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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선생님은 나빠. 규칙은 함부로 바꾸는 게 아니에요] [욕하는 것만큼 고자질도 나빠요.] [그건 괴롭히려고 한 게 아니라 좋아해서 그런 거예요.] 구구절절 옳은, 건우가 주는 나쁜 선생님 표. 횡선미의 동화는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깨달음도 준다.하여, 황선미는 최근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빠른 속도로 등급업 중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그 소설을 쓴 이가 천상 이야기꾼이라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물론 그 느낌은 그 소설이 내게 감동적이었는가, 마음에 들었는가 하는 문제와는 무관하다. 하지만 어쨌든 그런 느낌을 가지게 하는 사람이 쓴 글은 대체로 재미있다. 다른 모든 능력을 차치하고서라도, 이야기꾼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분명히 흥미롭기 때문이다.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이 작가도 그런 느낌을 가지게 만드는 이들 중 한 명이다. 이 책은 만만치 않은 분량인데도 지루하다거나 맥이 끊긴다거나 긴장감이 풀린다는 느낌이 없다. 나 역시 단숨에 읽어치우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읽는 동안에는 이 책속에 꽤 빠져있던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이렇게 뛰어난 이야기꾼이 만들어낸 소설이 내 취향이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나는 지식인이 아니고, 교양인도 아니다. 나는 이 나라나 이 사회의 올바름, 나아가야 할 길, 지양해야 할 것, 됨됨이, 저지르고 있는 잘못 따위를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정치에 무관심하고, 사회적 사건들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나는 온전하게 나 하나만을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는 점에서 반쪽짜리 사회적 인간이다. 사실 나는 치열하게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대체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 세상이나 사회, 민족, 국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분노하는 그들 말이다. 김규항의 표현대로 하자면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좌파'들이 바로 그들이다. 나는 가끔 그들을 비웃고, 나는 가끔 그들을 의아해한다. 그런 내 태도가 틀렸다는 것, 정작 이해받지 못하고 비웃음을 받아야 할 쪽은 내쪽이라는 것, 그것을 깨닫게 한 것..
01. 그 마음을 안다, 라고 말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런데도 어쩐지 자꾸만 알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열 여섯살 난 소년의 마음을 스물 여덟의 내가 무슨 수로 이해하겠냐마는, 자꾸만 난 그 마음이 너무나 친근해서 측은한 생각마저 들고 마는 것이다. 결국 그 마음은 나에 대한 연민이 되어서 돌아오고 나는 한 동안 꼭꼭 그 책을 손으로 누른 채 책상 앞에 앉아있다. 세상의 부조리함에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일을 고행에 가깝도록 만든다. 인간의 이러한 모습과 저러한 모습을 경멸하고 혐오하여 결국 이 인간과 저 인간 모두를 미워하고 비웃게 되는 것은 지독한 나르시즘의 결과이다. 하지만 이러한 본능을 타고 태어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이 고행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나는 아..
지하철을 오가며, 책장을 넘기다가 울컥 눈물이 치솟고는 한다. 명치끝이 아프거나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기분 말이다. 꼴사납게 웬 감정이입인가- 생각하지만, 이런 감성은 내가 외면하거나 무감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나는 이 책의 한 장을 한 장을, 좋아하는 초콜렛을 아껴먹듯 조심스레 넘긴다. 똑같은 언어를 배우고 익히며 사용하고 있지만, 이토록 심장을 두근거리게 할 수 있는 것은 온전하게 이런 사람의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동안에는 내내 심장에 잔뜩 미지근한 물이 차있는 기분이다. 이런 느낌을 가지게 하다니, 조금 부럽고 조금 놀랍다.
