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피도 눈물도 없이 (250)
청춘
마드리드 향하는 시간의 설렘 만큼이나. 레티로 공원의 햇볕이 지닌 온기 만큼이나. 파리에서 본 노을의 아름다움 만큼이나.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는 설레고, 따뜻하고, 아름다워서. 슬프고, 행복하고, 눈물 겨워서. 어느 순간부턴가는 심장이 두근거렸고 그 두근거림이 결국에는 눈물을 만들었다. 하여,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결국 다시 첫장을 펼친 것은 스페인과 헤어지는 아쉬움 만큼이나 이 책과의 헤어짐도 아쉬웠던 탓. 조너선 사프란 모어의 책과 니콜 크라우스의 책 중, 어느쪽이 더 낫냐거나 어느쪽이 더 마음에 들었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긴 힘들 것이다. (이렇게 쓴 후,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 어느쪽이 더 훌륭한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으나 확실히 조너선의 책이 조금 더, 아주 조금 더 마..
하루키는 참으로, 소설을 잘 쓰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키는 참으로, 수필도 잘 쓰는 작가였다. 어쩔 수 없이 이 사람, 타고난 글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리 팬은 아니라고 해도- 아무리 하루키에 대한 칭찬은 진부하다고 해도- 역시 훌륭하구나, 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부럽다. 무라카미 하루키.
템플 그랜딘은 말하길, 그녀는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야 완전히 언어적으로만 사고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내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은 참 놀라운 발언이다. 왜냐하면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완전히 언어적으로만 사고하는 줄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림으로 사고할 수도 있다는 것은 깨달은 것은 바로 이 책을 읽으면서부터였다. 언어와 사고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니까, 나는 모든 사고가 언어로부터 나온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있노라니 그림으로만 사고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이 책의 놀라운 힘은 바로 그런 것에 있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것과 아주 많이 다른 사실들이, 또는 그 동안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또 많은 사실들이 적혀 있음..
조금은 그가 신경질적인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래서 그와 함께 있는 것은 얼마간의 피로를 가져다줄 거라고 상상하면서. 다시 또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손에 든다. 이런 예민함, 이런 날이 선 기분들, 어쩐지 익숙하고 반가워. 앞으로도 오래 오래 멀지 않은 곳에 있을 작가. 이 사람의 책은 참으로, 편안하다.
가도 가도, 미궁이다. 한 번 길을 잃은 자는 영원히 처음 가고자 했던 길을 찾지 못할 것이다.
열 여덟살이나, 열 아홉살 때의 일일 것이다. 작은 언니가 엄마의 생일 선물로 신경숙의 을 사왔다. 그 책을 엄마가 읽고, 언니들이 읽고, 그리고 내 책장에서 더는 읽을 책이 없어진 내가 읽었다. 신경숙이라는 작가에 대해 별로 관심도 없었고, 사실 그런 소설에도 별다른 취미가 없던 나는, 그 때 그 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이계를 만났다. 지금도 자신있게,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그 책 때문에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고.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하긴 했지만, 신경숙을 알기 이전의 나는 글쓰기를 이렇게까지 사랑하진 않았다. 그것이 나의 업이 되기를 바라지도 않았고, 그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하거나 희망하거나 좌절하거나 고민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그런 채로 살았더라면, 수학자가 되고 싶다거나 정신과 의사가..
신작이 나왔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인터넷 교보문고에 들려 책을 구입하고, 책이 도착하자마자 급하게 첫장을 펼치는 나를 보면서, 내가 류승완의 새 영화를 기다리듯, 신경숙의 새 소설을 기다리듯, 닉 혼비의 새글을 기다리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음음음, 반갑구나. 닉 혼비.
공지영은, 진부한 게 가장 싫다고 여주인공의 입을 빌려 계속해서 말하고 있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진부하다. 진부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재미있어 하는 사람도, 감동 겨워하는 사람들도 있으므로 진부한 걸 나쁘다고까지는 말하지 않겠지만 어쨌건 이 이야기가 별반 새로울 것이 없는, 진부하디 진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나는 진부한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재미있어 하지도 않으며, 감동 겨워하지도 않아서 이 이야기가 좀 지루했다.
세상에는 이제 나보다 어린 작가들이 등장할 것이다. TV에, 스크린에, 그라운드에, 나보다 어린 그렇지만 분명히 재능 있는 이들이 등장한 것은 꽤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더 이상은 나보다 어린 이가 무언가를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역시 글쓰기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글쓰기만은 조금 더 오랜 시간 삶을 살아온 자만이, 조금 더 오랜 시간 생각하고 고민하고 아파하고 사색한 인간만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김애란의 등장은, 나를 조금 놀라게 한다. 물론 이전에도 나보다 어린 작가들이 존재하긴 했다. 귀여니만 해도 뭐 작가라고 부르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난 그녀의 정확한 나이를 모르겠다. 어쨌건 ..
세상엔, 가벼우면서도 아름다운 것이 있다. 대단한 체 하지 않으면서도 눈부신 것이 있다. 의 박사는, 나는, 루트는, 그리고 그들의 관계는, 또한 그들을 그리는 오가와 요코의 필력은, 그렇게 가벼우면서 아름답다. 대단한 척 무게 잡지 않지만 그럼에도 눈부시다. 좋은 책을 잃었으니, 이 책을 영상으로 옮겨 놓았다는 영화도 보아야겠다.
