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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를 읽으면서 카이사르에 대한 시오노 나나미의 지나친 찬사가, 오히려 카이사르를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느꼈다. 그런 남자, 별로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내 주관적인 기준 탓도 있겠지만 모든 황제를 이런 이런 것은 인정할 만하지만 카이사르와 비교하면 별 것 아니다- 라고 말하는 듯한 작가의 말투 때문에라도, 나는 카이사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우구스투스나 하드리아누스, 또는 아우렐리우스 쪽에 더 마음이 갔던 것 같다.내가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자, 듣고 있던 누군가는 하하, 웃으며 시오노 나나미가 카이사르의 빠순이란 소리를 괜히 듣겠냐 했다. 그러고보니 그랬다. 누구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하든 결국 카이사르로 돌아가고야 마는 시오노 나나미의 태도는 ‘결론은 김은중’이라거나 ‘축구판은 ..
대체로 모든 책을 재밌게 읽는 편이지만, 유난히 책읽기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책들이 있다. 한동안 그런 책을 못 찾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만났다. . 이 책엔 책읽기의 즐거움이 있다. 꼭꼭, 영양가 많은 음식을 씹듯이 천천히 꼭꼭, 그렇게 읽어야 할 것 같은 책이다. 질좋은 음식은 곧 다시 먹고 싶어지듯이 이 책도 아마 그러할 것이다.
우리들은 어떤 사람에 대해, 저 사람은 나쁠 때보다 선량할 때가 더 많다, 어리석을 때보다 영리할 때가 더 많다, 무기력한 때보다는 활동적일 때가 더 많다, 하는 말로써 평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선량하다든가, 영리하다든가, 또는 악인이라든가, 바보라든가 하고 단정해 버린다는 것은 커다란 잘못이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자주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구분해 버리려고 한다. 그것은 절대로 옳지 못한 일이다. 인간이란 강물과 같은 것이다. 물은 어느 강물에서든 변함없이 그 물이지만 폭이 좁은 곳에서는 물살에 세게 흐를 것이며, 폭이 넓어 느릿 느릿 흐르는 곳도 있을 것이다. 그 지대에 따라서는 맑고 차가운 곳도 있는가 하면 탁하고 미적지근한 곳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이런 면이 나타나고 또 때로는..
날이 더워서, 샤워를 하고, 내가 입을 수 있는 가장 시원한 옷을 입고, 차가운 바닥에 누워, 책을 읽었다. 읽다보니 졸려서 잠깐 자다가, 잠을 깬 후에 다시 책을 읽고, 읽다가 잠깐 다시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서 남은 책을 마저 읽었다. 그래도 일을 그만둔 이후론, 한 번 잡은 책을 끝까지 읽어내는 횟수가 늘었다. 웬만한 책은 아무래도 그렇게 하기가 힘이 든데, 하루키의 글은 워낙 재미면에서 우수하니까. 어렵지 않게 해내게 된다. 게다가 이 책, 분량도 얼마 되지 않으니까. 읽다가 문득 생각한다. 하루키. 이 사람은 정말 엄청난 이야기꾼이라고. 특별히, 하루키의 글에 심취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읽을 때마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유명세를 떨치는 작가인 것인지, 마음으로 느낀다. 좋아했던 글도 있고 그저 ..
심취하고 싶은 작가가 생겼다. 첫 장에서 결판이 났던 것 같다. 난 이 책의 첫 장을 읽은 후에 이 작가에게 심취하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이 책에는 첫눈에 반해버린 셈이다. 사놓은 후 1년 가까이 책장에 묵혀두기만 했던 것이 미안할 만큼 는 훌륭한 책이다. 서글프지만 강한 존재들. 쓸쓸하고 억울한 일을, 이해하지 못해도 받아들일 줄은 아는 존재들. 쉽게 좌절하지도 않고 쉽게 꿈을 꾸지도 않는 존재들.그런 존재들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껴안아주고 싶고 쓰다듬어 주고 싶고 같이 울고 싶어진다. 보리는 그런 존재다. 난 사람과 삶을 바라보는 보리의 시선 때문에 이 책이 너무 좋았다. 지난 몇년간, 여기저기 이 작가의 이름이 떠도는 것을 보면서도 한 번도 이 작가의 소설을 선택했던 적이 없다. 아마도 내 습..
