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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미치도록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이것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다 버려도 좋겠다는 꿈도 없고, 죽도록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가 달콤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현실에 안주하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우리가 현실을 직시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 정답에 가깝든, 꿈이나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바라보게 된다는 건 어쩐지 슬프다. 이 세상과 만난 지 삼십년쯤 되면 더이상 꿈을 꿀 일이 없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냉정하며 거칠고 때로는 잔인한 곳이니까 말이다. 때로는 재밌지만 대체로는 지겨운 일. 웬만큼 나이 찼다 싶으면 누구하고서라도 엮어서 결혼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위 사람들의 오지랖. 친구들은 다..
별이 빛난다. 그리고 소녀가, 어깨에 기대어 잠이 온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 두근두근, 거리는 심장.
"천재성을 타고난 사람은 좀처럼 사교적이기 어려운데, 어떤 대화가 있어 그 자신의 독백만큼 지적이고 유쾌하겠는가?" - 쇼펜하우어 - "삶의 단편들을 놓고 흐느껴봐야 무슨 소용 있겠어? 온 삶이 눈물을 요구하는 걸." - 세네카 - 그저 상식처럼만 알고 있던 철학가들에 대해, 어렵지 않게, 너무 무겁지 않게, 적당히 가볍고 재미있게. 역시 알랭 드 보통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라기보다도 내 타입의 작가다. 그러니 나로서는 이 책 역시 매우 좋다.
아무리 도리스 레싱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데뷔작이니 그 훌륭함이 조금은 덜할 거라 생각했다. 원래 처녀작이라는 것은 신선하거나 흥미롭기는 해도 조금은 완성도가 덜하고 그래서 얼마쯤은 부족함이 느껴져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에 올해 내 최고의 소설은 분명히 도리스 레싱의 것이 되리라 생각하면서도 는 그저 미루어 두고만 있다가, 더이상은 집에 읽을 책이 남아있지 않아 드디어 이 책을 뽑아 들었는데. 그랬는데 정말, 도리스 레싱은 정말이지.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가 거기에 있다. 메리를 고통스럽게 만들던 그 더위처럼, 너무나도 뜨거워서 폭발해버릴 것 같은 기운이 를 지배한다. 그 열기 때문에 나는 괴롭고, 내내 긴장이 되거나, 또는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으며,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단 한 순..
결국엔, 다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것이다. 더이상은 눈부시도록 젊지 않고,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어리광을 부릴 수 없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서른이란 나이가 두려울 순 있겠지만. 그 모든 두려움은 언제든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니, 스스로를 믿고 스스로를 사랑하며 힘차게 걸어가라는 것이다. 이 책이 하는 이야기는 바로 그것이다. 사실 단순명료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지만, 사는 동안 자꾸만 잊게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처세술이나 인생 살아가는 방법 따위 논하는 책들이 어째서 인기가 많은가 늘 궁금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그 이유를 조금 알 것도 같다. 결국 재교육의 효과인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던 이야기. 그 이야기를 누군가 확신에 찬 어조로 나에..
단편집을 좋아하기란 참 힘들다. 몰입을 하려고 할 즈음 이야기가 끝나버리고 다시 또 새로운 이야기에 몰입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나로서는 참 힘들고, 그래서 그런 일을 몇 번쯤 반복하고 나면 어쩐지 꽤나 지쳐버린다. 사람마다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겠지만, 이야기가 길수록 그 이야기를 읽어내는 데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고 또한 그 이야기가 재미있는 경우에는 오랜 시간 그 속에 빠져있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길고 긴 장편 소설이 좋다. 그래서 웬만하면 단편집을 구입하지 않는데, 아주 마음에 드는 작가의 경우에는 단편도 한 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고 그래서 결국 내가 썩 만족하지 않으리라는 걸 미리 알면서도 이렇게 단편집을 사고야 마는 것이다. 도리스 레싱은, 정말로 여러모로 마음에 들고..
모든 인간에게는 자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해 보았다. 그러니까 나는 스무살 이후로 줄곧, 내가 곧 어른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려 왔으니까 말이다. 때로는 아직도 사춘기 소녀로 살려 드는 나를 경멸하거나 혐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어린 아이의 시간에 머물고자 하는 소망은, 비단 나의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인간은 아예 평생을 세 살짜리로 살기 위해 고의로 성장을 멈춰 버리기도 하니까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어른의 사고력을 가지고 있었던 오스카는 자의에 의해 세 살 이후 성장을 멈춘다. 물론 스무살이 넘은 후, 아버지를 땅에 묻으면서 자라야한다- 라고 마음 먹은 그는 몇 개월간에 걸쳐 20cm게 넘게 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오스카는 여전히..
