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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골목을 걸어 올라오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조금 더 옳거나 조금 더 좋거나, 조금 더 나를 배려하는 방법도 있었을 거라고. 그렇게 하면, 내가 상처 받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 조금도 모르거나 전혀 짐작할 수 없었던 건 아니었으면서. 너는 그렇게 태연하고, 이전과 똑같은 얼굴로 웃고,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계속 아무렇지 않은 척. 그러니 내가 어떻게 너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일까.
폼페이는 시간이 멈춘 도시다. 피사에는 두오모 광장이 있다. 그리고 바티칸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로마 한 가운데에 있는 바티칸에 가고 싶다. 바티칸을 들러 폼페이에 가고 싶고, 폼페이에서 피사에,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나폴리도 보고 싶다. 여행이란 것,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안다. 정말로 간절해지면 어떻게든 떠나게 된다는 것도. 하지만 다음 여행을 계획하려 하면 너무 많은 걸림돌이 떠올라서, 자꾸만 한숨이 난다. 이탈리아. 이탈리아. 나는 지금 이탈리아에 가고 싶다. 그리고 물론, 그리운 것은, 스페인. 마드리드. 시벨레스 광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프라도 미술관. 레티로 공원. 오래 머물 수 없는 습관. 요즘은 또 왜 이렇게 다시 떠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어쩐지 오늘 우리가 이길 것 같다는 생각.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피식 혼자 웃었다. 그렇게 속고 또 속고도 여전히 다시 속는 내가 우스웠던 탓이다. J엄마를 만나자마자 '오늘 이길 것 같아.'라고 말을 했더니, 아니나다를까. J도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다. 7년이나 속았으면서 바보같이 또 속냐는 J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오늘 우리가 이길 것 같다는 내 말도 그저 즐겁자고 한 말만은 아니었는 걸. 사실 경기가 있기 전날까지만 해도 우리가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거의 들지 않았다. 예전같으면 수원 정도야 뭐 가뿐히- 라고 생각했겠지만 지난해 봄 우리가 당했던 2연패는 꽤나 충격적이어서 더는 그런 농담은 하지 않게 된 것이..
토요일 밤에는 지하철 2호선을 타기가 싫어진다. 버스 한 번이면 집에 올 수 있는데, 30분만 일찍 일어나면 그 버스를 탈 수 있는데, 늘 그 30분을 미적대다가 결국은 막차를 놓치고 잠깐 고민을 한다. 지하철을 탈까? 사람이 많겠지? 덥겠지? 피곤하겠지? 그리고 오늘은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니까, 결국엔 결론을 내렸다. 오랜만에, 신촌에서 택시다. 신촌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는 한강을 가로지른 대교를 건넌다. 이 다리를 건널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어김없이 그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궁금해진다. 잊지 못하는 것은 그때의 나인지, 그저 시간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감정인 건지, 그렇다면 그것들이 그리운 것인지, 도망가고 싶은 것인지, 돌아가고 싶은 것인지. 그래도 다행인 것은 90%쯤 괜찮아졌다는 ..
나는 모르고 있는데, 어떻게 당신은 알 수 있었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자주 실망했는데도 그때마다 똑같이 슬퍼할 수 있는 거지? 이해할 수 없는 천 가지의 것들이 여기에 있어, 7월의 폭염도 느끼지 못하고, 그냥 이렇게 지내고 있는 거야.
지겹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 지겨움이 끝도 없이 계속되리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역시, 아직도 나는 두려운 거구나.
사실 뭐, 열정이란 게 별건가. 그리고 그도 그렇지. 너무 많은 열정이라면 쓰러질 법도 한 것이고. 세상에 포기 못할 일이란 게 뭐가 있겠어. 설사 있다고 해도 한 사람 당 하나 정도면 충분한 거지. 내가 지치고 내가 힘들면 그걸로 끝인 거야. 사람이, 뭔가를 위하고 걱정을 하고 열정을 바치는 데도 내가 지치고 힘들어서 못 버틸 것 같으면 그걸로 끝나는 거야. 죽어도 안 될 것 같아서 미련스레 굴어도, 사람 마음에 영원한 게 어딨니. 원래 사람 마음은 끝이 있다는 데 희망이 있는 거야. 만약 마음이 그저 계속되기만 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토록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갈 수 있겠어. 그나저나 집에 거미가 산다더니, 봐버렸네. 징그럽게 길고 얇은 다리를 가진 거미. 기어가는 모습을 한참 보고 있었는데, 신기하..