이 작가의 을 매우 좋아했다. 나무에 매여 죽던 대령과 벌레들에 의해 옮겨졌던 마지막 아기의 모습까지, 하나하나의 인물이 뇌리에 깊게 박혔다. 모든 인물이 너무나 생생하여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럼에도 모든 인물이 너무 쓸쓸하여 살았던 적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인물과 사건과 문체가, 완벽하게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이 작가의 다른 책에도 눈이 갔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선택하게 된 은, 과 같은 경이로움을 맛보게 하는 작품은 아니었다. 책을 즐기려고 할 때쯤 끝나버리는 길이부터 아쉬웠다. 500명이 넘는 창녀들과 잠자리를 같이 했던 90세의 노인이 (얼핏 보면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같은) 14세 소녀를 사랑하게 된 내용에도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한 가지 위안이 된 것이라면 가르시아 ..
소설의 재미를 원하는 사람에겐 이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 소설인지 아닌지 자체가 헷갈리는 작품이니까, 이 속에서 소설적인 재미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이 책은 꽤 당황스러운 존재였다. 처음 한 동안은 도무지 이 책에 빠져들 수가 없어 처음부터 다시 읽기를 세번이나 반복해야 했다. 그렇게 첫째장부터 다시 읽기를 세번째 반복할 때에서야, 나는 이 책에 조금 적응을 하기 시작했다. 픽션과 전기와 비평이 여기저기 뒤섞여있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흥미를 느낀 것은 플로베르에 대한 줄리언 반스의 변호였다. 지나치게 형식에만 얽매여있는 비평. 그런 비평에 의해 부당한 공격을 받고 있는 플로베르를 줄리언 반스는 멋지게 변호해냈다. 그렇다고 해서 플로베르를 무조건 추앙하는 것은 아니다. ..
책을 펼쳤을 땐, 자정이 지나 있었는데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땐, 아침이 밝아 있었다. 책 한 권을 쉬지 않고 다 읽어보는 것이 참 오랜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서 아침이 되었는데도 잠이 들지 않았다. 에쿠니 가오리가 언제나 사랑스럽거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성 캐릭터를 창조해낸다면, 이사카 코타로는 그러한 남성 캐릭터를 창조해낸다. 까지 해서 이 사람의 소설을 고작 두 편 읽어본 주제에 이렇게 말하는 게 우스울지 모르겠지만, '치바' 만큼이나 (또는 '치바'보다 더) 사랑스럽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하루'를 보고 있자면 그런 생각이 든다. 다른 건 다 보류한다 치더라도 이 작가의 남성 캐릭터 창조 능력 하나는 인정해줘도 될 것 같단 생각. ["천재는 자신의 말에 책임지지 않아." "정..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 어김없이 영화의 재미가 책의 재미에 못 미치는데, 영화를 읽고 책을 읽으면 영화의 재미가 오히려 책의 재미에 도움이 된다. 물론 영화 속 배우의 이미지 때문에 인물에 대한 상상력에 제약을 받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책 다음에 영화를 보는 것보단 영화 다음에 책을 보는 것이 좀 더 나은 선택인 듯 하다. 이 책, 결말이 좀 빈부하고 뻔하다는 게 흠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무언가 추리해나가길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읽어서 꽤 재미있는 책 같다. (나의 경우를 말하자면, 딱히 싫어할 것은 없으나 추리해나가는 과정에서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는 못하니까 이 책은 그냥 그런 선택이 되었다.)
바나나의 글은 수식이 너무 많다. 그래서 몇 문장을 읽은 후에 생각해보면 내가 무슨 뜻의 문장을 읽어냈는지 얼른 파악이 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내가 이 여자의 글에 호감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마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수식이 많은 문장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란 사람은 문장에서도 정공법을 선호하고 있다. 핵심 대신 수식에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다. 바나나의 글은 그런 의미에서 정말로 내 취향이 아니다. 그런데 왜 또 이 여자의 글을 읽고 있느냐, 하면 사뒀기 때문이다. 사는 김에 세 권을 한꺼번에 사뒀기 때문에, 그냥 읽었다. 사실은 머리도 좀 복잡하고 하여 책장이 빨리 넘어가는 책을 읽고 싶었다. 오늘의 나에겐 생각하지 않을 책이 필요했다. 그리고 책장에 꽂힌..
