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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그것이 어째서 그렇게 큰 슬픔이 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으니까, 어째서 그렇게까지 행동해야 했는지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는 거야. 아르네는 충분히 사랑스러운 소년이었지만, 이해할 수 없으니까 감동도 받을 수 없어. 이것이, 내가 너무 많이 자라버린 탓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행복이 찾아왔다기보다는 스스로 행복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그 행복에게 의자를 내준 후, 할링카는 묻는다. 로우 이모, 설탕만으로도 충분히 달콤한데 왜 꿀이 필요한가요? 라고. 그런 점에서 할링카는 앞으로 더 많이 행복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설탕만으로도 충분히 달콤함을 느낄 수 있는 아이니까. 그러므로 꿀까지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이니까. 짠- 하는 마음의 소리를 듣고 싶다면 마지막까지 버텨야 한다. 처럼, 이 책 역시 마지막 장의 마지막 문장에서야 이 이야기가 씌어진 진짜 이유를 느끼게 해주니까 말이다.
이상할 만큼, 이 이야기는 참 슬프다. 그 동안 참 많이 듣고 보고 배웠던 이야기인데, 몰랐다거나 새롭다거나 하는 이야기도 아닌데, 이상하게 김훈의 문체로 씌어진 이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참으로 슬픈 생각이 든다. 누가 옳다고도, 누가 그르다고도 말하지 않는 김훈의 글속에 담긴 것은 그저 힘이 없어 서러웠던 옛 인간들을 향한 측은지심인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이 왕이거나 영의정이거나 사공이라거나 하는 사실보다도, 그들 모두가 그저 힘이 없어 서러웠을 거란 생각에 안쓰러운 마음만 가득한 것 같기도 하다.
스밀라는, 포기하지 않는다. 스밀라는, 설득 당하지 않고 강요 받은 대로 행동하지 않으며 두려움에 무너지지 않고 도중에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이 알고자 하는 것을 알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줄 아는 스밀라. 한 아이를 사랑했던 이유 하나로 엄청난 힘을 낼 줄 아는 스밀라. 스밀라는 경이롭다.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이야기 자체보다도 스밀라이다. 그린란드라는 땅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런 땅에도 나라가 세워지고 사람들이 태어난다. 알고 있었지만, 당연히 그러리라 여겨왔지만 이 책을 읽고서야 그 사실을 처음 안 것처럼 나는 놀란다. 그린란드. 그리고 덴마크. 내 인생과는 49억 광년쯤 떨어진 곳에 있을 듯한 나라. 그래서 그 나라에서 태어난 작가가 그 나라를 배경으로 삼아..
때로는, 이것이 어째서 명작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명작을 만난다. 그 글들을 이해하기엔 내 소량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고, 시대가 변하면서 그 글이 지니고 있던 가치가 퇴색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책을 읽고 나면 정말로, 이 책이 어째서 명작이 된 것일까- 라는 생각을 계속해서 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하루키의 단편이 장편보다 더 좋다고 말한다. 내가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내 마음에 와닿는 하루키의 단편을 만나봤으면 좋겠다.
언제나, 모든 책이, 내가 기대했던 만큼 훌륭할 수는 없다. 더욱이 그 전작이, 며칠 내내 잊히지 않을 만큼 훌륭했다면. 그래서 그 작품 때문에 같은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면. 당연히, 당연히, 새로이 읽은 책은 기대에 못 미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러니 이 책에 악평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지만, 역시. 어쩔 수 없이. 가 보여주었던 훌륭함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주제 사라마구. 이 사람의 작품 중 보다 더 훌륭한 작품이 있다면, 앞으로 몇번쯤 더 '기대에 못 미친다.'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이이의 작품을 읽을 텐데 말이다.
