 놀래서 말을 건다. 승룡아, 너 너무 터프해. 승룡아, 너 너무 멋지다. 스물 다섯까지 몰랐던 사실이지만, 요즘은 자주 깨닫는 것이 나는 아이들을 참 좋아한다. 아기, 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냥 아이들을 좋아한다. 잘 생긴 녀석도 있고 그렇지 않은 녀석도 있고 똑똑한 녀석도 있고 그렇지 않은 녀석도 있고 말을 잘 듣는 녀석도 있고 그렇지 않은 녀석도 있지..
나는 내가 사랑에 빠졌다고 착각했다. 그런 착각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나에 대한 견딜 수 없는 혐오감이 밀려왔다.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그고, 입고 있던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는 찬 바닥에 웅크리고 누웠다. 12시간 전에 한 화장이 끈적끈적한 땀과 섞여 짜증스럽게 얼굴을 뒤덮었다. 어서 이 화장을 지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일어서 욕실로 가는 대신에 Arap strap의 노래를 틀어놓고 다시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갔다. 터무니없이 타인에게 짜증을 내고, 다음에 갚을 테니 용기를 좀 달라는 타인의 메시지를 무시한 후에, 나는 잠이 들기로 했다. 눈을 감으면서 오늘은 이대로 죽은 것처럼 잠이 들고- 깨어날 때는..
가만히 앉아서 노래를 듣는다. 나는 나 자신이 문화로부터, 예술로부터 멀어지는 일을 얼마나 두려워 했던가- 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것이 나를 얼마나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이마를 구겨뜨리면, 이것은 예민한 신경을 건드리는 기억. 내 마음에도 어쩌면, 치유되지 않는 질환처럼 열등감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자 희망하는 사람들이 싫다. 그들의 청승어린 눈빛과, 그들의 모난 자의식과, 편협함으로 똘똘 뭉친 인생관이 싫다. 나는 즐겁고, 가볍게 살다가 가고 싶다. 인생은 향유되어야 한다. 더 이상의 고민도, 진지함과 심각함으로 똘똘 뭉친 표정도, 자의식에 의해 무너진 어깨도, 자신의 세계에 틀어박혀 세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모난 태도도, 나는 그들을 가..
마당에 쪼그리고 앉았다가 심심해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놀랍게도, 하늘은 까맣지도 않았고 반짝이는 별 역시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쩐지 당황스러운 심정이 되어서 멍하니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우주에 나 혼자 앉아있는 것처럼 세상이 조용했다. 만약 당신이 내 친구라면- 만약 당신이 내게 좋은 사람이라면- 만약 당신이 나의 호의와 호감을 필요로 한다면- 만약 당신이 내 관심을 즐긴다면- 당신은 무조건 내게 친절해야 한다. 나는 다정다감한 사람에게 끌리지는 않지만, 최소한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 무조건적으로, 꽤 오랜 시간, 호의와 호감으로 대하고 있긴 하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단정을 내려 말하는 당신의 어투가 대부분의 타인을 기분 나쁘게 한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01. 오랜만에 극장엘 갔다.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심장이 뛰었다. 바람이 불고, 걸어가는 남녀 배우의 앞으로 운동장을 돌고 있는 아이들이 스쳐 지났다.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변형된 꿈이, 심장을 밟고 지나가, 나는 쓸쓸해졌다.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지만 사실, 그것은 내 꿈이 아니었다. 02. 더위가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후덥지근한 공기는 맨다리를 타고 올라, 꼼짝할 수 없게 휘휘 내 온 몸을 감쌌다. 더위를 피해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에어컨 바람이 너무 추웠고, 추위를 피해 밖으로 나오면 한낮의 더위가 너무 무거웠다. 어떻게 할 수도 없어서 일주일에 한번 쉬는 휴일이 지친 하루가 되고 말았다.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피곤에 절어있다는 생각. 03. 결국, 영화가 끝남..