아마,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언제 죽더라도 난 눈은 못 감을 거다. 씻고 가만히 앉아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그게 내가 제일 처음 마주친 진짜 행복한 인간의 얼굴이었던 것도 같고. 어쨌든 이제 한 시름 놨다. 그러고보니 어느 새 7월. 도 내일이면 끝이구나. 아, 쉬고 싶어라. 정말.
생각은 딱 여기서 거기까지다. 내가 아는 건 모두 다 손바닥 안에 있다. 그렇게 아둥바둥 읽고 또 보아도 달라질 가능성은 언제나 제로다. 사람의 그릇이란 건 어느 정도 타고 태어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여기서 거기까지. 더 넓게 보고, 더 넓게 생각하라고 하면, 그때부터 난 내가 아닐 것이다. 꽃이 피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잎이 자란다. 오래된 잎은 검붉고 새잎은 진분홍이다. 나무도 잎도 어린 것이 더 예쁘다. 그래서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을, 빛도 없고 물도 부족한 이 방에서 그래도 여직 안 죽고 살아 있어준 게 고마워 오래된 쪽을 쓸어내려 본다. 마음이란 것도 그런 것 아닌가. 빛도 물도 주지 않는데 죽지 않고 살아 있어준 마음. 그 마음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
01. 아주 오랜만에, 아주 희미하게, 극도의 피곤함 속에서 달짝지근한 기쁨 같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으면서, 회귀하는 것이다. 몇 번을 고개를 저었다 해도, 부딪히기도 전에 주저 앉아 울어버렸다 해도, 이제는 어떤 식으로라도 좋다- 고 생각할 만큼 간절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제서라도, 그래 성장을 한다. 봄이 가는 길목, 장마가 시작되는 길목, 죽어버린 줄 알았던 내가 자란다. 숨을 쉬고 꿈을 꾸면서, 내가 자란다. 02. 하늘. 해가 지는 하늘. 검푸른 하늘. 그리운 시간이 있다. 세상이 더는 밝지도 않고 마냥 어둡지도 않은 시간. 바람을 맞으면서 기다리고 있던 시간.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다. 추억은 번지지 말고 그냥 그 자리에서 멈춰서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03. 도리스 레싱...
어쩌자고 슬럼프는 두 달마다 한번씩 오는 건지. 성취감 0%의 일이란 게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너무 하는 족족 이 일들을 잘 처리해 나간다는 것도. 아아, 어째서 난 이토록 다재다능한 걸까. 한 가지 일만 죽자고 잘하는 그런 천재면 좋잖아? 어디 가서 적응 좀 못하고 친구 좀 없고 그래도 훨씬 더 멋졌을 텐데. 안 그래? 응응, 안 그러니? 역시 사람은 저마다 꿈꾸는 역할이 있고 난 그런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이다. 피식.
01. 죽여주시든가요. 난 하루하루가 피곤한 사람입니다. 02. 만세, 만세. 라울 만세! 해트트릭을 할 거면 다른 번호 달고 하란 말이다. 다비드 비야 따위, 쳇. 우습지. 예쁘지도 않은 주제에. 그러게, 이 좁아터진 마음으로 내가 스페인을 응원하긴 뭘 응원해. 라모스로는 안 된다. 까시야스로도 안 돼. 어떻게 까시야스가 골 안 먹고 스페인이 지는 방법은 없겠니? 정말이지 노망난 영감같으니. 니네 나라가 우승컵 못 드는 게 왜 라울 탓이야. 그럼 대한민국이 우승 못한 건 홍명보 탓이게. 몰라몰라. 난 의리 따위 없어. 난 속좁고 이기적인 냄비일 뿐이야. 라울 없는 스페인 대표팀 따위, 일찌감치 조별 예선서 탈락하고 영감은 그냥 집에서 쉬세요. 다음 월드컵까지 나오겠다고 설치면 진짜 나 월드컵 안 봅니다..