오쿠다 히데오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라부 또한 결코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라부가 누구인가. 우리나라에서 오쿠다 히데오를 인기 작가의 대열에 합류하게끔 만든 과 의 히로인 아닌가. 그 이라부의 전신이 바로 이 책 에 등장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존이 변비로 인해 고생하고 있을 때, 존의 치료를 돕는 엉뚱한 의사는 (비록 이름은 다를지라도) 누가 보아도 캐릭터가 조금 덜 잡힌 이라부이다. 사실 이 작품이 히데오의 데뷔작이라는 건 알지 못한 채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 역시 이나 를 통해 히데오를 알게 되었고, 나 를 통해서 히데오를 조금쯤 재미있어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동안 이 작가를 잊고 지내던 중,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는 직장 동료의 말에 를 읽게 되었는데, 읽으면서 '흠흠- 어쩐지 이라부 시리..
동정이 종종 사랑으로 발전하거나 오해되듯이, 동경 역시 매한가지다. 결국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나를 반짝거리게 만드는 아름다운 이에 대한 동경. 사실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체는 20세기의 가장 완벽한 인간으로도 불리는 이인 걸. 그에 대해 알게 된 이후로는 사랑하는 마음을 품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는 말이다.
내려야 할 역에 도착한 것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그래서 결국 다음 역에서야 겨우 내릴 수 있었을 만큼, 이 책은 정말이지 대단히 흥미롭다. 책의 첫 장을 펼치고 두 세장만 넘기고 나면 단숨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그곳에서 빠져 나오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결국엔 책읽기를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 짜증이 나, 잠도 자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어버린 후 이렇게 맛있는 책읽기란 나를 얼마나 즐겁게 하는가- 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 도리스 레싱, 벌써 두 번째 이렇게 나를 즐겁게 만든 작가. 해리엇과 데이빗은 고풍스러운 저택에 살며 대가족의 행복한 삶을 꿈꾼다. 그리하여 계속해서 아이를 낳던 해리엇이 자신들에게 문제가 생겼음을 예감한 건 다섯째 아이를 임신한 후이다. 아이는 배속에 있을 때..
이것은 동물학자가 써낸, 아주 많은 동물들의 이야기다. 두툼한 책의 두께가 눈길을 끌어, 한 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에 손에 들고서도, 아무래도 내 취향은 아닐 거란 생각을 했는데 이게 웬일일까. 이 책은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으며 그래서 아주 빠르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최재천은 인간 만큼이나 체계화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미와 벌꿀의 생활에 대해 알려주고, 원앙이나 갈매기의 짝짓기에 대해서 알려주고, 가시고기의 뜨거운 부성애나 돌고래의 우정에 대해서 알려준다. 그리고 최재천의 이야기는 한결같이 부드럽고 따뜻하지만 그러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우리 인간의 어리석음이나 이기심을 부끄러워하고 그리하여 반성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한 번 손에 든 책은 무조건 끝까지 읽는다. 그렇지만 역시 '무조건적으로' 읽고 있다는 것은 그다지 능동적인 행위가 아니라서, 나는 그냥 글자를 읽고 있을 뿐 글을 읽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나름대로 다양한 책들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성격이라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별다른 감흥이 없고 내 기준에선 별다른 재미도 느낄 수 없는 책들이 있다. 그래도 끝까지 읽어내긴 했으니, 독서 리스트에 올리긴 하는데 그렇게 하면서도 영 산뜻하지 못한 이 마음은. 음음, 그러니까 역시 글자를 읽었을 뿐 글을 읽은 건 아니라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중요한 건 '권수 채우기'가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나 자신에게 인식시켜야겠다.
언제나 문제가 되는 건 '무례함'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실 나는 자연이니 환경이니 하는 것들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여 본 적이 없다. 그저, 웬만해서는 더럽히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함부로 죽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기본적인 생각조차 가지지 않은 채 자연을 대한다면 그것이 결국 무례함이 아닌가 싶다. 권선징악을 믿는 건 아니지만, 어리석은 악행은 결국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되어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그 정도조차도 모르는 이가 많아 한치 앞의 불행을 보지 못하고 이토록 쉽게 파괴를 일삼고 있는 건지. 백인이 죽인 살쾡이가 다시 인간을 죽이는 것이나, 인간이 만들어낸 미친 소가 다시 인간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나, 결국엔 뿌린 만큼 거두는 것이니 인간 외에는 탓할 것이..