이후에, 이후에, 백탑파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를 기다리고 기다렸던 것은 김탁환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무엇이 소재가 되든, 어떤 장소나 어떤 시간이 배경이 되든, 김탁환은 분명히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아주 우아하게 풀어나갈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서 이런 믿음을 받는 작가들은 늘 그러하듯이, 김탁환 역시 나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백탑파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될 은 앞의 두 이야기보다 더 많은 배경 지식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까다롭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의 두 이야기보다 한 단계 위의 찬사를 받아도 좋을 만큼 훌륭한 이야기였다. 백탑파라는 것은 조선 영/정조 시대에 백탑 아래서 학문을 논하던 서생들을 가리키는 말로서 의 저자 박지원, 서얼이라는 신분의..
이 참 마음에 들어서, 그래서 온다 리쿠의 책들을 좀 더 읽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어떤 책을 읽어볼까 고민을 하다가, 순전히 제목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를 골랐다. 그런데 이 책은 온다 리쿠를 접한 지 얼마 안 된 나 같은 사람보다는 온다 리쿠의 여러 책들을 두루 읽어본 사람들이 더 좋아할만한 책이었다. 여러 장편들의 예고편이라든가, 외전 같은 느낌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어서 온다 리쿠의 팬들에겐 꽤 의미있는 단편집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나에게는 이 책이 그저 밍숭맹숭 재미가 없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꽤 마음에 드는 단편 같은 경우는, 이 단편이 토대가 되었다는 장편을 읽어보고 싶게끔 만들었으니 말이다. 하여, 나는 온다 리쿠의 또 다른 책도 읽어보기로 하였는데 다음으로 선택할 책은 이미 ..
환상 소설이나 과학 소설 같은 것, 별로 재미없다고 생각해 왔으니까 이 책이 이런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진작에 알았다면 처음부터 손에 들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선입견이라거나 또는 취향에 의한 분류 같은 건, 앎이나 즐김의 폭을 참 좁게 만든다. 나는 책에 관해서는 나름대로 확실한 취향이란 걸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은 접하지 않으려는 닫힌 태도 역시 함께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태도가 좀 더 많은 것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봉쇄할 거란 생각을 하면,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환상 소설이나 과학 소설 같은 것, 별로 재미없다고 생각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테드 창의 이야기들은 꽤 재미있게 읽었다. 이 이야기들이 어떤 식의 이야기인지 모르고 ..
어쨌건 하루키의 책은 언제나 재미있게 읽어왔는데. 안타깝게도 이 책은 그다지 재미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고, 하루키의 힘 같은 것도 느낄 수 없었다. 덕분에 때로는 하루키도, 하루키마저도, 그냥 그런 책을 써내곤 한다는 걸 깨달아 버렸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처음에 이 이야기가 실화라고 생각했다. 누구도 내게 그런 말을 해준 적이 없고, 책 소개에도 그런 이야기는 나와 있지 않았는데 혼자서 그냥 그렇게 생각해버린 것이다. 이것은 실제 있었던 일이다- 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읽는 동안 놀라움이 컸는데, 그러다 문득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 걸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다시 책 소개를 살펴보니 이것은 실화가 아니었다. 응. 그래, 이것은 실화가 아니었는데 나는 어째서 그런 식으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한 건지. 사람의 뇌란 게 때로는 이렇게 이상한 일을 한다. 어쨌든, 읽던 도중에라도 이 이야기 실화가 아니란 걸 깨달아서 다행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소감을 말하자면. 사실 이런 이야기, 내 취향과는 거리가 ..
아아아아, 재밌다. 그러니까 너무 재밌다. 아주 단순한 소재로, 진부한 설정과 평범한 인물들로, 짧은 시간과 좁은 공간으로,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이런 것을 두고 발군의 스토리텔링이라고 하는 거겠지? 재밌구나. 온다 리쿠. 온다 리쿠의 책은 처음인데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내는 작가였다니, 다른 것도 읽어보도록 해야지.