아아아아악. 으으으으으윽. 에에에에에엑. 우우우우우우욱. 용량 초과다. 아니면 한계. 바보가 된 건지. 원래 이 모양이었던 것인지. 하루종일이라구요. 그런데 한 장 반도 아니라구요. 저더러 어쩌라는 겁니까? 50장엔 백수의 50일이 필요합니다. 저더러 이러지 마세요. 쿨한 척 하지만 소심하다니까요. 술술 쓴 것 같겠지만 엄청 고민한다구요. 전 그저 노력할 뿐입니다. 굽신굽신. 제 대답을 처음으로 돌려놔 주세요. 전 무능합니다. 전 하나도 특별하지 않아요. 그러니 이 모든 걸 없던 일로 하면 안 되는 건가요? 훌쩍훌쩍. 저는 눈이 아파요.
그리고 화가 난 나의 눈을 들여다본다. 그 눈을 마주보면서 이제는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때 처음, 내가 화를 내고 있던 그 때 처음, 그런데도 태연하게 내 머리카락이나 만져보려던 그 때 처음, 그만두라고 말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지나간 이후로,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행동도 그러하고, 마음도 매한가지다.
문제는, 우울에 있다. 성격이 변하고, 삶의 태도가 달라지고, 웃음이 늘고, 농담을 자주 하게 되더라도, 나는 여전히 우울하다. 그리고 나를 믿는 마음 뒤에 존재하는 것이 열등감이나 자기 혐오였던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내가, 나에게 사랑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될까봐 언제나 예민하게 굴었던 건 사실이다. 늘, 손톱끝이 아픈 기분이었다. 늘 귀끝이 떨리거나 늘 입술끝이 아렸었다. 나의 모든 투정들. 변덕스러운 태도. 민감한 성질과, 제멋대로인 모습도 모두 다 너그럽게 받아주길 원하고 있다. 그렇게 해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화나게 할 수 있는 동시에, 화를 낸 내가 다시 사과할 수도 있게 하는 사람. 구원을 바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구원 따윈 없다는 생각도 ..
사실은 다 그게 그거다. 나라고 해서 별다른 마음을 품고 사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다지 우아하지도 고상하지도 않은 마음. 곤혹스럽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면서 이런 마음들을 싫어하는 일.
적어도, 아무도 원망하지 않아. 주저앉지도 않고, 억울해하지도 않아. 나는 그것만으로도 내가 아주 잘 이겨냈다고 말할 수 있어. 때로는 삶의 골목 골목에서 기습을 당할 수도 있지. 그 사실을 모르는 건 너의 탓이 아니야.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 역시 나의 탓은 아니지. 무엇을 힘들어하고 있냐고? 대답을 들으면 네가 할 수 있는 게 뭔데? 너는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 어줍짢은 구원을 꿈꿀 생각 하지마. 너는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앞으로도 결단코 알 기회가 없을 거야.
01. 명분도, 승산도 없다. 그럴 땐 싸우지 않는 것만이 방법. 02. 추웠다 더웠다 하는 이 봄의 날씨처럼 마음도 이랬다 저랬다 하는구나. 03. 내 바람은 소박한 것. 정말이지, 일주일에 닷새만 일했으면 좋겠다. 04. 알렉스. 생긴 건 마음에 안 들지만, 어쨌든 목소리는 좋구나. 무언가 더한 것도, 뺀 것도 없다는 느낌. 이런 목소리 마음에 들어.
01. 발가락을 자르는 꿈을 꾸었다. 발톱을 깎다가 별 생각 없이 발가락도 싹둑 싹둑 두 개나 잘라버렸는데, 자를 때는 아픈 줄도 모르고 이상한 줄도 모르다가 다 잘라놓고 보니 문득 ‘앗, 발가락은 자르면 다시 안 자라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엄마야~ 하고 놀래버렸다. 그리고 발가락이 두 개나 없어진 내 발을 멍하니 보다가 이대로 살면 많이 힘들까? 라고 생각하는 찰나 좀 괴상하고 흉측한 모양이긴 했지만 발가락이 조금씩 다시 자라나기 시작해서 ‘에에~? 발가락도 다시 자라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신기해했다. 그리고 잠에서 깬 후, 꿈이 너무 이상하단 생각이 들어서 대충 해몽을 찾아봤더니 이런 꿈은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가깝게 지내던 누군가와 멀어지는 꿈이라고 나와있었다. 그래서 ‘흠흠흠- 그러면 자..