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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01. 교양이 부족한 사람들은 천박하기 쉽고, 교양이 넘치는 사람들은 역겹기 쉽다. 중요한 것은 교양이 딱 적당할 만큼만 갖춰진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교양이 부족해도 천박하지 않고 교양이 넘쳐도 역겹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02. 그럭저럭 괜찮긴 하지만 그다지 대단할 것은 없는 위치와 지식과 배경이다. 당신이 가진 것은 그런 것이다. 그만큼을 가지지 못한 것은 죄도 아니고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대신 다른 것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따위 생각할 지혜가 당신에게는 없는 것이다. 그런 당신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좀 역겹다. 어쩐지 좀 화가 난다. 03. 9월 4일이다. 아니, 9월 4일이었다. 날짜는 이렇게 지나가는 중이다.
01. 어쩐지 마음이 좀 불안해졌다. 지하철이 들어오는데 술에 취한 아저씨는 자꾸만 노란 선 앞으로 발을 디뎠다. 뒤로 물러서 달라는 방송이 반복해서 흘러나왔지만, 비틀거리는 아저씨에겐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어쩐지 마음이 불안해져 멍하니 서서 그 모습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방송을 내보내는 남자의 목소리는 점점 더 다급하고, 점점 더 크고, 점점 더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지하철의 불빛이 보였다. 순간 그 아저씨를 낚아채 뒤로 물러서게 만든 것은 내 옆에 서있던 젊은 남자였다. 02. 내 앞에서 죽음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사실, 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내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 과는 또 다른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저 마음이 멍해져 앞을 보고 있었다. ..
01. 꾸준히. 꾸준히. 꾸준히. 진실되게. 솔직하게. 열정적으로. 02.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진심이라는 것. 그런 것이... 마음에 와닿지 않아. 03. 나도, 너도 부적응자. 잘 지내고 있니? 지내기는 괜찮니? 건강하니? 아직도 외롭니? 이제는, 괜찮아진 거야? 다시 사랑하고 싶지는 않아. 나는 그냥, 내 인생에서 없었던 사람처럼 니가 사라진 것이 조금 쓸쓸할 뿐이야. 04. 그래도, 그래, 사실은, 조금, 보고 싶다. 친구.
01. 다시 승리. 다시 기쁨. 즐거움은 이렇게 잊어버리지 않고 나를 찾아주니까, 그래도 살아있는 쪽이 아무래도 나은 선택. 2승 1무. 승점 7점. 현재 순위 공동 1위. 내일 하루쯤은 이 사실들로 하여 분명히 즐거울 것. 02. 승리와 같은 날 태어난 아기는, 역시 승리와 어울리는 이관우의 아기. 이 아기에게 바라는 것은 그저, 아빠만큼만 예쁘라는 것. 아빠만큼만 예쁘게 자라라는 것. 03. 정확히 하루에 커피는 세 잔씩만. 취침시간은 네 시 전에만. 이 두 가지만 지켜도 지금보다 18%쯤 건강해질 터. 04.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았던 적은 한번도 없었으므로, 나는 나름대로의 행운아. 불운하지 않다는 것은 끊임없이 기억해야 비로소 사실이 됨. 05. september의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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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를 껴안고 있으면서 생각한다. 따뜻하다. 평화롭다. 졸립다. 와닿는 몸이 너무 날카로워서 비쩍 마른 팔을 꼬집어본다. 사람 맞아? 살은 어쨌니? 물어오는 말에 그제까지 얌전하게 앉아있던 아이가 웃는다. 시원하다. 즐겁다. 웃음이 난다. 내 조카, 내 동생, 아니라면 아들이라도 좋다. 이 아이를 더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사람은 마음 만큼 자주 보지 못해서 결국 괴로움이 된다. 하여, 너도 결국 내게 괴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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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지는 해가, 파란 강물 위로 붉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저 멀리로 잠든 거북이의 등껍질같은 올림픽 주경기장이 보인다. 여섯시가 넘어서면 세상이 검붉고 검푸르다. 가만히 선 채로 유리창 너머의 세상을 바라본다. 나는 그리운 것이 있다. 그것의 정체는 언제나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그리워하고 있다. 이 그리움은 뇌세포 어딘가에 각인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의 난자 속에서 머물 때의 자세를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그 그리움도 버릴 수가 없다. 심장이 자꾸만 바람 소리를 낸다. 흔들린다. 이것은, 사는 내내 중심을 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함이다. 02. 누군가는 나를 좋아해준다. 누군가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나의 태도가 싫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내가, 그런 태도..
하드리아누스는 소년 마르쿠스를 좋아했다. 그리스 철학에 흠뻑 빠져있던 소년 마르쿠스에게, 마르쿠스의 성(姓)인 '베루스(진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를 이용하여 '베리시무스('베루스의 최상급으로 가장 진실한- 이라는 뜻)'라는 별명을 붙여준 것도 하드리아누스이다. 하드리아누스는 자신이 재구축하고 그리하여 어느 시대보다 튼튼하고 건강한 상태에 있는 로마를 소년 마르쿠스에게 넘겨주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마르쿠스는 너무 어렸다. 하여, 하드리아누스는 마르쿠스가 자라날 때까지 로마를 온전히 보존했다가 다시 마르쿠스의 손에 그 로마를 넘겨줄 중개인으로 안토니누스 피우스를 선택했다.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시대는, 후대의 역사가가 역사를 쓸 꺼리가 없다고 한탄할 만큼 평온한 시대였다.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죽..