왕가위 감독은, 이 책에 영감을 받아 를 찍었다 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어페어'란 제목에 너무나 심취하여 영화의 제목도 반드시 그것으로 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를 다 만들고보니 그 영화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관한 것이 아님을 깨닫고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제목을 버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의 부제는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되었다. 나는 그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영화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책의 내용에 조금 당황했다. 스토리와 무관하게, 부에노스 아이레스라는 그 이름의 이미지만으로 그런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 낸 것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그렇지만 많이 좋아하던 영화와의 관련담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끝끝내 별다른 감흥을 남기지 못하고 끝이 났다. 이 ..
나는 원래 에세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살면서 몇 권의 에세이를 읽어보았지만 (그 속엔 하루키의 에세이도 있었다.) 신경숙의 을 제외하곤 특별히 기억에 남은 것이 없다. 딱히 에세이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취향이 그랬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신변잡기적인 글들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런 내가 별다른 망설임없이 이 책을 주문했던 것은, 주위에 하루키의 에세이를 매우 좋아한다는 사람도 있고 그 중에서도 이 책이 단연 으뜸이라고 꼽는 사람도 있어 '어떤 책이기에...' 하는 궁금즘이 일었기 때문이다. 나는 매우 편향된 취향의 독서가(라고 표현해도 좋을진 모르겠지만 어쨌든)이긴 하지만 그나마 가진 장점이라면, 다른 사람의 추천을 쉽게 쉽게 받아들인다는 점일 것이다. 500page가 살짝..
나는 바보인 건가. 그림자 제왕에게 조금, 애정을 느껴버렸다. 그래서 이 책이 재미있어졌다. 숱한 비유들로 이루어진 책이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비유법을 좋아하지 않는, 비유법에 약한 나로서는 그래서 조금 지겨웠던 건지도. 책을 먹고 사는, 책을 읽으면 배가 고프지 않은, 그래서 영양가 높은 고전을 읽으면 살이 찌는 부흐링 족들이 생각난다. 사랑스러운 종족이었다. 좋은 책에 심취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런 글을 스스로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그림자 제왕이 알려주었다. 그래서 미텐메츠군은 그 후로 좋은 글을 많이 썼을까? 그림자성의 도서관에서 읽었던 글과 같은 그런 글. 마지막 햇볕에 불타던 그림자 제왕이 웃고 있었다니, 다행이다. [우리는 별에서 와서 별로 간다. 삶이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일 뿐이다] - ..
[사람의 죽음에는 특별한 의미나 가치도 없다. 요컨대 거꾸로 생각하자면 누구의 죽음이나 같은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는 말이다.] 이것은 죽음에 대한 치바의 생각이다. 치바는 20대의 미남 청년이 되기도 하고, 40대의 약골 아저씨가 되기도 하고, 30대의 평범한 회사원이 되기도 하는 사신이다. 하나의 일을 맡을 때마다 정보부에서 정해주는 프로필과 외모를 가지게 되지만 일단 음악을 좋아하고 자기 일에 충실하며 인간의 사정에 관심없어한다는 점은 늘 똑같다. 그렇기 때문에 치바는 얼핏 쿨해보인다. 웬만해선 안 놀라고 감정에 변화도 거의 없고 일주일간 가깝게 지낸 인간에 대해서도 어렵지 않게 죽음을 선사하니까, 인간된 내 입장에서 볼 땐 쿨해도 이렇게까지 쿨할 수 있을까 싶다. 하지만 치바는 인간이 아니다. 쉽게..
이 책은 나처럼 1979년에 태어났다. 이미 오래 전에 많은 사람들의 손에 들리었던 책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 묘하다. 나만의 경험일 것 같은, 다소 독특한 기분을 남기는 책이기 때문인 듯하다. 나이가 든 탓에, 아니면 조금은 현실적인 탓에 바스티안처럼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진 못하지만- 아트레유를 좋아하고 여제의 행방을 궁금해하는 정도의 감정이입은 하게 된다. [어떤 소년이 책을 읽다가 책 속에 있는 이야기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워진다.] 라는 고작 두 개의 문장에서 탄생했지만, 이 책은 무려 700page나 되는 긴 이야기로 이어진다. 하지만 쉽고 재미있기 때문에 사흘 정도의 시간만 투자하면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재미있는 동화책을 발견하기 위해 아이들이 읽는 책..