우스운 이야기지만, 김애란의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박탈감을 느꼈다. 그래. 소설가가 아닌 내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역시 우스운 이야기지만, 처음 김애란의 책을 읽었을 때 열등감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썼고, 글쟁이가 되기를 꿈 꾸었고, 그리고 또 누군가는 등단이란 걸 했다. 그런 것을 지켜보고 있었고, 그러는 동안 아- 라고 감탄사 같은 걸 터트린 적도 있었지만, 한 번도 박탈감이라든가 열등감 같은 걸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런데 김애란은 나에게 그런 것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처음엔 김애란을 그다지 칭찬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런 기분만으로 칭찬을 거두어 버리기엔 김애란의 글이 참... 훌륭하다. 나와 김애란은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시대를 살았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비슷한 것들을 많이 보면서 ..
예수는 존경할 만한 이라고 생각함에도 교회에 정을 붙이지 못하는 것은, 역시 교회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예수를 좋아한다. 하지만 크리스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는 간디의 말은, 내가 어째서 예수를 좋아하면서도 교회에서는 마음이 평화로워지지 못하는지를 단번에 설명해준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예수는 참으로 매력적인 존재일지 모르나 기독교는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을 한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종교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고, 다른 이들의 신을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와는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김탁환의 백탑파 이야기 시리즈에 등장하는 '김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화광'이라고도 불리는 그는 아주 명민하고 덕이 있는 약관의 젊은이다. 그리고 그의 호를 보면 짐작하겠지만, 그는 꽃에 미쳐 있다. 한번 자기의 집에 틀어박히면 꽃을 살피고 연구하느라 몇 달 동안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손님이 찾아가도 꽃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면 한 마디 말도 하지 않는 인물이다. 이런 김진은 의금부 도사이자 소설의 화자인 이화명이 사건을 풀어나가는 데 여러가지 영감을 주는 존재이다. 즉, 이화명과 함께 소설의 주인공이락 해도 좋다는 뜻이다. 백탑파 시리즈에 등장하는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백동수 등의 북학파 학자들은 모두 다 실존 인물이지만 김진과 이화명은 가상 인물이라고 알려져 있..
언니는 추리 소설을 좋아한다. 나의 경우엔, 딱히 어떤 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정형화된 장르 소설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므로 추리 소설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언니를 두지 않았다면 나는 절대로 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읽고 난 후의 소감을 이야기하자면, 500page가 넘는 분량인데도 이틀 정도 손에 잡고 있었던 것으로 어렵지 않게 마지막 장을 만날 수 있을 만큼 재미는 있었지만. 그래 재미는 있었지만. 아무리 인기작이라 해도 내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으니까. 역시 나는 추리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을 다시 읽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중고등학교 시절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프로이트의 책을 얼마나 탐독했던가-..
관건은, 보편성이다. 우리는 모두 사랑에 빠지고,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우리가 왜 사랑에 빠지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라고 묻는 보통의 책은 우리 모두의 눈길을 끌었고, 그에 대한 보통의 답이 꽤나 멋졌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보통을 좋아하게 되었다. 보통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보편성을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매우 지적이고 흥미로운 말투를 사용했기 때문에, 보편성과 동시에 특별함도 획득했다. 보통의 강점은 바로 이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누구나 하는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이야기를 특별하게 할 줄 안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한 연애담이지만, 이 연애담을 들려주는 방식이 독특하기 때문에 우리는 수많은 연애담 중 보통의 연애담을 조금 더 ..
지혜롭고, 용감한 체. 부지런하고, 공평무사한 체. 강하고, 아름다운 체. 지적이고, 섹시한 체. 이 세상에 체와 같은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 여자란 드물겠지만. 그렇겠지만. 역시, 그렇겠지만. 게릴라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밤 늦게까지 책을 읽었다는 체는. 권력을 가지고서도 그 권력 때문에 특혜를 받는 것을 싫어했다는 체는. 자신의 신념을 잊은 적도 없고 잃은 적도 없는 체는. 의사이자 저술가이자 혁명가였던 체는. 그런 체는. 어쩔 수 없어. 평생, 나의 이상형일 것이고 한참을 잊고 살다가도 문득 생각이 나면 다시 또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날 테니까. 그러니까 역시, 참 좋구나. 체 게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