01. 요즘은 계속 잠이 모자란 탓인지 출퇴근길에 늘 졸게 된다. 가는 데 30분, 오는 데 30분 합산 1시간이니까 그럭저럭 좋은 독서시간이 되어주었는데 그 시간에 졸게 되면서부터는 하루의 독서량이 거의 제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책을 많이 읽었던 적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하루에 고작 열장 정도 넘기고 만다면 너무 적은 양이다. 읽고 싶은 책이 많다. 그런데 읽고 있는 책은 거의 없다. 그러니까 인터넷을 끊든지 잠을 이보다 더 줄이든지 해야하는데 전자는 힘들고 후자는 불가능하다. 하여, 자꾸 지친다. 어떻게 살든 책 읽을 시간 정도는 마련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 거다. 02. 저녁을 먹고 지쳐서 책상 앞에 앉아있는데 핸드폰 액정이 반짝 하고 밝아지더니 문자가 도착한다. 이관우가 골을..
목 안이 근질근질거린다. 감기가 오려는지도 모르겠다. 충분한 수면이 필요하다. 내가 왜 안 자고 계속해서 버티는지에 대해, 고민할 시간. 이게 무슨 마음인지 잘 모르겠다. 질투하고 있는 걸까, 난. 천성적으로 질투심이 많은 걸까,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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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이 불었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바람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여름은 이미 가버린 듯한 냄새였다. 설레여서 소리를 지르고 싶어졌다. 나란히 걸어가던 K에게 나는 마구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옛날 생각이 날 것 같애요. 왜, 겨울에 연애라도 했어요? 아니요, 그냥 겨울만 되면 옛생각이 나요. K는 그런 내게 겨울을 타나보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한겨울에 태어났다고 말을 했다. 겨울이 되면, 매일매일 우울해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마음 단단히 먹어요. 나 매일매일 울지도 몰라. K는 하하 소리를 내어 웃었다. 늘 웃음이 많은 K였다. 나도 하하 소리를 내어 웃었다. 나도 늘, 웃음이 많았다. 바람에 묻어오는 냄새는 자꾸만 마음에 사무쳤다. 나는 늘 과거에 묻어있던 쓸쓸함마저 그리워..
말이 말로써 너에게 가닿지 않는다. 이것이 나, 그리고 너, 이다.
어깨를 툭, 치면 나는 주저앉을 것 같다. 똘똘돌 뭉친 열등감. 이 사랑은 얻은 적도 없는 것이다. 잃을까봐 전전긍긍대는 것은 속도 위반인 셈이다.
01. 사람들이 무엇에 그토록 화를 내는 건지 잘 모르겠다. 화를 낸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의 증거는 아니다. 눈물이나 복수가, 곧 사랑이 될 수는 없는 것처럼 분노나 고통도 마찬가지다.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마음은 대상의 부족함보다도 본인의 부족함에서 생겨나는 경우가 더 많다. 내가 너를 지켜보고, 내가 너에게 기대를 걸고, 내가 너의 성공을 바라고 있으니 늘 좋은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는 논리는 단순하게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어리석은 대중을 비웃으며 현자의 포즈를 취하는 이들은 어김없이 그 대중과 닮아있다. 나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순 없겠지만, 그 법칙이 들어맞는 경우를 볼 때마다 나는 어쩐지 웃음이 나고 나는 어쩐지 씁쓸해진다. 02. 갑자기, 모든 것이 재미가 없게 느껴진다.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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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 이란 걸 알고 생각하고 그러므로 이까이 꺼, 라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해도- 그것은 네가 보여주는 최대의 친절. 그것은 네가 보여주는 나에 대한 친절. 사실 내가 너한테 해준 게 뭐 있냐고. 그런데 너는 내게 왜 이렇게 친절한 거냐고. 문득 믿기지 않아서 어리둥절해보지만, 어차피 답 같은 건 얻지 못해도 좋아. 일상의 피곤함을 씻어주고 덜어주는 것은, 너의 웃음이고 너의 목소리이고 너의 손짓이니까. 휴가가 끝나고 다시 시작되는 업무. 그 업무의 고됨을 300% 감소시켜 줄 거야. 고마워 너. 친절한 너.
01. 사람이, 한 사람 한 사람- 따로 있을 때 더 아름답다는 것에 동의. 꼭 내가 누구와 함께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02. 결심 하나만 하자.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고. 결심 하나만 하자. 내가 얼마나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잊어버리지 말자고. 내가 살고 있는 것이 지긋지긋한 생이라도 좋아. 어차피 이 생을 살아가기로 한 거라면, 그만두지 말자고. 포기하지 말자고. 내가 나를 부정하는 일 따윈 절대로 하지 말자고. 03. 나는,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 내 마음이 아니라 너의 마음에 대해서 말이야.
내가 원한 것은 쉼. 그곳의 공기가 줄 수 있던 것도 쉼. 장평은, 조용하고 깨끗하며 맑고 차갑다. 이 여름, 딱 한 번 내가 평화로웠던 시간이 있었다면- 그것은 빨간 모자를 눌러쓰고 양갈래로 삐삐머리를 땋고 바람에 사각대는 나뭇가지의 소리를 들으며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던 시간. 옛 집 마당에는 여러개의 돌탑이 층층이 쌓여있고, 나는 그 중 하나의 탑을 골라 제일 위에 두 개의 돌을 올려놓는다. 쓰러지지 않도록 한껏 조심스러워지던 손길을 거두면 잠시 그 앞에 서서 기도. 나에게, 아직도 있는 바람. 나에게, 아직도 있는 소원. 돌아오는 길에서는 이르게 핀 코스모스를 만난다. 흔하디 흔한 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면 이렇게 가까이서 이 꽃을 들여다본 것은 기억도 안 날 만큼 오래 전의 일이다.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