어떤 경우엔, 글을 읽을 때 그 글을 쓴 이의 존재가 너무 강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여 그 글속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을 그 글을 쓴 사람과 동일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땐 그 글을 읽는다기보다는 그 글을 쓴 사람에 대해서 읽는다고 해야 옳을지도 모르겠다. 신경숙이 내게는 늘 그랬고, 은희경도 다분히 그랬으며, 어느 순간부터 무라카미 류도 그러하게 되었다. 학창시절에 난 그다지 좋은 학생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썩 나쁜 학생도 아니었다. 선생들에게서 사랑을 받을 이유보다 미움을 받을 이유가 더 많긴 했지만, 그래도 그들에게서 상처란 것을 받을 이유 역시 없었다. 적당한 안전지대에 서있었다고 하면 나쁜 설명은 아닐 것이다. 난 나름대로의 자유를 만끽하는 대신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충분히 보호받을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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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성격이란 건 기득권이야. 저 놈은 어쩔 수 없다고 손들게 만들면 이기는 거지.] 이라부의, 아주 옳은 말. 02. 자신에 대한 파괴 충동. 질투심으로 인한 스로잉 입스. 낯선 이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본능. 창작에 대한 스트레스와 자신에 대한 혐오감. 2등으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극한의 정신적인 공포는 결국 몸의 이상으로 나타나는 것. 03. 재미있게 읽을만 하구나. 술술술, 책장이 넘어가는 정도로 만족.
전쟁은 달리 피를 좋아하고 폭력을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가지기 시작한 자, 더 많이 가지고 싶어하고 가지고 있는 자, 뺏기기 싫어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우연, 이나 사고, 가 아니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은 인간에게 참 어울리는 사실이다. 내가 인간이면서, 인간이 가진 본능을 혐오한다는 것은 모순이며 오만이며 동시에 괴로움이기도 하다.
난 엘리자베스의 지나치게 꼿꼿하게 구는 성격이 조금 밥맛이라고 생각했다. 말끝마다 따지고 드는 버릇은 일견 품위 없어 보이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당당하게 비난하는 모습에선 그녀의 경솔함을 보았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인 에어'나 '테스'와 비교해볼 때 그녀가 무척 재미있고 그리하여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확실히 감당하기 쉬운 사람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살아가며 지겨움을 줄 사람도 아닐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편견으로 인한 실수를 깨닫자마자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상대에게 미안해하며 그런 자신을 용서한 상대에게 고마워할 줄도 안다. 비록 이 소설의 가장 멋진 캐릭터는 엘리자베스가 아니라 다아시지만, 이 정도의 여자라면 다아시의 연인으로도 손색이 없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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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다고 류는 말한다. 나는 류의 그런 당당함이나 거침없음을 일견 품위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일견 부럽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01. [그러나 그 8:0의 패배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아니 '일각'이라는 표현조차 너무 거대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패배가 우리 앞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리그가 전개되면서 서서히 삼미는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 게임 한 게임 그것은 분명 평범한 패배가 아니었고, 뭔가 야구의 상식이 무너지는 느낌의 패배였고, 우주의 역행과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다는, 그런 느낌의 패배였다. 우주를 바로잡고 자연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늘 생각해온 우리의 응원은, 그래서 더욱 필사적이 되어갔다. 그물에 매달려 고릴라처럼 고함을 지르고, 시멘트 바닥을 뒹굴고, 신발을 벗어 자신의 등과 뺨을 때리는가 하면, 급기야 베어스와의 경기 땐 곰인형을 지참, OB의 타자들이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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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반짝반짝 빛나는 지갑을 꺼내서 반 짝반짝 빛나는 물고기를 샀다. 반짝 반짝 빛나는 여자도 샀다. 반짝반 짝 빛나는 물고기를 사서 반짝반짝 빛나는 냄비에 넣었다. 반짝반짝 빛 나는 여자가 손에 든 반짝반짝 빛나 는 냄비 속의 물고기 반짝반짝 빛나는 거스름 동전 반짝반짝 빛나는 여 자와 둘이서 반짝반짝 빛나는 물고 기를 가지고 반짝반짝 빛나는 동전 을 가지고 반짝반짝 빛나는 밤길을 돌아간다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밤하늘 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물을 흘리 며 반짝반짝 빛나는 여자는 울었다 02. 여자는 울었다. 03. 아오이가 그랬듯, 쇼코도 참 사랑스럽다. 이상한 일이지만 난 쇼코를 보면서 그녀를 떠올렸다. 내가 왜 자꾸 이렇게 그녀를 떠올리게 되는지 짐작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난 그녀가 참 많이..