1. 내가 C에게 가지는 호감은 살면서 정말 몇 번 가져보지 못한 '순수한' 호감 그 자체로써의 감정이며, 2. C가 나에게 가지는 호감 역시 정말이지 '순수한' 호감 그 자체로써의 감정이라는 걸 알겠다. 3. C는 나와 잘 어울리거나 그리하여 편해질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4. 분명히 좋은 사람이다. 5. 그리고 내가 이런 믿음을 가졌다면, 그 믿음이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7. 그런데 문득 궁금한 것은 내가 C에게 이런 드문 순수한 호감을 가지게 된 이유나 계기이다. 8. 나는 처음에 분명히 C에게 무관심했는데 9. 어느 날 C가 나를 '좋은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10. C는 시종일관 내게 친절하고 다정하고 예의바르게 굴었기 때문에 11. 나는 특별한 이유..
01. "요즘은 기분이 이상해." "어떻게?" "글쎄, 잘 모르겠어." "외로운 건가?" "그런가봐." "심심해?" "아니 바쁘니까 심심하진 않지만, 지겨워." 02. 나는 나를 기만하고, 나는 나를 오해한다. 화가 난다. 화가 난다. 이런 나에게, 그런 너에게 또한. 03.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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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타인이 타인을 위로할 수 있다는 건 거짓말이다. 어떤 타인도, 다른 타인을 완전하게 위로해줄 순 없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는 나에게 냉정하다고 얘기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들조차 사실은 타인에게서 진정한 위로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진지하고 진실되게 생각하자. 정말로 타인은 나의 삶을 위로할 수 있을까? 정말로 나는 타인의 삶을 위로할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을 구원해낼 수 있다는 건 오랜 시간 거슬러 내려온 환상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무런 말도 해줄 수 없는 아픔으로 외로워하는 나의 특별한 사람을 지켜보는 일이란- 분명히 쓸쓸하고 외로운 것이 된다. 02. 특별하다는 것, 이상의 말은 찾기 어렵다. 나는 내 감정이 진실에 다다르면 그 진실을 애둘러 말하진 않..
그냥 진심을 말하지 않는 나에게 화가 난 것 뿐이야. 그냥 시도조차 하지 않는 나에게 실망한 것 뿐이야. 그냥 투정만 하고 있는 나에게 지친 것 뿐이야. 매일, 매시간, 걸으면서,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생각을 하고 있어. 나는 이런 일을 하려고 태어난 게 아니야. 나는 이런 일을 하려고 사는 게 아니야. 그렇지만 대체, 내가 이렇게 평생을 살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지? 나는 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게을러도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지? 타인을 비웃는 만큼, 나는 나 스스로를 위해서 살아갈 줄 알아야 해. 그래 아무것도 아니지 너는. 내 곁에 있어도, 없어도, 어차피 마찬가지.
인간의 90%는 편협하기가 이를 데 없다. 웬만하면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만약에 당신 역시 편협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면, 웬만하면 나와 같은 방향으로 편협했으면 좋겠다. 인간들은 왜, 자기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지 않고서 사는 걸까. 게다가 멍청한 인간일수록 더욱, 자주 틀리는 인간일수록 더더욱. 참거나 포기하거나 인정하고 받아들이기엔, 확률이 너무 높다. 편협하고 멍청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만한 인간을 만날 확률은. 내가 칼로 찌르면 피가 나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싫다. 내 피가 붉은색이라는 사실도 싫다. 이런 걸 보면 아무래도 내 인생의 키워드는 '철부지 어린애'가 맞는 모양이다. 죽을 때까지 평생을, 이렇게 투정이나 부리며 살게 될지도 모른다.
01. [내가 작으니까 상대는 크면 좋잖아. 내가 A형이니까 상대는 O형이나 B형이면 좋잖아. 내가 말이 많으니까 상대는 말수가 적으면 좋잖아. 내가 어리광을 잘 부리니까 상대는 의젓하면 좋잖아. 너는 안 그래? 나는 나와 반대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이상형이란 게 없다고 주장하는 나의 구체적 이상형. 외모도 성격도 웬만하면 나와 닮지 않은 사람. 02. [왜, 근데 그 사람은 아닌 것 같애?] [글쎄. 나야 모르지. 근데... 아닐 가능성이 높을 거야.] [왜?] [뭐, 좋아할 리가 없잖아. 어디를 보나.] [흠- 내가 보기엔, 너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만 전부 다 내가 해야해야 한다고.] [...] [안 그러면 얼굴도 못 봐. 전부 다 내가 하는데, 나를 좋아하는 것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