덜 여문 마음에 상처를 남겨서는 안 된다. 덜 여물었기에 그상처는 깊고, 깊은 만큼 더더욱 오래 가기 때문이다. 설사 내가 그 특혜의 수혜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부당하기 그지없는 특혜를 베푸는 이에게 어떻게 애틋하거나 존경하는 마음 같은 걸 가질 수 있는 걸까.
루이스 세풀베다. 칠레 태생. 자연 환경과 소수 민족을 보호하고 싶어하는 작가. 망설임 없이 행동하는 지성. 생각을 하는 것만도 쉽지 않은데, 그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만도 쉽지 않은데, 글로 표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도 옮길 수 있는 용기. 부지런함. 꿋꿋함이나 단호함. 그런 것을 가지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동경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알아야겠다거나, 알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좋아하게 된 이후에도 무관심한 마음은 있을 수 없다. 올해는 반드시 꾸준히 독서를 하자- 결심을 하고, 그 중에서도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관련된 독서를 조금 더 열심히 하기로 했다. 그래서 를 읽고, 이번에는 . 조지 오웰이 자신이 직접 참전했던 스페인 내전에 대해 기록해 둔 이 작품은, 스페인 내전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던 내가 단번에 읽어내기에는 다소 힘든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각 당의 특성이나 지향하는 바가 자꾸만 헷갈렸고, 여러 집단들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던 탓이다. 그래서 제5장과 제11장을 읽어내는 것은 얼마나 힘들었던지. 이 두 장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난 읽었던 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어야 했는지. 그렇게 몇 장을..
난 도리스 레싱이 마음에 든다. '좋다.'라기보다는 마음에 든다. 처음 이 작가의 책을 고를 때 그 많은 작품들 중 이 작품을 가장 먼저 고르게 된 건 행운인 것 같다. 우연한 행운이었고, 좋은 감을 발휘한 현명한 선택. 바로 오늘까지 을 읽었는데, 이 책이야말로 도리스 레싱의 대표작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 작품을 먼저 읽었다면 난 이 작가의 책을 이렇게까지 연달아서 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것은 이 보다 덜 재밌다거나 덜 훌륭하단 뜻이 아니라, 전자보다는 후자쪽이 조금 더 내 마음에 들었다는 말이다. 아하, 라고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거나 혼자 킥킥대는 웃음을 흘리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꽤나 우습다거나 즐거운 건 아니지만, 어쨌든. 도리스 레싱은 페르시아(지금의 이란)에서 태어나 잠..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다, 결국 현재의 어린 친구는 늙어버린 과거의 친구를 만난다. 이것은 이제 어느 정도 진부한 느낌마저 주는 설정이지만, 그래도 그 그런 장면을 마주칠 때마다 조금은 마음이 아프다. 예전에 을 보고 온 엄마에게 영화가 재밌더냐 물어봤더니 '그 여자애가 참 안됐더라.'고 대답하셨다. 그 대답을 들은 나는, 대충 그 영화의 줄거리는 알고 있던 터라 어째서 그 여자애가 안됐다는 걸까- 궁금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난 후엔 엄마의 말이 이해가 됐다. 그러니까 그 여자애, 극중 김하늘이, 보는 동안 참 많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이 책속의 톰도, 패티가 어른이 되어가는 사이 점점 더 옅어지고 희미해져, 결국엔 사라져버린 톰도, 안타깝고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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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모스가 죽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모스의 죽음은 너무나 쉽게, 아무런 극적인 장치도 없이, 위기감을 더 이상 고조시키지도 않은 채, 그렇게 너무나 평이하게 그려졌고 그래서 나는 슬펐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모스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이다. 모스는 별로 자신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지만 꼭 상대에 대해 많이 알아야만 그 상대를 좋아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영양을 쫓다가, 모스가 만난 것은 무참한 살인 현장과 엄청난 액수의 돈이었다. 모스는 그 돈을 가졌고, 그래서 쫓겼고, 그래서 죽었다. 보안관 벨은 모스를 살리고 싶어했고, 살인자 시거는 모스를 죽이고 싶어했고, 그리고 시거가 모스를 이겼다. 또한 시거가 벨을 이겼고, 그래 시거는 모두를 이겼다. 더는 악이 패배하지 않는 것이다. 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