마당이 깊어, 슬픔이 머물 곳도 깊었을 거야. 비가 내리면 그 마당에 빗물이 고이듯, 슬픔이 많아지면 그 마당에 슬픔도 차곡차곡 고였을 거야. 종종 내게는, 전생의 기억처럼 희미하게만 느껴지는 우리의 과거 이야기. 그나마 위로가 될 말들을 전할 수 있다면, 사는 것이 그 시절보다 편안해지고 부유해졌어도 삶은 여전히 고되고 고통스럽다는 것 뿐이겠지.
내가, 당시만 해도 그다지 일본 작가의 소설이라곤 별로 관심없어하던 내가, 하필이면 이 작가의 소설을 찾아내 가면서까지 읽은 것은 나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호감이라든가, 이 작가의 유명세라든가, 내 소설의 취향과는 전혀 무관한 이유였다. 그 이유를 시시콜콜 밝히고 싶지는 않지만 어쨌든 배신감이라기 보다는 호기심. 호기심이라기 보다는 오기. 오기라기 보다는 쓸쓸함. 뭐 그런 감정이었을 것이다. 내가 이 작가의 소설을 손에 쥐면서 느꼈던 것은 말이다. 몰랐던 것이지만, 마루야마 겐지는 처음부터 소설을 쓰고자 했던 사람은 아니다. 22세의 젊은 나이에 '문학계' 신인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당시 소설을 쓴 이유도 현상금에 마음에 끌렸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런 작가의 내력에 대해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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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산드라처럼, 다른 이들의 믿음을 얻지 못하는 예언자 파이버. 그 파이버를 뚝심있게 믿어주고 지켜주는, 현명하고 사려깊은 지도자 헤이즐. 결국은 동료들을 살려내고 영웅이 되는 불굴의 전사 빅윅. 뛰어난 두뇌를 지닌 영리한 블랙베리. 모든 공포와 걱정을 잊게 하는 재담꾼 댄더라이즈. 어쩔 수 없이 용기를 가지게 되긴 했지만, 사실은 여전히 겁쟁이이며 조직력 따윈 가져본 적도 없고 가지고 싶어하지도 않는 이 이야기 속의 토끼들.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겠어. 이 토끼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우며 어여쁘고 유쾌하며 하여 눈물 겨운지. 어떻게 말로 설명하겠니. 이 이야기가 얼마나 흥미진진하며 긴장감 넘치고 따뜻하며 즐거운지. 읽지 않으면 몰라. 읽은 사람만 알아. 이 이야기는 정말로 유쾌하고 멋진 이야기란다.
내가 한참 아이에게 반해있을 무렵이었다. 나는 새벽부터 일과가 시작되는 그 토요일을, 저녁 7시까지 숨 돌릴 틈도 없던 그 토요일을, 식사 같은 걸 입에 댈 겨를이라고는 아무리 노력해도 만들어 낼 수 없던 그 토요일을, 단지 아이와 만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좋아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3, 4, 5, 6 학년. 고만고만한 또래 아이들을 상대로 하던 내게 아이는 처음으로 마주친 귀엽지 않은 아이였다. 아이는 훌쩍 키가 컸고, 아이는 비쩍 마른 몸을 하고 있었고, 아이는 어둡고 탁한 피부빛을 지녔고, 아이는 눈을 감은 채 감상하고 싶은 보드라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방으로 들어서서 아이를 처음 만난 순간을 지금도 또렷히 기억하고 있다. 노트 가득 적어낸 아이의 글은, 우리 나라를 떠나 오래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