예를 들면 말이다. 좋아하는 A가 있다. 어떤 식으로인가, 얼마만큼인가 하는 것을 따지지 않고 어쨌든 좋아하는 A말이다. 나는 A를 좋아한다. 그러니까 다른 남자와 연인으로 지낼 마음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A가 내 연인이길 바라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물론 그 이유에는 내가 A를 많이 좋아하진 않는다거나, 내가 A를 그다지 남자로 느끼지는 않는다거나 하는 문제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꼭 A가 내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의 어떤 부분은, 분명히 진부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의 대부분은, 우아하고 지적이다. 무엇을 놀라워 했느냐 하면 이 긴 글을 써낼 수 있는, 마지막 장까지 끌어올 수 있는, 작가의 인내나 고집이었다. 읽는 동안 나는 먼 여행을 다녀오는 ..
어느 순간부터 은결이는 방향을 잃어버렸다. 오른쪽으로도 갈 수 없고 왼쪽으로도 갈 수 없다는 걸 알아버린 것이다. 그만둘 수도 없고 계속할 수도 없는 일이란 것이 있다. 은결이는 그것을 벌써 알아버렸다. 그러니 몸이 아프고 마음이 괴로울 수밖에. 그래도 결국 아픈 발은 낫고, 들키고 싶은 비밀도 들켰으니 다행이다. 이제 은결이 엄마가 은결이를 좀 더 자주 안아주면 좋겠다. 누가 뭐래도 아이들은 관심의 사각 지대에 서면 울 수밖에 없다.
이 동화에는 체념, 비슷한 것이 서려있다. 체념이 아니라면 쓸쓸함일까. 아니라면 그냥 삶에 깃들어있는 안쓰러움같은 것일까. 은 읽다보면 눈물을 펑펑 흘리게 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희망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잎싹은 굳세고 강한 주인공이고 결국 자신이 하고자 하던 것을 다 하며 지키고자 한 것을 다 지킨다. 도, 도 주인공 소년이 조금 안쓰럽긴 하지만, 그 다음에 펼쳐질 미래는 밝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는 변해가는 마을 안에서도 따뜻함과 가족이란 테두리를 지켜나가고 있는 인물들이 어여쁘다. 그런데 이 책은, 은 그 모든 작품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다. 장발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모든 것을 잃는다. 동생을 잃고 어미를 잃고 모든 형제를 잃고 새끼들을 잃고 좋아했던 하얀 개를 잃..
마을이 있다. 예전에는 나무도 많고 공기도 맑아서 살기 좋던 마을이다. 그 마을이 조금씩 변하면서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고, 나무들은 하나 둘 없어졌다. 그러는 중에도 그 마을을 지킨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과수원이다. 그 과수원에는 아저씨가 있고 아주머니가 있고 할머니가 있고 그리고, 오리 열 마리가 있다. 아저씨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오리들은 평화롭게 산다. 그도 그럴 것이 과수원은 그 마을에서 동물들이 살아가기에 가장 좋은 터전이다. 그래서 오리의 집이었던 그 과수원으로 고양이가, 쥐들이, 찌르레기가 몰려든다. 모두들 과수원에서 살고 싶어한다. 결국 쥐들은 고양이가 소개해준 다른 곳에 터를 잡고 고양이와 찌르레기는 과수원 가족이 된다. 이것은 점령했다기보다는 포용되는 것이다. 아저씨가 고..
- 사라진 발자국 - 나는 젊음을 잠으로 낭비하며 모든 시간을 써버렸다. 나는 나에게 중요한 뭔가를 기다려왔다. 그러나 한참 수다 떤 이후처럼, 야간 보초를 선 이후처럼 인생은 허무하게 지나가버렸다. 밤에 비가 내리면 어제 남긴 발자국은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는 걸 좋아했다. 그러면서 나는 누군가 나를 사랑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일찍 베여지는 풀처럼 바람에 날리는 연기처럼 인생을 걸어왔다. 밤에 비가 내리면 어제 남긴 발자국은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나는 많은 책을 읽으며 지식을 쌓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무엇인가를 알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얻을 수는 없었다. 태양이 솟았다. 그러나 어느새 태양은 지고 있다. 그리고 원래 있던 곳으로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