01. [내 영혼에는 들어오지 못해. 문을 열어주지 않을 거니까. 내 불을 끌 수도 없어. 나를 뒤엎다니. 어림없는 수작!] 02. 조르바처럼 살 수 없으므로, 조르바를 동경한다. 하지만 조르바를 제 아무리 동경해도, 조르바처럼 살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한없이 현실적인 양 굴던 은희경이 어느 날 갑자기 를 통해 이해할 수 없는 환상의 세계를 보여주었을 때, 생각했던 것 같다. 정말로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것은 이 여자가 맞았을까. 오히려 지독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은 한없이 여린 감성만 느껴졌던 다른 작가쪽이 아니었을까, 라고.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 소설은 총 6편. 그 중에서 가장 읽을 만한 것은 역시 표제 소설인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이며 그 외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이었다. 90년대 중반부터 여류 작가들이 쏟아져 나오며 누군가는 누구의 아류 같고, 또 누군가는 누구의 아류 같단 소리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은희경은 그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가 중 한 사람이었고, 시간을 지나며 했던 이야기만을..
이 책은, 너무나 재미있다. 사실 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혹시나 이 책이 전작만 못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그런데 김탁환은 여전한 정성과 우아함을 지녔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능력은 더 커져서 나로 하여금 날이 밝았는데도 뒷얘기가 궁금하여 잠에 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소설이야 한낱 꾸며낸 이야기이니 한 자리에 앉아서 생각나는 대로 술술술 이야기를 만들어내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만 김탁환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 책을 써내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발품을 팔아 조사를 해야 했을까? 라는 그런 생각. 그러니까 이 책은 나로서는 상상못할 열정과 부지런함의 결과물인 것이다. 또한 연구자와 소설가 사이에서 방황했다는 작가의 이야기를 읽고 든 생각이 있으니, ..
모든 불행한 사람들 속에서 혼자 누리는 행복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다. 행복에는 책임이나 대가가 따른다. 불행 속에 휩싸인 행복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라면 그 책임과 대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행복보단 불행을 택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 도시에선, 행복의 책임을 마지막까지 짊어진 이가 있어서 불행의 시대가 막을 내릴 수 있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오랜만에 책 때문에 밤을 샜다. 마지막 장을 덮고 보니 시간은 오전 9시. 새벽 2시부터 읽기 시작한 책이니 내리 7시간을 책만 읽었다. 요즘 나의 가장 큰 문제는 도저히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없는 산만함인데, 꼬박 7시간 동안 다른 일에 눈 돌리지 않고 책읽기에만 집중하게 만들어 주다니. 오랜만에 고맙다.
세상에, 흔적 없는 것들이 소리를 낸다. 갈대숲을 지나는 작은 바람. 갓 잠에서 깨어나 칭얼대는 어린 아이. 바위 위를 지나가는 맑은 샘물. 세상에,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 저들만의 소리를 낸다. 희미한 것들에만 마음이 이끌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들이 가진 안쓰러움에 마음이 아프고, 그것들이 가진 사랑스러움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세상에는 꼭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한 마디의 이야기도 나눌 수 없겠지만, 가브리엘 루아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그녀 역시 분명히 그런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떤 단순한 열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 나는 나를 끊임없이 야단치고 미워하며 한심하게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단순하기 그지없는 열정은 인정하고 이해하며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나를 깨닫고, 결국은 조금 당황을 하고 만다. 나, 이렇게까지 나 자신에게 엄격했던가. 그것이 그렇게 나를, 그 사람을, 답답하게 만들었던 것인가.
이 책은 나에게 오랫동안 끊어지지 않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집중력이란 것을 거의 가지지 못했고, 그래서 이 책에 몰입하는 일이란 불가능처럼 여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마지막까지 다 읽은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읽던 책을 도중에 포기하지 않겠다, 라는 내 오기와 이 책을 다 읽지도 않고서 '그 책은 재미없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는 내 신념 때문이었다. (읽지도 않은 책을 향해 그 책은 별로야, 라거나 그 책보단 이 책이 낫지,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언제나' 비웃어 온 내가 똑같은 짓을 저지를 순 없지 않는가.) 어쨌건 난 내 오기를 꺾지는 않겠다는 오기와,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내 신념을 지키겠다는 신념 아래 이 책을 결국! 끝까지 다 읽어냈고, 그리..
열심히 하지 않으면, 금방 밑천이 바닥나게 될 거야. 하지만 울프는, 밑천이 바닥날 일이 없게끔 치열하게 배우고 생각했단 느낌이 들어.
글이 마음에 든다거나, 문체가 마음에 든다거나, 그래서 이 작가가 내 타입이라는 생각보다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이상향 같은 것을 느껴버린 것처럼.
기억은, 아주 쉽게 회손되고 재구성되며 그리하여 절대로 진실에 가까울 수 없다는 것을 다시 생각했어. 그래서 종종 기억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를 돌아봤고, 그래서 나 스스로 내 기억을 얼마나 포장하며 살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했지. 하지만 잘 모르겠어. 이제는 모르겠어. 내 기억의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하는 것도 그러하지만. 꼭 이 기억들이 다 진실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해서도 답을 할 수가 없고 더 나아가 꼭 내가 진실에 의지해서 살아야 하는 걸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도 그래. 나는 그냥 더 이상 진실에 집착하고 싶지 않아. 왜냐하면 어차피, 기억되는 것은 진실이 아닌 거니까. 그런 거니까. 이제는 기억 속의 모습들이, 진실인지 허상인지도 잊어버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